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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사)삼동인터내셔널이사장

김영주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1960년대 영화배우 최무룡과 김지미가 헤어지면서 했던 말이다. 그 말은 연속극 대사같이 유명해졌다. 최무룡은 영화 연출과 제작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잇단 흥행 부진으로 빚이 쌓이면서 1969년 그를 보필해온 김지미와도 갈라서게 됐다.

미국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영화배우 비비안 리 (Vivien Leigh)는 불후의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감당할 수 없는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그녀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다. 첫 남편과 이혼하고, 배우 겸 감독이었던 로렌스 올리비에와 재혼한다. 그러나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비비안 리는 떠났을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경 속 첫 인류는 아담과 이브이다. 아담과 이브는 인류의 첫 부부인 셈이다. 그런데 성경 바깥에서는 인류 최초의 여자가 이브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유대 민족의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하느님이 흙으로 빚어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다. 남자는 아담, 여자는 릴리트였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아닌 성경 밖의 유대 민족의 신화에서는 아담의 첫 아내는 이브가 아니라 ‘릴리트’라는 것이다.

그런데 릴리트가 아담의 곁을 떠난다. 인류 최초의 이별(이혼)이었다. 그래서 하느님이 아담이 잠들었을 때 아담의 갈비뼈로 다시 여자를 창조한다. 그게 이브이다

아담과 릴리트는 부부싸움을 자주 했다. 그들이 싸운 이유는 주도권 싸움이었다. 하느님이 둘 다 똑같이 흙으로 만들었는데 여자는 남편(아담)에게 순종만 해야 하는 불만 때문이었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굉장히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본질적 평등에 대한 불만이었다.

인간은 생겨날 때부터 자유의지가 있고, 생겨날 때부터 신의 속성을 통해 평등하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누가 누구에게 복종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다. 지금 보면 릴리트의 사고는 굉장히 진보적이고, 진취적이고, 시대를 앞서 나간 사고였다.

익산시 홈페이지에 가면 깜짝 놀랄만한 통계 하나가 있다. 익산시민의 결혼과 이혼에 관한 것이다. 2019년 기준으로 매년 혼인은 987쌍이며, 이혼은 701쌍이다. 익산시 인구 292,916명(외국인 포함) 중 매일 2.7쌍이 결혼하고 1.9쌍이 이혼한다는 것이다. 개인주의 문화가 급속한 변화를 가져온 결과이다. 3명 중 2명이 이혼이라니 ‘릴리트’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이제 헤어진다는 것이 일상이 된 사회이다. 죄악이 아닌 자연스러움이다.

이혼에 대해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자주 고려한다고 한다. 또 실제로 이혼을 제기하는 주체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황혼이혼은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하던 부부가 이혼하는 것으로 대부분 50대 이상이다. 이혼이 일상사가 되어 버린 최근의 움직임 속에 황혼이혼의 증가세는 무서울 정도다. 이제 이혼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가능한 현상으로 다가와 있다.

2020년도 기준 우리나라의 혼인 건수는 약 213,502만 건이며, 이혼 건수는 약 106,500건이다. 혼인 건수 대비 이혼 건수는 약 2:1이라고 볼 수 있다.

한 갤럽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는가?” 이 물음에 대해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부인들 중에서, ‘예’로 응답한 경우가 5%이며, ‘아니오’라고 대답한 아내들이 80% 이상이었다. 그러나 아내들과는 달리 남편들은 “지금의 아내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대답한 수가 상당히 많았다고 발표했다. 80%나 되는 아내들이 “지금의 배우자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은 오늘날 한국가정의 행복지수가 심각한 위험수위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1891~1943) 대종사 시절에도 그런 교도가 있었다. 부부 사이가 나빴던 그는 늘 남편을 미워했다. ‘다음 생에는 절대 부부의 인연을 맺지 않겠다.’ 주위에 입버릇처럼 말했다. 얼마나 미웠으면 그랬을까. 그 말을 들은 대종사가 비법을 일러줬다. “남편과 다시 인연을 맺지 않으려면,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다 두지 말고 오직 무심(無心)으로 대하라.”

그 교도의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남편을 싫어하고, 남편을 미워할수록 더 멀어지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저만치 멀어지고 멀어져서 다음 생에는 절대 만나지 않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대종사의 진단은 예상 밖이었다.

우리 일상에서도 다들 그런 경험들이 있다. ‘제발 저 사람이랑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때는 꼭 마주치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버스 정류장에서 불쑥 나타나고,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둘만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참, 귀신 곡할 노릇이네. 저 사람만 안 마주치면 좋겠는데’라며 한숨을 쉰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 만나게 되어 있다.

왜 그럴까. 인연은 일종의 끈 맺기이다. A라는 사람을 생각하면 나와 A 사이에 끈이 한 번 맺어지는 것이다. 두 번 생각하면 두 번 맺어지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면 끈도 깊게 맺어진다. 많이 생각할수록 끈도 굵어진다. A를 좋아해도 맺는 거고, A를 미워해도 맺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끈의 두께가 인연의 두께이다. 그래서 대종사는 남편을 미워하면 할수록 인연의 밧줄을 당기고 당겨서 더 달라붙게 된다고 한 것이다.

필자는 소태산 대종사의 해법이 흥미롭다. “미워하지 말고 좋아해라”가 아니라 “오직 무심으로 대하라”고 했다. 미워하는 마음을 뒤집어 보자. 거기에는 접착제가 발라져 있다. 좋아하는 마음도 뒷면은 끈적끈적하다. 대종사는 마음을 자유롭게 쓰긴 쓰되 접착제는 바르지 말라고 했다. 그게 무심이니까. 무심과 무관심은 다르다. 무관심은 마음을 아예 쓰지 않는 거고, 무심은 마음을 쓰되 자국이 남지 않는 것이다.
세상사 모두가 신의 뜻이고 진리의 화현(化現)이다. 이왕 헤어질 거면 무심으로 하자.
무심.
무심으로 말이다. 그래야 자국이 남지 않는 아름다운 이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