삼동인터내셔널(국제NGO) 이사장

김 영 주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교에서는 인간의 괴로움을 ‘번뇌(煩惱)’라고 한다. 말 그대로 ‘뇌가 괴롭다’는 뜻이다. 또는 ‘혹(惑)·진로(塵勞)·염(染)’ 등이라고도 표현한다. 인간은 사물을 대할 때에 그것을 욕심내어 소유하려 하고, 본능으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음을 애태우게 되며, 경쟁하고 싸움하고 심지어는 살생까지 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복잡한 과정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하여 생겨나는 정신적인 모순 모두를 번뇌라고 한다.

그러나 번뇌의 정체를 확실히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크고 작은 것을 물을 것 없이, 큰 문제는 큰 번뇌를 일으키고 작은 문제는 작은 번뇌를 일으켜서 인생 전체를 번뇌 속으로 빠뜨린다. 따라서 삶이 곧 번뇌요 번뇌가 곧 삶이라는 논리까지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번뇌의 깊은 뿌리를 근원적으로 파악하여 해결한다는 것은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참다운 길이며, 그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번뇌의 삶을 ‘인생고해’라고 한다. 인류의 성자 소태산 박중빈도 지금의 시대를 파란고해(波瀾苦海)라 했다. 파란고해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겪게 되는 온갖 역경 난경과 고통을 말한다. 파(波)는 작은 파도, 난(瀾)은 큰 파도를 가리킨다. 크고 작은 파도가 심하여 인생살이의 바다를 건너가기가 험난하고 힘든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보조국사의 수심결(修心訣)에서는 화택(火宅)에 비유하기도 했다. 고민이 많은 이 세상. 욕(欲)·색(色)·무색(無色)의 삼계(三界)에는 편안함이 없어, 마치 불난 집과 같이 항상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우환이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삶이 왜 괴로운지, 인류 진화의 관점과 뇌 과학의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자. 사람의 뇌는 쾌감을 주는 것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불쾌감을 회피하는 데 더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이는 진화의 역사에서 불쾌한 경험이 유쾌한 경험보다 생존에 더 큰 영향을 미쳐왔다는 의미다. 인류의 원시 조상은 자신보다 몸집이 더 크고, 더 힘이 세며, 더 재빠른 포식동물로부터 부단하게 생존의 위협을 받아왔다. 따라서 언제나 주변을 경계해야만 했고, 작은 움직임이나 낯선 소리에도 과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도망갈 준비를 해야 할 만큼 불안하고 긴장된 삶을 영위했다.

이러한 위험에 대처하는 불안한 반응이 평화로운 반응 보다 생존에 더 강력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불쾌한 자극에 훨씬 더 강력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뇌를 만들었다. 그 결과 인간의 삶은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에 더 민감해졌다. 이런 괴로움에 더 민감한 부정적 편향성(negativity bias)은 오늘날의 우리 삶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우선, 인간은 쾌감을 주는 자극보다 고통을 주는 자극을 훨씬 빨리 받아들이고 학습한다. 뜨거운 스토브에 한 번 손을 데고 나면 다시는 그곳에 손을 올려놓지 않는다. 둘째, 공포나 불안과 같은 부정적 안면 표정은 행복이나 만족감과 같은 긍정적 안면 표정보다 훨씬 재빠르고 쉽게 인지한다. 셋째, 불쾌한 경험은 유쾌한 경험에 비해 쉽게 기억되고 오래 지속된다. 이것은 부정적 경험의 잔재들이 기억의 뇌 창고 속에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넷째,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바둥거린다. 이러한 보존의 속성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창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끝으로 인간관계에서 한 번 상처받은 마음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몇 배의 긍정적 경험을 되풀이해야만 한다. 이렇게 부정적 자극에 민감한 ‘부정적 편향성’은 진화를 통해 물려받은 것이다. 부정적 편향성은 과거 원시시대에는 생존에 유리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우리의 삶을 괴롭히는 존재로 변했다. 평소에도 불안하고 우울하며 긴장상태를 보이거나, 쉽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며 슬픔에 빠지고 죄책감이나 수치심 등의 부정적 감정으로 얼룩져 있다. 또한 과거에 대한 기억도 끔찍하고 무서웠던 경험들에 보다 쉽게 점화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자들은, 뇌에서 만들어낸 생각이 실재 현실과는 동떨어진 가상현실에 바탕을 둔 백일몽이거나 공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류는 번뇌 즉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 왔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마음의 혼란에서 병이 생기고(心亂卽病生), 마음의 안정으로 병이 스스로 치유된다(心定卽病自癒).’고 했다. 또 최고의 의사는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의사(心醫)라고 했다. 이처럼 전통의학의 핵심은 ‘마음의 힘으로 병을 다스리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불교에서도 번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양(명상)과 훈련을 통해서 다스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전통 뇌 과학은 인간의 마음, 영혼, 정신이 모두 뇌의 기능에 의해서 작용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달라이 라마가 서구 뇌 과학자들과의 만남에서 “마음이 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강연으로 화두를 던지면서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명상은 일종의 뇌 훈련이다. 반복 훈련을 함으로써 뇌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명상에 힘을 실어주는 매개체는 마음이다. 명상을 통해 뇌를 변화시키는 힘을 마음에서 얻는다. 그래서 명상을 마음 챙김(Mindfulness)행위라고도 한다. 명상을 통해 반복된 훈련은 마음에 근육을 생기게 하고,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보게 하며,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게 하는 정도가 줄어들어 스트레스도 점차 감소하게 만든다. 그 결과 ‘마음이 바뀌면 뇌가 바뀐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명상의 시대가 왔다. 명상은 순수한 영혼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내면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행위이다. 자기의 내면 안에 있는 사고와 의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내적 각성을 통해 존재의 근원에 다가서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참된 나'를 깨달아 무명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명상은 자신에 대한 전인적인 이해를 돕고 자기통제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 구실을 한다. 명상의 깨우침은 의식의 진화 과정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주고 자발적인 사랑과 기쁨을 만들어준다. 또한 감정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게 되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인정하는 능력까지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명상은 인간의 탐욕을 벗고 넓고 평화로운 세상과 내가 하나임을, 그것이 영원한 자유임을 알게 해주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