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소질과 개성을 달리한다. 따라서 자신의 소질과 개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삶을 설계함은 너무도 당연한 순리일 것이다. 또한 사회적 여건이나 제도 등, 자신이 속하는 사회가 어떠한 인물을 요구하느냐에 따라서 대비해야 할 것이니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당연한 상식을 무시하고 삶을 설계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우리나라의 부모님들은 자녀의 소질이나 취향을 무시하고 특정 분야를 강조하며, 지망생의 희망이나 적성을 무시하고, 이른바 인기 학과에 대한 욕심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기업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이 자신의 소양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명예나 권력을 탐내어 국회의원, 또는 지방의원에 입후보하는 경우도 주위에서 피부로 실감하는 현실이다.

소질이나 개성에 맞추어서 삶을 설계하고 또 그와 같은 설계에 따라서 살아갈 때, 개인은 자아의 실현으로 접근하게 되고, 사회 전체는 균형된 발전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인생을 사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도,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이 명확한 상식을 배반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니 도대체 이와 같은 모순된 현상이 언제까지 반복, 계속되는 것일까?

20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가 지나고 50여 일 앞에 다가온 지방선거에 앞서 열기가 뜨겁다. 창작 활동에 여념이 없는 우리 예술인이 정치와 어떤 관계가 있었으며, 오랜 인류 문화사 속에서 예술과 정치, 이 두 분야는, 어떤 경우에는 행복한 동반자로, 때로는 매우 불편한 만남으로 흥미로운 족적을 남겨오지 않았나 싶다. 다시 말하자면 예술과 정치의 만남은 곧 예술가와 정치의 만남이나 다름없었다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정치와 예술의 과제가 각각 현실 변혁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세운다고 해도 그 길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 정치의 과제는 가능한 한 다수 대중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과제는 가능한 한 민중이 각자의 독자적인 이의 제기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예술, 정치를 만나다”(저자. 박홍규)의 내용을 보면, 정치와 관련이 깊었던 예술가들의 삶을 통하여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시대 상황으로 불가피하게 정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 정치에 철저하게 대항한 예술가, 정치를 예술로 조롱한 예술가, 저의에 이용당한 예술가 등 예술가가 품고 있는 정치적 내면을 흥미롭게 살펴 적고 있다. 덧붙여 위대한 예술가 8인의 행적을 소개한다. 예술과 정치를 조화시킨 바로크 시대의 거장, 화가 루벤스. 신에게 도전한 르네상스 인간작가 괴테, 세계 제국을 꿈꾼 오도기라의 황제 바그너, 조국 통일을 노래한 민족주의자 베르디, 예술의 죽음에 맞선 혁명가 피카소, 히틀러의 광기에 저항한 희극배우 채플린, 권력과 권위를 거부한 샤르트르, 자유를 노래한 평화주의자 레넌.

17세기 프랑드르의 궁정화가였던 루벤스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서 행복을 누린 화가였다. 그는 왕궁이나 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암투의 와중에서도 어떤 권력이나 부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창조하면서 부와 권력의 유혹을 이겨내고, 자연과 인간의 존엄성을 찬미하는 그림에 몰두, 예술을 통하여 정치를 극복한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음악가 바그너는 정치와 예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이니 게르만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내세운 음악을 통하여 히틀러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의 예술은 정치적이었지만 수많은 어용 예술이 물거품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과는 달리 바그너의 오페라는 그의 작품이 가진 높은 예술성으로 인하여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20세기 작가이자 철학자인 샤르트르에 이르면 예술과 정치의 적극적인 만남과 관계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게 한다. 샤르트르는 철저하게 권력을 거부한 예술가로서, 현실 속에서 보여주었던 샤르트르의 자유주의와 반 권력 예술 주의는 달리 말하면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었다. 그는 희생이나 헌신의 이념에 대한 운동은 회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념에 기초하는 것은 언제나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이념이 개인의 개체성을 희생하거나 헌신을 요구하는 논리를 동반하는 경우는 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여기에 덧붙여 “예술의 권력이 호위를 얻어 권력의 꽃으로 전락하는 것도 경계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술가는 평범한 사회적 인간이고 유권자인 만큼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모든 분야의 예술은 그 안에 정치적인 메시지와 정치적 정황을 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정치적 메시지도 예술이 존재하고 살아남을 때만이 비로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법이다.

어찌 보면 이것이 예술과 정치의 진정한 관계인지도 모른다. 예술이 정치를 만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하고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역시 예술이란 언제나 영혼의 자유로운 표현이며 활동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