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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꽃수저입니다

(유)함해국 대표

유 은 미

동생이 도예가이다. 가끔 도예작업을 하거나 수업을 할 때 종종 귀동냥으로 도자기 작업의 특성에 대해 듣기도 한다. 하나의 도기가 완성되기까지는 흙의 종류, 형태, 날씨, 불의 온도, 유약의 종류와 농도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같은 디자인이더라도 모두 다른 모양이 된다고 한다.

어느 한 날은 같은 유약을 썼는데 전혀 다른 문양이 나왔다. 왜냐고 물어보니 불에 따라 유약이 꽃을 피우는 형태가 다르다고 했다. 이것도 꽃이라 표현하냐 물으니 어떠한 꽃을 피우는지가 도예 기술의 정점이라 하였다. 수많은 경험과 실패에서 나오는 꽃일수록 더욱 아름답다면서 말이다.

최근 각종 미디어에서 수저에 빗댄 현실을 풍자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더니 언어사전에 등록될 정도로 사회의 한 현상이 되었다.

‘금수저’

이전 우리에게 금수저는 ‘금으로 만든 수저’였지만 최근의 금수저는 ‘부유하거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적 여유 따위의 좋은 환경을 누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통용된다.

이 말은 우스갯소리로 시작하였지만 이 안에는 청년들의 박탈감, 상실감을 고스란히 녹여낸 가볍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상위 몇 %의 금수저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대부분은 소위 흙수저에 해당된다. 태어나는 순간 수저의 색깔로 미래가 결정된다는 불안감은 현재 경제 저성장과 장기 미취업 등과 맞물려 단순 걱정이 아닌 현실이 되어버렸다.

기회가 차별됨에 따라 노력과 실력보다는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만연해진 사회는 장밋빛 미래보다는 도태되고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앞으로의 삶에 더더욱 절망하고 있다. 이는 노력으로도 바꿀 수 없어 미리 포기해버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와 실력과 노력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 나갈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함에도 이미 달콤한 기회에 길들여진 사회는 그것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청년들은 이러한 구조에 맞서며 돌파해 나가기도 한다. 여러 악조건에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현실에 맞서 도전하며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면서 말이다.

필자 역시 도드라지지 않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공직자인 아버지의 첫 발령지인 순창군 쌍치면에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뱃속에 있던 나와 어머니는 하루종일 걸어 도착했다. 변변치 않은 살림에 마루조차 쩍쩍 갈라진 단칸방의 셋방살이로 시작해 산달이 다가와 아버지가 빚을 받으러 객지로 나간 사이 나는 태어났다. 어려웠지만 현명하신 부모님을 만나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은 금수저보다 더 큰 행운이었다. 지금의 자존감은 이 사랑을 기반으로 나온 듯하다. 여차여차 장성하여 진로를 결정할 때 쯤 전공과 전혀 다른 농업회사를 선택한 것도 ‘잃을 것도 없으니 도전해 보라’는 부모님의 허락에 시작하게 되었다. 월급도 없이 결혼도 안한 아가씨가 농업을 한다는 건 일반사람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 도전해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할 위기들을 헤쳐 나가며 나는 점점 단단해졌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문양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금수저가 부러울 때가 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내 삶을 스스로 주도하며 만족할 만한 삶을 이루고 있다.

가끔 청년들에게 강의를 하며 전달할 때에 이런 말을 하고는 한다.

지금의 삶에 얼마만큼 만족하느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살만큼 벌며, 쉬고 싶을 때 쉬는 그런 자주적인 삶을 사는 나는 삶의 만족이 99%라고 말이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그 뜨거운 불을 견디지 않았다면 지금의 삶은 없었을 거라면서 강의를 끝맺곤 한다.

이러한 말들이 지금 눈앞에 해결해야할 많은 숙제가 있는 청년들에게 얼마나 마음에 와 닿을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이미 많이 지쳐있고 힘내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무른 흙은 불이 닿지 않으면 단단해지지 않고 초벌된 흙은 몇 차례의 불을 견디면 예쁜 유약꽃이 피어난다는 것이다.

그들이 불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혹여 불에 타버리더라도 이들이 일어설 수 있는 기회들이 충분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는 함께 손을 잡고 가는 우분투의 지혜처럼 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더욱 손을 꽉 잡아 버텨줘야 할 것이다. 그들이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말이다.

이러한 사회가 된다면 아름다운 꽃수저는 우리 모두의 손끝에서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