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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배

윤복순 윤약국약사

건강검진 결과 통보서를 받았다. 크게 염려하는 바가 없어 2년 마다 하는 건강검진을 잘 받지 않는 편이다. 6~7년 받지 않았더니 우편물이 계속 날라 온다. 국가 돈 축내지 않아야겠는데 우표 값이 들어가서 한 번 받아봐야겠다.

저녁식사를 일찍 하는데다 새벽운동을 하고 아침을 거른 채 검진을 받으려면 기진맥진해서 기어 다니다시피 한다. 검사받다 죽을 것 같아 올 해는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을 굶고 오후에 받았다. 아침식사를 했다고 안 해주겠다는 것을 사정해 겨우 받았다.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 한 분이 독감에 걸렸다고 진료를 받으러 왔다. 그러고 보니 나도 독감예방접종을 하지 않아 온 참에 맞기로 했다. 예방접종도 이번이 처음이다.

혈압, 혈액검사, 대소변검사, X선, 골밀도, 심전도 등 기본검사만 받기로 했다. 위내시경, 장내시경은 안하고. 대변검사는 그 병원에선 하지 않는단다. 대신 노인 기능평가를 한다고 이런저런 질문이 적힌 용지를 내밀며 해당사항에 체크를 하라고 한다.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내 나이가 몇이라고 이런 검사를 받으라는 걸까.

할머니들은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신다. 내 자신은 전혀 나이 들었다는 생각이 없는데 주위에선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 건강검진도 안 받아도 되는데 자꾸 받으라고 하면서.

기본적인 것만 했는데 46,000원을 내라고 한다. 깜짝 놀랐다. 독감예방접종비가 4만원이란다. 65세가 넘어 공짜라고 하니 맞으라고 한 날에 맞아야 무료란다. 나는 정말 아는 것이 없다.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의사와 면담하며 확인했다. 골감소가 시작됐다, 처음 듣는다. 과체중에 허리둘레가 정상에서 벗어나 복부비만이다. 검사 때마다 듣는다. 그래도 혈압 당뇨 고지혈이 없으니 양호하다고, 아침마다 1시간 이상 걸으니 누구보다 건강관리 잘 하고 있다고 자만에 빠졌다. 그래서 건강검진도 받지 않으면서 내 나이에 이만하면 짱짱하다고 객기를 부린다. 의사는 허리둘레 줄이고 근육강화운동을 꼭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통보서에 공복혈당이 높게 나왔다. 아침식사 후 6시간이 지났으니 정상으로 나와야 하는데 기분이 나쁘다. 매일 홍시를 먹어서일까. 그날 아침에도 먹었다. 공복혈당은 식후 8시간이상 지난 후의 혈당치이니 이 정도는 높은 것도 아니라고 자위를 하다가 그래도 조심은 해야지 마음을 바꿨다.

근육강화, 복부지방 줄이기, 당뇨관리에 마침맞는 것은 무엇일까. 108배를 시작했다. 혼자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다.

삼십 번 쯤 하니 허벅지가 땅기고 아파 포기하고 싶어졌다. 작심삼일이라는데 하루도 못하면 이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쉬었다가 겨우 열 번을 더 했다. 또 쉬었다. 다섯 번 다시 열 번 그러기를 여러 번, 만신창이가 되어 백팔 번을 해냈다. 방바닥에 널브러졌다. 숨소리인지 앓는 소리인지 사나운 짐승이 큰 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얼굴은 땀범벅이 됐고 심장은 쿵덩쿵덩 도구때 질을 한다. 사지는 움직일 수조차 없어 그야말로 큰 대자로 뻗었다. 10여분이 지나니 숨도 고르게 쉬어지고 땀도 식었다. 물을 마시러 가는데 다리가 풀려 허공에서 걷는 것 같다.

다음날 아침 공원을 걷는데 등산을 다녀온 것 마냥 근육이 땅긴다. 매일 할 수 있을까. 약국에서는 잊고 지냈다. 집에 들어가 다시 108배를 시작했다. 허벅지가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여러 번 쉬어가면서 끝냈다.

108배의 의미- 우리 몸에는 눈, 귀, 코, 혀, 몸, 의. 육근이 있어 서로 교차하여 교감을 하므로 6根X6識 36이 되고, 과거 현재 미래 3생을 곱해 108이 된다. 이것은 우리의 몸과 입과 뜻(身口意) 3업을 청결하게 한다는 뜻으로 뉘우치는 참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참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고 회는 앞으로 잘못을 짓지 않겠다는 맹세의 의미라고 한다.

셋째 날 다 풀리지 않은 다리로 108배를 시작했다. TV에서 유명 연예인이 나와 혼자서 100인 분 라면 끊이는 미션을 한다. 양을 똑 같이 나누지도 못하고 어떤 것은 다 퍼지고 또 다른 것은 국물이 하나도 없고. 몸값 비싼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 쩔쩔매며 안 해도 될 일을 저리 열심히 할까.

50 번 쯤 하니 종아리에서 쥐가 나려한다. 그 스타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쉽게 유명인이 되는 게 아니다. 그 만큼 자기 관리를 하니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극한의 상황도 아닌데 이것도 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야말로 커서 무엇이 될까. 천천히 쉼 없이 한꺼번에 마쳐보기로 했다. 온 얼굴이 찌그러졌지만 해냈다. 또 뻗었다. 남편은 허리둘레 줄이기 전에 부처님부터 만나게 되는 것 아니냐고 차츰차츰 횟수를 늘리라고 한다.

절을 하는 자세가 엉망이다. 불교에서 하는 방식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내 몸에 좀 쉬운 방식으로 한다. 백여덟 번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좀 단련이 되면 올바른 자세로 운동량을 늘릴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녀의 취업이나 결혼을 위해, 사업 번창을, 건강을 위해, 극단의 절망을 잊기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절실하게 한다. 나이 먹어 건강하게 잘 지내려면 108배 같은 운동은 밥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밥을 먹듯 꾸준히 할 생각이다.

어느 아주머니가 아들을 잃고 살 기운이 없어 우울증에 빠졌다. 바깥출입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니 산사에 가 안정을 취하길 권했다. 고심 끝에 스님과 상담을 하니 아침에 3000배 저녁에 3000배를 하라고 했다. 그 아주머니 일주일도 못 채우고 우울증 다 나았다고 도망치듯 절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나의 밥인 108배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 과체중도 허리둘레도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