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함해국 대표

유은미

「해가 어느 지점에서 낮아져 눈이 부실 때쯤 저 멀리 푸른 지평선 너머에서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트랙터 한 대가 오고 있다.

그 안에는 일을 마친 사랑하는 내 아들과 조막손으로 맘껏 흙에서 놀다 온 손자 손녀가 함께 타고 돌아오고 있다. 이들 모두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얼마나 뒹굴었던지 흙을 잔뜩 묻힌 채 해맑게 웃는 소리가 건강하다.

노쇠한 나를 대신해 내 아들이 자랑스럽게도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 이후엔 내 손자 손녀들이 이어갈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대지는 우리 가족을 지켜줄 것이며 우리 가족 역시 그 땅을 지키며 번성할 것이다.

내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간 이 명예로운 가업을 마친 나는 자랑스럽게 처음 씨 뿌리던 내 모습을 묘비에 새기며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상으로 생각하며 그린 소설이 아닌 필자가 직접 오스트리아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꼬마가 트랙터에서 수줍게 웃으며 내리는 모습에 함께 했던 일행 모두 감탄하여 낮은 탄성을 뱉어냈었다. 짧은 일상의 장면이지만 이들과 우리가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농업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었다. 농촌과 농업의 미래는 후대 세대의 계승이 있어야 한다며 귀농, 청년농 등 다양한 정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아직까지 그 효과는 미지수이다.

우리의 정서는 아직까지는 자식이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말리는 게 보편적이다. 굽은 허리 한 번 피지 못하고 평생을 지은 농사를 왜 자식들은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농업은 곧 가난이요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일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한 농부 가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같은 농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은 농업직불금이 곧 농민수당으로, 농민의 기본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다. 농촌에 살면서 어떤 가치를 실현할지, 어떠한 삶을 유지할 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농업직불금으로 농민 생존이 어렵다. 특히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중소농가는 기초생활 영위조차 심각한 수준이다. 그래서 어떠한 가치를 생각하기 이전에 어떻게 소득을 올려야 하는지에 집중되어 있다. 농촌에는 환경, 철학 등은 무시된 채 생존을 위한 투쟁만이 남아 있다. 거기에 자연재해에 대한 리스크까지 부담한다고 한다면 그 생존은 더욱 처절해진다.

농가소득대비 농업직불금의 비중을 보면 유럽은 약 30%, 우리나라는 약 3%대이다. 농업예산 중 직불제 비중을 보면 EU 71.7%(2016), 스위스 85.5%(2016), 일본 33%(2015), 우리나라 17%(2018 추정)로 편성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농민에게 농업예산을 직접 주기보다는 각종 공모사업 중심으로 지급되어 직접적으로 농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컨설팅, 토건업 등에 대부분의 예산이 사용되고 있다.

충남연구원 박경철 박사는 “현재의 많은 농정사업과 농업직불금은 농촌 내 불평등과 불균형을 가속화해 중소농의 생존을 어렵게 하고 농촌 공동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주민의 생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농민에게 직접 주면 농민이 원하는 농업과 그들이 살고 싶은 농촌을 스스로 만들어 갈 것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인식들이 공감대가 형성되어 강진, 해남, 충남 등을 비롯한 몇몇 지자체에서 농민수당이 시작되었다. 월 5만원 정도의 작은 금액이지만 이는 농업의 공공성을 인정하고 그 가치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커다란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농민수당은 농촌 문화, 경관, 환경을 지키는 농민의 삶을 보장한다.

이러한 삶이 우리 자녀들에게 대물림되고 이들이 짓는 건강한 웃음이 농촌을 지키는 든든한 잔뿌리가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