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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그리고

윤복순 윤약국약사

우리는 보통사람이기에 실수를 하고, 똑같은 실수를 하고 났을 때의 비참함 미련함에 한동안 말을 잃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은 그 실수 때문에 큰 감동을 받고 세상사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먹먹할 만큼 행복하기도 하다.

아침 밭으로 나갈 때였다. 이른 시간이고 일요일이어서 주차장엔 차가 꽉 차이었다. 요즘은 차들이 크다 보니 주차공간이 좁을 뿐 아니라 주차장도 모자라 우리 차 앞에 가로로 주차해 놓았다.

승용차가 말썽을 부렸다. 10년도 훨씬 넘게 탔고 밭에 타고 다니다 보니 겉도 속도 많이 낡았다. 정비를 받아 장감장감 그야말로 썩은 어금니 아끼듯 타고 다니다 이러다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새 차를 주문하고 트럭을 타고 다닐 때다.

트럭은 오토도 아니고 남편의 트럭 운전 실력은 겨우 밭에서 농협에 포도를 나를 때, 교통량이 많지 않은 시골길에서나 하는 정도다. 나도 트럭은 타보지 않아 옆에 타기가 조금 겁났다.

트럭 양 옆에는 중형차가 주차돼 있어 나는 타지도 못하고 남편만 간신히 들어가 차 빼기만 기다렸다. 그때 찌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보니 우측의 고급 승용차 범퍼를 긁은 것이다. 그 차는 검은색이고 트럭은 청색이라서 확실히 표시가 났다. 뿐만 아니라 찌그러지고 움푹 들어가기도 해 잠깐 사이에 많이도 다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준 주차증의 번호로 전화를 하니 받지 않았다. 새벽이고 모르는 번호라서 받지 않을 거란 생각에 문자를 남겼다. “죄송합니다. 출근길에 선생님의 차를 긁었습니다. 몇 동 몇 호에 살고 있어요. 수리 잘 받으셔요. 퇴근 후에 뵙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한나절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얼마나 화가 나면 지금까지 연락조차 안 할까. 밭에서 일하는 동안 내내 찜찜했다. 좋은 차라서 수리비도 많이 나올 것 같았다. 애꿎게 우리 차는 왜 빨리 나오지 않을까 딜러에게 독촉 전화 좀 해 보라고 했다.

속상하고 염치없기로 하면 남편이 더 하겠지만 사고 낸 죄인이라 아무 말이 없다. 나도 내 풀에 꺾여 차 주인이 성격 좋은 사람이기만 빌었다.

이때 연락이 왔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도 같은 라인 10층에 살아요. 아무개의 고모부입니다. 며칠 전 시골 갔다 담벼락을 받아 이미 긁혔던 자리예요. 차일피일 미루다 아직 손보지 못했습니다. 차는 봤습니다.”

주차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살인까지 하는 세상이다. 어떻게든 덤터기를 씌우려고 목소리부터 높이는 판국에 이런 천사분이 있을까. 10층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우리 약국에 약을 사러 오기에 나와는 잘 알고 지내지만 남편과는 거의 일면식이 없다.

그날 저녁 아저씨를 만났는데 슬쩍 색깔만 묻었지 별것도 아니니 아무 걱정 말라고 한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찾아뵙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갔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저씨를 만났다. 고맙고 미안하고 내가 한없이 작아졌다. 나보다 나이가 젊지만 훨씬 더 어른 같았다.

2~3년 전이다. 퇴근하고 주차하다 남의 차를 긁었다. 전화를 하니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다음날 연락이 되었는데 다른 지방에 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볼 일 다 보고 며칠 후에 만나기로 했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분이 아니다.

만나기로 한 날은 비가 왔고 밭에서 하던 일을 마저 하고 오기에 좀 늦은 시간이었다. 그 사람이 사는 아파트로 찾아갔는데 비가 더 많이 내렸다. 하루 종일 일을 했으니 많이 지쳐있고 비까지 맞아 남편의 몰골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된다.

차 주인은 젊은 아주머니다.

“밭에서 일하고 오다 보니 꼴이 아니고, 미안합니다.”

“이렇게 비 오는 날도 일 다녀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노인이 비 오는 날도 남의 일을 하러 다니는, 어렵게 사는 사람으로 알고 젊은 댁이 안쓰럽게 쳐다보더란다.

남편이 때는 이때다 싶어

“오늘 일해주고 일당으로 십만원 받았는데 이거면 차 도색하는 비용으로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돈을 내가 다 받아도 돼요?” 어떻게 다 받느냐고 미안해서 어떻게 하냐고 정말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더란다. 남편이 어쨌든 차를 긁어서 미안하고 나는 내일 또 일하면 된다고 하니, 만원 한 장을 빼 주면서 집에 가셔서 약주라도 한 잔 하시라고 하더란다. 남편이 고맙게 받았다.

보통사람들은 나도 언제든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는 것을 안다. 한 푼 두 푼 아끼며 살아가는데 남의 차 긁어 목돈 나가는 게 정말 속상하고 아깝다. 사는 모습이 서로 비슷비슷해 남의 속사정도 뻔히 알기에 역지사지의 마음이 쉬 되는 것 같다.

젊은 아기 엄마 때문에 위층 아저씨 덕분에 계산적이고 건조하게 살아가던 삶이 인간적이고 관계적인 세상살이로 바뀌었다. 나는 한 동안 10층 아저씨의 아름다운 마음에 많이 행복할 것이다. 실수도 행복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 나도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