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면장

채수훈

  
  백제인의 석공 숨결이 머무는 곳

익산은 우리나라 3대 화강암 생산지로 산에서 이익을 얻는다는 고장답게 우수한 석산이 많다. 일찍이 백제 무왕 때 왕궁, 사찰 및 왕릉 건축에 화강암이 사용되면서 석공기술이 발달되었다. 금마지역에는 백제인의 석공예술의 혼이 깃들어 있다. 
백제 미륵사지석탑은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으로 꼽힌다. 대왕릉은 백제 최대 왕릉으로서 석실분이다. 고려 때 왕궁리 5층석탑은 백제계 석탑양식을 계승하여 장중하고 우아하다. 세계유산인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는 땅속에 묻혀있던 주춧돌이 발견되면서 웅장했던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돌을 떡 주무르듯이 손으로 빚어낸 석 건축은 <삼국사기> 백제본기편의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에 맞는 백제 국보 중의 국보이다.
금마면 사거리에는 돌의 나라답게 아사달의 후예를 자처하며 명맥을 이어오는 김옥수 석공예 명장이 운영하는 일심석재가 있다. 전국 두 번째이자 전북 최초로 석공예 무형문화재로 인증 받았다. 앞마당에 손수 제작한 석제품이 전시돼 있고, 주로 사찰의 탑과 불상을 조각하여 전국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왕궁리 유적에서 4백 미터 앞 옥룡천에 고도리석조여래입상 보물이 있다. 돌로 만든 두 개의 불상이 2백 미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서 있다. 평소에는 서로 떨어져 지내다가 매년 음력 12월에 만나서 회포를 풀고 새벽에 닭 우는 소리가 들리면 제 자리로 돌아간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안도현의 시 익산고도리석불입상이 각선미를 뽐내는 두 불상을 더 애처롭게 바라보게 한다.
 
  내 애인은 바위 속에 누워 있었지
  두 손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지
  누군가 정(釘)으로 바위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들렸지
  내 애인은 문을 밀고 바깥으로 걸어 나왔지
  바위 속은 환했지만 바깥은 어두웠지
  내 애인은 옛날부터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

 
  서동의 탄생과 미륵사 창건 설화

오금산은 금마사거리에서 익산 시내 쪽에 있는 124m의 야트막한 산으로 익산토성이 있다. 남북국시대에 고구려 왕족 안승이 건국한 보덕국 수도로 추정되는 곳이다. 그 산 밑에 백제 무왕의 태생지인 마룡지와 용샘이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무왕의 탄생설화가 백제 31대왕 중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무왕의 이름은 장이다. 그의 어머니는 과부였는데, 서울 남쪽 못가에 집을 짓고 살다가 그 못의 용과 정을 통해 그를 낳았다. 어렸을 때 이름은 서동이다. 그는 재주와 도량이 넓고 깊어 헤아리기 어려웠는데, 늘 마를 캐서 팔아다 생활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이름으로 삼았다.”

금마면소재지에서 약 3km에 떨어진 미륵산 밑에 세계유산인 백제 미륵사지가 있다. 미륵사지는 비록 1호선의 샛길에 있지만 유홍준이 <나의문화답사기(1)>에서 “우리의 호남행에는 거의 빠짐없이 여기를 들렀다. … 그렇게 보고 또 보아도 물리지 않는 것을 보면 그곳이 답사의 명소이긴 명소인가 보다.”라고 극찬했던 곳이다. 
무왕과 선화 왕비의 미륵사지 창건 설화가 일연의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하루는 (무)왕이 (선화) 부인과 함께 사자사로 거동하는 길에 용화산 밑에 있는 큰 못가에 이르렀는데 미륵 삼존이 못 속에서 나타났다. (왕과 부인이) 수레를 멈추고 절했다. 부인이 왕에게 말했다.
“이곳에 큰 가람을 세우는 것이 참으로 제 소원입니다.”
  왕이 허락했다. 지명법사에게 가서 못 메울 일을 묻자 (법사가)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우고 평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미륵 삼존을 법상(法像)으로 하여 전(殿)·탑·낭(廊)·무(?)를 각기 세 군데에 세우고 ‘미륵사’라는 편액을 달았다.

미륵사지석탑은 국보이자 2009년에 심주석에서 발굴한 사리장엄구가 백제 예술의 극치로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옆에 우리나라 최초 지하 국립익산박물관이 나지막이 자리 잡고 있다. 전라북도에 국립박물관이 전주와 익산 두 곳이 있다. 익산박물관은 순전히 이 지역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어서 과히 문화재 보물창고라 할 수 있다.

  백제의 영원한 안식처, 금마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금마에는 유독 맛 집이 즐비하다. 물머리집, 뚜부카페, 청기와 등 다양한 식당이 즐비한 만큼 여행객의 입맛에 맞게 선택하면 좋을 듯싶다.
금마면 소재지는 1호선이 관통하고 있다. 면사무소 앞에 조선관아 터가 있었고 익산중학교 옆에 익산향교가 있다. 도로를 따라 올망졸망한 건물이 빼곡하여 옛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조선시대 이 지역 출신 소동명은 시조 ‘금마’에서 “미륵산 봉우리 높고 시냇물 맑은 / 수백 년 세월 아름다운 옛 왕성 / 관아 누각은 너른 들녘 남으로 끌어당기고 / 불탑은 평탄한 큰길 서쪽으로 내려다보네 / …”라고 읊었다. 익산 고지도의 산자락은 그대로여서 그 전경만이라도 충분히 짐작할 뿐이다.
다시 자동차는 여산 산속으로 향하다 보면 탄현 못미처 도순저수지가 좌측에 펼쳐진다. 이곳 용화리는 행정구역상 왕궁면에 속한다. 이처럼 왕궁과 금마는 백제 때 금마저가 있는 군으로서 지역 구분이 애매모호할 정도로 한 몸으로 엮여있다.
저수지 주변은 용화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 쌓여있고, 이 일대가 진주소씨 세거지이다. 능선 양지바른 곳에 진주소씨 문중선산이 있다. 익산 최초 신도비인 소세양신도비와 금석문인 소자파묘비가 있다. 소씨 문중이 비문으로 2관왕을 움켜쥐고 있다. 양곡 소세양하면 신도비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황진이와의 사랑이야기로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선산 앞에는 도순 저수지와 왕궁 들녘이 넓게 펼쳐져 있어 풍광이 빼어나다. 확실히 국도 1호에서 올려다 볼 때와 산 위에 올라와서 내려 보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소씨 양반들은 경치 좋은 명당에 잠들고 있어서 산 사람 부러울 것 없어 보인다. 용화세상을 꿈꾼 용화리는 자연, 인물, 문중, 사랑이 내면 깊숙이 공존하고 있어서 자동차로 쓰윽 지나치기에 마냥 아쉬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