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손무(孫武)가 춘추시대를 풍미한 전략가였다면, 전국시대를 장식한 전략가로 오기(吳起)를 꼽을 수 있다. 오자(吳子)로도 불리어지는 오기는 입신을 위해 노(魯)나라를 떠나 위(魏)나라 장군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전장에서 자신의 신분상 특혜를 버리고 항상 병사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다. 오기가 병사들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한 일화가 있다.

오기의 부대에 종기로 고생하는 병사가 있었는데, 오기는 병사의 종기에 찬 피고름을 자신의 입으로 빨아서 고쳐줬다. 이 소식을 듣고 병사의 어머니는 대성통곡했다. 사람들이 병사의 어머니에게 통곡하는 연유를 묻자 어머니가 답했다. 그 병사의 아버지도 오기가 종기를 입으로 빨아주자 이에 감격하고 전투에 앞장서다가 죽었으니, 이제 아들도 언제 죽을지 몰라서 운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고름을 빨아 병을 고쳐주는 어진 행동이란 의미의 고사성어 ‘연저지인’이 유래됐다.

군은 국가안보를 목적으로 합법적 무력을 행사하는 조직이다. 군의 유일한 선(善)은 우선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아가 적군이 감히 도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군비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군사적 능력은 군인의 숫자와 무기체계의 양과 질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군인 개개인의 애국심과 사기가 전투력을 좌우하고, 이들을 하나로 묶어 전략과 전술을 펼치는 지휘관의 자질이 승패를 결정함을 동서고금의 숱한 전사(戰史)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지휘관 특히 장군(將軍)이라고 불리는 장관급(將官級) 장교의 자질 자체가 군사력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각종 국방비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혈맹이라는 미국의 정치권 일각은 대북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실로 그 어느 때보다 안보태세 확립이 요구되고 있다.

이 같은 시점에서 얼빠진 군 사령관과 그의 부인이 저지른 엽기적인 ‘갑질’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군대 내에서 자행되는 갑질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중대한 상황에서 드러난 군 최고위 장군의 갑질은 우리 군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자가 지휘하는 군으로는 결코 우리나라를 지킬 수 없다.

지휘관에게 지피지기(知彼知己) 능력은 필수적이다. 아군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적 지휘관의 인간적·전략적 성향을 공감할 수 있어야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연저지인의 자세로 부하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면서 추상같은 군기(軍紀)를 세워야 하며, 적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다각도로 예상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약자에게 갑질이나 해대는 자에게 이와 같은 능력이 있을 리 없다.

분단의 현실과 군 조직의 특수성을 십분 인정해서 인권침해는 논외로 하겠다. 이 지휘관의 난행은 군의 기강과 사기를 해친 이적행위이며, 국방의무의 신성함을 부정한 반역행위다. 마땅히 철저히 조사해서 엄벌에 처함으로써 군기를 바로잡는 것이 국가안보를 다지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에 드러난 군대 내 갑질은 빙산의 일각이다. 연저지인까지는 아니어도 갑질을 막고 전투력을 향상시켜야 할 최고위 장군의 자세가 이 정도라면, 갑질 문화가 군대 내에 만연함을 방증하고 있다. 차제에 군 전체에 걸쳐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자들을 색출하고 군에서 축출해야 한다. 이들은 적폐세력이다.

지휘관으로서의 기본 자질도 없는 자가 군 최고위직에 오른 것 자체에서 우리 군의 인사 시스템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휘관의 전쟁 수행능력은 전쟁 이전에는 알 수 없다. 다만 잘 훈련되고 사기 충만한 강병(强兵)을 육성하는지를 통해 그의 능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와 군은 전군(全軍) 지휘관 및 주요 간부들에 대한 다면적 검증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민주정부 시절 공군 참모총장에 올랐던 장군이 준장일 때 1년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여름에 초병이 열사병으로 쓰러지자, 그 장군은 사무실 에어컨을 꺼버렸다. 군사비밀이 걸린 사무실의 창문도 닫아버리고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보냈다. 아들 같은 병사가 쓰러지는데 장군이 혼자 시원하게 지내는 것은 명예로운 행동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불의의 사고로 병사가 죽었을 때는 그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면서 며칠을 눈물 흘렸다. 거의 매일 사병식당을 찾아 식사하면서 병사들과 대화했다.

상부의 불합리한 지시에는 과감하게 시정을 요구하곤 했다. 장교들에게는 인격적으로 대하면서도 업무적으로 대단히 엄격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장군이 갑질 한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다만 따라가기 힘들다고는 말했지만!

아직도 이런 지휘관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군을 이끌도록 하는 것이 국방개혁이다. 군 사령관 갑질 사건을 보고 북한군과 미군이 우리 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