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김 현 철

오는 16일에서 17일 이틀에 걸쳐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가 전주에서 개최된다. 벌써 5회째를 맞이한다고 하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생각될 만큼 익산에서의 생활이 깊어진 듯하다. 2015년 전주에서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가 처음으로 열렸다. ‘지역경제의 세계화’가 아닌 ‘지속가능한 지역’에 대한 의제를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공유되었던 자리였고 더욱이 민간 주도로 기획되고 운영되었던 행사였다. 지역에서는 모두의 관심밖에 머물러 있던 사회적경제 분야 활동가와 연구자들에겐 가슴 벅찬 행사였고 특히 폐막식은 민간 활동가들이 사회를 보고 각자 도시락을 챙겨와 행사장 마당에서 나누어 먹으면서 진행되었으며, ‘행복의 경제학, 전주 선언문’을 채택한 기억은 아직도 감동으로 남아있다.

이 행사에서 필자는 주발제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를 처음으로 만났다. 헬레나는 당시 사회적경제 활동가들의 필독서처럼 여겨지던 ‘행복의 경제학’의 저자였다. 원래 이 책은 2011년 다큐멘터리를 엮은 것이었다. 헬레나와 그의 동료들이 연출한 이 다큐멘터리는 공동체 붕괴와 환경 파괴 등의 세계적인 위기의 원인을 ‘세계화’에서 찾고 그 대안을 ‘지역화’라는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헬레나는 1970년대 중반 히말라야 오지에 있는 라다크를 방문했다. 라다크는 세계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로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곳이다. 라다크의 어느 공동체를 방문했던 헬레나는 한 청년에게 ‘이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을 보여 달라’고 물어보았다. 그때 돌아온 답변은 그런 집이 없다는 것이었다. 협동과 신뢰를 바탕으로 절제된 라이프스타일을 지녔던 라다크에는 ‘가난’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문제는 ‘공존’이며,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줄곧 ‘행복함’을 느끼면 살았다.

그 후 십여 년이 흐른 뒤 헬레나가 라다크를 다시 방문했을 때 예전에 만난 그 청년이 관광객들에게 ‘우리를 도와주세요. 우리는 너무 가난해요’라고 구걸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약 십여 년 동안 라다크는 세계화라는 글로벌 경제의 영향으로 문화적 열등감과 자기혐오가 만연하였으며 라다크적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헬레나의 ‘행복의 경제학’에서는 라다크 공동체를 지탱해 온 오래된 지혜 (ancient wisdom)의 회복을 촉구하면서 세계화에 맞서는 진정한 힘은 자치정치, 자급경제, 그리고 자존의 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지역화 (local)’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로컬의 미래’에서 세계화는 세상의 국경이 사라지고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아이디어와 혁신이 자유롭게 왕래함으로써 무역관계망으로 연결되어 모든 나라가 상호 의존하고 서로 협력한다고 한다고 하지만 세계화의 본질은 무역과 투자의 규제를 완화하는 계획된 경제활동이며, 이로 인해 대기업과 은행은 전 세계의 로컬시장에 자유롭게 진입해서 그 곳을 장악한다고 헬레나는 지적하고 있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나 ‘경제적 부’와 비례하지 않는다. 1971년 브릭먼과 캠벨은 집단적 행복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삶에서 소득과 부를 포함한 객관적 상황의 개선이 웰빙에 주는 효과는 일시적일뿐이며 지속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제시하였다. 1974년,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인구통계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은 수년간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행복에 대한 실증연구를 진행한 결과, 인생 전체에 걸쳐 볼 때 소득의 변화는 행복과 실질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특히 1946년부터 28년간 30개 국가의 행복 규모를 연구한 결과, 모든 국가에서 경제적 소득이 증가하면 행복지수도 올랐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이 증가하더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미미했다. 국가별 비교에서는 가난한 나라의 행복지수는 높았지만, 선진국의 행복지수는 오히려 낮은 결과를 나타냈다. 이를 ‘이스털린 역설’이라 부른다.

몇 년 전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이란 책을 학습하면서 책의 저자 중의 한명인 로마대학교의 브루니 교수를 초청하여 특강을 열었던 기억이 있다. 브루니 교수는 ‘관계재’를 설명하면서 행복을 소득과 관계의 함수로 설명하였다. 즉, 소득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느라 인간관계와 가정생활에 쏟을 시간을 줄여 일에 쓴다면, 그래서 우리 관계의 질과 양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 온다면, 소득의 증가가 행복에 미치는 총체적인 효과는 부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소득이 행복에 미치는 총체적 효과는 소득 수준이 낮을 때는 긍정적이지만, 일정한 임계수준을 넘어서면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득수준이 매우 낮은 사람이라면 소득이 늘면서 관계의 질 또한 좋아지지만, 소득이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관계의 질은 낮아져 행복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라다크의 공동체가 공존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보다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상기시켜 보면 일면 동의가 된다. 세계 오지의 공동체까지 스며든 세계화는 경제적 소득활동을 부추겼고 행복의 근원이었던 관계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써 ‘가난’이라는 글자를 새기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국가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빠른 산업화를 이루었고 그로 인해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경제적 부’가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 버렸고 우리 사회를 지탱해오던 공동체는 붕괴되었으며, 심지어 가족공동체의 해체 비중도 높아졌다.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지역경제의 의존성은 심화되어지고 이들이 점령한 시장에서 이기적 소비주체로 우리들은 변해가고 있다. 이는 결국 지역과 도시를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행복’이라는 담론을 정책의 우선과제로 삼는 지자체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정부가 포용경제와 포용사회를 정책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라다크’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를 다시금 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