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면장

채수훈

국도1호, 사람이 걸으면서 길이 되다.

익산은 길의 도시이다. 고대에는 서해와 잇닿아 있는 금강, 만경강에 수로가 발달하였다. 호남 관문의 고장이자 호남대로가 관통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이리역을 중심으로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 철도망이 구축되면서 교통요충지가 되었다. 익산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해로, 육로, 철로가 골고루 발달하여 사통팔달 교통의 도시가 되었다.  

중국 루쉰은 <고향>에서“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 도로란 일반인의 교통을 위하여 제공되는 길이다. 익산에는 사람과 차가 다니는 일반국도인 1호, 23호, 27호가 지나고 있다. 사람이 수천 년 다녔던 길에는 그 세월만큼이나 역사·문화이야기가 그 발걸음 밑에 켜켜이 쌓여있다. 오늘은 일반국도 1호를 따라서 익산시간여행을 떠나보고자 한다.   
 
일반국도 1호는 전라남도 목포시 신항 교차로에서 판문점을 거쳐 평안북도 신의주시를 잇는 약 1,068km의 노선이다. 이 도로는 일제강점기 침략의 산물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특성상 외침이 빈번하여 우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조차 제대로 닦아놓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신작로라는 크고 넓은 새로운 길이 놓인 것은 일제강점기 때이다. 일반국도 1호는 조선 시대의 대로를 중심으로 도읍 사이의 지리적 관계보다는 직선 도로를 설치하였다. 서울 이북 구간은 만주 침략의 이동로로 호남 구간은 쌀 수탈의 운송로로 사용되었다.

일반국도 1호가 교통의 도시 익산을 경유하고 있다. 그 구간은 익산시 완주군 삼례읍의 경계인 왕궁면 온수 마을에서 시작하여 금마면과 여산면소재지를 가로질러 충청남도 황화면으로 넘어간다. 조선시대 호남대로가 인접하면서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한양과 전라도 사이에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면서 이 지역에도 큰 고을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조선시대 익산의 4개 군·현 중 익산(금마)군, 여산현이 1호선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길 주변 고을에 역(驛), 주막이 발달하였다. 일찍이 명문가인 여산송씨, 진천송씨, 진주소씨 문중의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미완의 꿈, 백제 왕궁터          
 
일반국도 1호선의 역사·문화답사는 익산시내에서 자동차로 출발하여 제2일반산업단지를 넘어 춘포면 석암로를 지나 옛 왕궁온천에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완주군 삼례읍과 경계인 왕궁면 온수리는 예로부터 마을 앞 우물이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머리를 감고 빨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따듯한 물이 나와 이 일대를 온수동이라 불렀다. 이 우물에는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 이름 모를 붉은색 꽃이 피었고, 특히 광복절 수일 전에는 전에 없이 많은 꽃이 피어나 이웃 주민들이 구경 올 정도였다.

며칠 후 해방이 되어 지금도 주민들은 이 꽃을 해방꽃이라 부르고 있다. 온수란 지명은 따뜻한 물이 흘러나와서 자연스럽게 사용되었고, 1994년에 왕궁온천이 일찌감치 자리하게 되었다. 지금은 노후화로 폐업하였지만 또 다시 왕궁온천도시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왕궁온천에서 금마면소재지까지 약 9km는 일반국도 1호선을 사이로 왕궁면과 춘포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익산지역의 일반국도 1호선 구간 주변에는 마한·백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문화가 산적해 있다. 옛 호젓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4차선 새 도로가 아닌 옛 2차선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그 중간쯤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왕궁리 유적지가 있다. 4개 고도도시의 유일한 백제 왕궁터로써 행인들이 오다가다 쉬어가며 1,300여년의 폐허지의 전설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600-641년)이 건립한 왕궁터이다. 공주, 부여,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8곳의 세계유산중 하나이다. 등재기준인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로써 완전성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를 보유주고 있다. 또, 고대 한·중·일 문명 이동의 중간지점으로써 일본 내 백제문화의 원류라 할 수 있다. 

백제가 멸망 후 왕궁터에는 대관사가 자리하게 됐다. 국보 제289호인 왕궁리 5층석탑이 백제계 석탑 양식을 뽐내고 있다. 기단부와 옥개석에서 발굴한 사리장엄구는 국보 제123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동안 집을 떠나서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국립익산박물관이 2020년에 개관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랜 세월 동안 이곳은 왕궁과 금마지역 학생들의 소풍장소 1번지였다. 그 당시 생계가 어려워서 그런지 왕궁리 유적에서 촬영한 사진 한 장 찾기가 이루어지지 않은 왕도의 꿈 찾기 못지않게 어려운 것 같다. 
 
왕궁리 유적 앞에는 백제왕도박물관이 있다. 대부분 이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백제왕궁의 역사·문화를 한 눈에 눈여겨 볼 수 있기에 꼭 둘러볼 필요가 있다. 이곳에서 약 1km 떨어진 궁평 마을에 왕족 사찰인 제석사지가 눈앞에 선하다.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주존 불상으로 모신 절이 있던 자리이다. <관세음응험기>에 따르면 639년에 불탄 후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다. 1천여 년간 묻혀 있다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1993년부터 발굴을 시작하여 제석사지 폐기장과 함께 그 속살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