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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천주교의 아름다운 순례길

채수훈

세계에 종교가 탄생한 이후 성지순례가 하나의 종교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성지순례는 세계인의 걷기와 자전거 여행이 더해지면서 관광문화로 거듭 부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달여 동안 오로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서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은 유럽 이베리아 반도 북쪽을 통과하여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지대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시까지 800km가 넘는 좁은 길이다. 9세기 산티아고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유럽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 성자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되면서 오늘날 순례길이 생겼다. 유럽회의는 1987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유럽의 첫 번째 문화여행로 선포하였고,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종교 순례자와 세계 여행자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고, 파올로 코엘료의〈순례자〉가 출간되며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에도 4대 종교(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의 성지 순례길인 전북 아름다운 순례길이 2009년에 조성되었다. 산티아고처럼 단일 종교의 순례길이 아닌 4대 종교가 화합하여 만든 길이라서 그 의미가 더해졌다. 전북 아름다운 순례길은 천주교의 나바위성지와 천호성지, 불교의 송광사와 미륵사지석탑, 원불교의 만덕산과 원불교수련원, 개신교의 서문교회 등 전주와 완주, 익산에 있는 4대 종교의 성지 180km를 연결한 길이다. 수많은 종교인과 답사객들이 발걸음하면서 문화재청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길로 선정되었으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전북 아름다운 순례길은 총 7코스로 연결되어 있다. 이 순례길 중 3코스인 망성 나바위성당에서 비봉 천호성지까지 총 24km의 천호성지 길에 유독 관심이 갔다. 조선시대 익산 천주교 전래와, 무진 박해 및 순교자 묘역이 조성된 곳이 있기 때문이다. 이 순서대로 답사를 해야 시대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그 발자취를 한걸음씩 따라가 보고자 한다.

익산은 서해가 인접해 있고 금강과 만경강 있어 포구가 발달하였다. 고대부터 자연스럽게 수로교통을 따라 물류와 문화가 이동하였고,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었다. 금강의 성당포구 주변은 불교가 전래 된 법성포, 우리나라 두 곳밖에 없는 ㄱ자 교회인 두동교회, 나바우성당 등 다양한 종교의 도래지가 되었다.

금강 옆 황산 포구 나바위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1845년에 청나라에서 라파엘호를 타고 우리나라 첫 사제가 되어 첫 발을 디딘 축복의 땅이다. 1897년에 초대 주임으로 베르모렐 신부가 부임하였고 본당 건축 양식은 처음엔 한옥이었다. 1917년에 흙벽은 서양식 벽돌로 하고, 성당 입구에 고딕식 벽돌을 붙여 종탑을 세웠으며 외부 마루는 회랑으로 바꿨다. 건축 양식의 특이함으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18호로 지정되었다.

이 성당은 망성면 화산리 나암마을에 있다. 나바위는 나암의 우리말 표기로 너럭바위가 화산에 있어 생긴 이름이다. 예전에 화산교회라 불렀는데 완주 화산교회와 명칭이 겹쳐져서 나바위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 여산은 호남의 첫 관문이었다. 금강, 평야와 첩첩산중의 분기점이자 국도 1호선의 길목에 위치한 까닭에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천주교도 다른 지역에 비해 빠르게 전파되었고, 심한 박해를 받았던 현장이기도 한다.
여산성지는 무진박해(1868년) 때의 천주교 순교성지로 전주교구 제2의 성지가 되었다. 1866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 탄압정책으로 시작된 박해는 1868년에 이르러 가장 극심하였다. 지금 여산은 면지역에 불과하나 박해 당시에는 사법권을 지닌 여산부사가 즉결 처형을 시킬 수 있었다. 이때 고산, 금산, 진산의 깊은 산속에 숨어 살던 많은 신자들이 여산동헌에 끌려와 23명이 참수를 당했다. 전주 숲정이 순교성지 다음으로 순교자가 많았다고 한다.

여산동헌에서는 신자들이 손을 뒤로 결박하고 얼굴에 물을 뿌린 후 그 위에 백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시켜 죽게 하는 백지사형이 집행되었다. 여산 숲정이에서는 참수형으로 배다리 근처에서 교수형이 처해졌다. 여산옥터는 옥에 갇힌 신자들의 고통과 굶주림의 혼이 서려 있는 곳이며, 여산동헌 뜰에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강화를 위한 척화비가 세워져 있다.

천호산은 익산과 완주 경계에 있는 501m산이다. 익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천호성지를 가는 길은 여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741호인 천호로를 따라 문드러미재를 넘어가야 한다.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불과하지만 옛날에는 신도들이 험한 산 고개를 넘어 다녀야 갈 수 있었던 곳이다. 천호는 기해박해(1839년) 이후로 박해를 피해와 숨어 살던 신자들이 교우촌 생활을 했던 곳이다.

전북 아름다운 순례길 중 천호성지길은 150년 전에 목숨을 걸고 종교를 수호하며 유교 체제를 바꾸려는 발칙한 시도였다. 조선 조정의 의문점은 신자들이 그처럼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천주’라는 존재였다. 한국 카톨릭은 그때부터 ‘천주교’로 불리게 되었다.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종교는 피보다 더 진한 듯하다. 이 순례길 따라 익산지역 천주교의 전래와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천주교 초기 신앙공동체 생활과 종교탄압과 박해에 맞선 거룩한 순교에서 천주교의 원초적인 사랑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순례길이라기 보다 숭고한 순례길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