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단종 계유년에 수양대군 이유가 정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다. 이유는 즉위 후 여러 업적을 남긴 세조(世祖)가 됐다. 세조에 맞서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이 단종 복위를 도모했다. 그러나 변절자의 밀고로 실패했으니,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처형되거나 자결하여 절의를 지킨 사육신으로 칭송받고 있다.

단종 복위는 성공할 가능성도 있었다. 명나라 사신을 위한 창덕궁 연회 때 칼을 차고 왕을 호위하는 별운검(別雲劍)으로 유응부와 성승(성삼문의 부친)이 선정됐다. 유응부 등은 연회에서 세조와 세자, 중신들을 죽이기로 계획했다. 그런데 낌새를 알아 챈 한명회의 계책으로 운검이 취소됐고, 세자는 병을 핑계로 연회에 불참하는 돌발 상황이 생겼다.

유응부는 거사 실행을 주장했다. 하지만 복위를 기획했던 성삼문과 박팽년은 이런 상황 변화가 하늘의 뜻이고, 경복궁에 있는 세자가 군사를 이끌고 오면 성패를 알 수 없으니 후일을 도모하자면서 반대했다. 유응부는 거사가 지연에 따른 기밀 누설을 우려했다. 비록 세자가 현장에 없지만 세조와 중신들을 제거하고 단종을 호위하여 옹립한다면 거사를 성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거사는 미뤄졌다.

쇠는 달궈졌을 때 쳐야 하는 법인가! 때를 놓치자 유응부의 예상대로 단종 복위에 동참했던 김질이 장인 정창손과 함께 거사를 밀고했다. 세조는 자결한 유성원을 제외한 5명을 잡아들이고 온갖 고문과 회유를 했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세조의 왕위 찬탈을 꾸짖다가 끝내 멸문지화를 당했다.

잔혹한 고문이 자행된 국문에서 이들의 절의는 대단했다. 특히 세조를 족하(足下)라고 부르면서 꾸짖은 유응부의 기개는 놀라웠다. 그는 “사람들이 서생과는 함께 일을 모의할 수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라고 하면서, 우유부단하여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버린 선비들의 무능함을 질타했다.

계유정난 주역이었던 한명회의 노회함을 볼 때, 이들이 그날 거사를 실행했더라도 성공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때를 놓치면 수많은 변수가 생겨 당초 의도했던 바와 다른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성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지만! 행동지향적인 유응부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고 느껴진다.

역사를 보면 결단의 때를 놓쳐 운명이 바뀐 일이 널려 있다. 중국 천하를 두고 다퉜던 항우와 유방이 홍문의 연회에서 만났을 때, 항우는 그 자리에서 유방을 죽여 후한을 없애라는 범증의 계책을 묵살했다. 초한지에서는 항우의 숙부 항백이 유방을 보호했고, 항우가 번쾌의 기개에 눌려 유방을 죽이지 못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항우의 우유부단 내지 자만의 결과였다고 생각된다.

자고로 역사의 흐름을 바꾼, 특히 상층부 주도로 역사를 바꾼 사건은 전격적으로 일어났다. 최근의 사례를 김영삼 대통령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영삼은 30년 가까이 권력을 틀어쥔 군부의 힘을 빼기 위해 대통령 취임 9일 만에 전격적으로 하나회를 숙청했다. 국가경제의 방향을 바꾼 금융실명제는 취임 후 6개월 만에 이뤄냈다. IMF 사태에 대한 엄청난 과오와는 별개로, 민주화의 초석을 놓은 역사적 업적은 그의 과단성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최근 대통령 국정 지지도와 더불어민주당 정당지지율을 보면 어이가 없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방역은 말할 것도 없고, 역대 어느 정권보다 탁월한 남북관계와 외교적·경제적 성과, 복지 향상을 일궈냈다. 언론이 온갖 프레임을 동원하여 대통령과 170여 석 여당을 사사건건 씹어대도 괜찮을 만큼 민주화도 이뤘다. 그런데도 지지율이 형편없다. 물론 이전 정권보다는 높지만 말이다.

왜 그럴까? 조국 사건에서 시작된 불공정 논쟁, 부동산 가격 급등, 젠더 갈등, LH 사건 등 때문일까? 서울·부산 시장 선거 참패, 대선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윤석열, 30대 돌풍을 일으킨 이준석 때문일까? 나는 그 원인이 정부·여당의 과단성 결핍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정부·여당의 개혁에 대한 절실함을 의심한다. 민생정책은 항상 때를 놓치고 내놓는  면피용 일회성 부실정책으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특히 정당 지지도가 급락한 것이다.

또한 힘든 것보다 지루한 것을 못 참는 사람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개혁과 민생에 대한 쇼맨십 부재도 큰 문제다. 이준석의 따릉이 출근과 윤석열 동향을 대통령의 G7 회동보다 크게 보도하고, 국민의 공분을 자아낸 대일 손해배상청구를 묵살한 반민족적 판사 비판은 묻어버리면서, 이재용 사면을 노래하는 수구 상업언론만 탓할 때가 아니다. 예상치 못한 국민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아젠다로 이슈를 점하는 이벤트를 못하는 정부·여당의 무능을 반성해야 한다.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저것 재는 서생들의 고담준론이 아니다. 대선 및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이성과 논리는 절실함에서 나오는 감정을 이길 수 없다. 아직도 변하지 못하고 국민의 마음을 얻을 때를 놓친다면, 2번의 큰 선거에서 필패할 것이다. 그로 인한 국가의 미래는 암울하겠지만 어찌하겠는가?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인 것을! 실기하여 지지자를 이탈시키는 정당은 존재 가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