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시어머니가 퇴원해 다시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처음 요양병원으로 모셨을 때 두세두세 했던 것처럼 대학병원에 계시는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행이 수술결과가 좋아 이제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당신은 치매고 팔십이 되던 해 발병했으니 8년째다. 어느 날 금가락지가 없어졌다는 둥, 며느리가 돈을 가져갔다는 둥, 평소와 달리 목소리가 커지고 사나웠다. 초기증상이었다. 그러다가 집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 행동이 어찌나 민첩한지 눈 깜짝할 사이였다. 식구들이 찾다 찾다 못 찾아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지구대의 상습 가출자의 명단에 올랐다.

여름은 해가 길고 밖에 사람들이라도 다니지만 겨울엔 춥고 어두울 뿐 아니라 사람들의 활동도 많지 않아 여간 애가 타는 게 아니었다. 시어머니를 찾아 헤매기 여러 해. 잘못하면 객사할 수도 있겠다는, 시체도 못 찾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했다. 4년째다.

처음엔 적응을 못해 밖으로 나오려고만 해 병원 측에서도 애를 먹었다. 못 나가게 하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때리고. 전화벨만 울리도 시어머니한테 무슨 일이 있어 요양병원에서 온 것 같아 가슴이 철렁하곤 했다.

몇 개월 후부터 잘 계셔서 자식들도 마음을 놓았다. 병실의 어른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차츰 면회 갔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매주 가던 길이 2주로 멀어지더니 최근에는 두어 달까지 길어졌다.

시어머니가 넘어졌다고 연락이 왔고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에 갔다. 여러 검사가 하루 종일 이루어졌고 고관절 골절이다. 고령인데 수술을 할 수 있을까? 토요일 일요일로 이어져 가슴 졸이는데 월요일 수술을 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인공관절을 넣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란다. 이미 치매에 파킨슨병까지 있어 걷는 것이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화장실은 다닐 정도는 되었다. 이번 일로 걷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당신이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병원에서도 계속 무통주사를 주장했고, 요양병원에서도 진통제를 드리라고 한다.

진통제 없이 10년 사시며 아파하는 것 보다 진통제 복용하며 아프지 않게 5년 사는 편이 훨씬 낫다는 내 나름의 판단이다. 남편은 어머니가 나이 드시면서 너무 고생을 한다고 눈물바람이다. 가뜩이나 여름 내내 농사일로 지쳐있는데 어머니가 수술까지 하니 남편 얼굴에선 할아버지 태가 확 난다.

요양병원 병실에는 할머니들 일곱 분씩 계신다. 3층에는 이런 방이 네 개 있고 거실이 있다. 침대에 누워 있기가 불편하면 거실까지 걸어 나가기도 하고, 여럿이 소파에 앉아 있지만 얘기 소리는 들리지 않고 우두커니 TV만 바라보신다. 나이도 병세도 그만그만하시다. 이번 사고도 거실까지 나갔다 들어오다 일어났다.

시어머니는 당신 침대를 못 찾았는지 다른 분의 자리로 가셨고, 그 주인이 눕고 싶다고 가라고 하고 시어머니는 비켜주지 않고, 옳다 커니 그르다 커니 옥신각신하다 넘어진 것이다.

시어머니가 정상이라면 당신 침대 못 찾을 리 없을 거고 다른 할머니도 정상이면 치매라서 그러니 시어머니 자리로 데려다 주었을 것이다. 나이 듦이여, 병이여. 생로병사라지만 슬픈 현실이다.

퇴원하던 날 집으로 못 오시고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를 보며 갈피를 잡기 어렵게 뒤섞여 어수선했다. 노년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갈 수는 없을까. 양 명절 때 하루라도 집으로 모셨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못하게 되었다. 걷지는 못하더라도 수술 부위가 아프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약국에 오시는 할머니들은 죽을 일이 걱정이라고 걱정을 하신다. 저녁 잘 먹고 자는 듯이 갔으면 좋겠단다. 이것은 나이 드신 모든 분들의 소망사항일 것이다.

40년도 훨씬 전 우리 할머니도 장수하셨는데 항상 “이렇게 아파도 안 죽는데, 도대체 얼마나 아파야 죽는지 모르겠다.” 고 하셨다. 시어머니도 풍채가 좋았는데 이제는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했다. 이쯤 되면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얼마나 아파야 죽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이런 모습을 뵐 때면 안쓰럽다 못해 불쌍한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친정 외숙모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외삼촌은 돌아가신지 3~4년 지났고 외숙모도 나이가 있고 많이 아파 요양병원에 계셨다. 외숙모가 편히 가시고 싶다고 산소마스크 같은 것은 끼우지 말라고 하셨고 자식들 간에도 합의가 되었단다.

“어머니가 호흡곤란이 심한데 어떻게 할까요?” 막상 이 전화를 받으니 “편안히 돌아가시게 그냥 놔두세요.” 이렇게는 말을 못하겠더란다. 대학병원으로 모시고 갔단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일주일 정도 더 생명 연장을 하셨다고 한다.

엄마만 더 고생시키고 자식들 돈 많이 들어가고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을 한 것 같다며 외사촌은 허탈해 했다. 이제는 엄마가 더 이상 안 아파도 되니 마음이 놓인다며 “나 이기주의자지?” 외사촌 여동생이 나를 붙잡고 운다.

시어머니에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대학병원 응급실이 아니라 호스피스 병동으로 모시고 싶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존엄사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다. 이미 치매로 인간의 존엄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지만.

당신은 이제 고관절 수술로 걸을 수 없어 중환자들이 있는 요양병원 2층으로 퇴원했다. 또 다시 모르는 사람들이고 수술한 자리는 아프고 어떻게 적응을 하실지. 당신의 노년은 자꾸만 어려워지고 남편의 얼굴은 더 할아버지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