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사회경제연구소 대표
권 태 홍

익산시가 환경오염도시의 오명을 쓰고 있다. 많이 나아졌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유해독성 지정폐기물을 낭산 폐석산에 불법 매립해서 지하수 오염과 토양오염 등 심각한 환경피해를 끼치고 있다. 그런가하면 함라면 장점마을은 집단 암 발병 마을이 되었다. 실 거주민 80여명중 최근 집단적으로 암이 발생하여 10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암으로 투병 중이다. 나머지 마을 주민에 대한 4대 암 검진에서 10여명이 2차 검진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최소 25%이상의 주민이 암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데다, 더 많은 암환자가 발생한 개연성이 작지 않은 것이다.
청정 자연부락이었던 장점마을이 환경오염으로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에 마을 위쪽 산기슭에 들어선 비료제조공장 가동 이후부터이다. 공장 바로 아래 있는 저수지가 오염되어 물고기가 떼죽음 했다. 24시간 가동되는 비료공장에서 특히 밤에 고약한 악취에 시달렸다고 한다. 지하수를 식수로 많이 이용했는데 지하수의 오염 때문에도 고통받았다. 주민들은 수도 없이 민원을 제기했지만, 별다른 행정조치는 없었다. 집단 암 발병 이후에 언론에 집중 보도되면서 작년 후반기부터야 행정조치들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지난 4월에 마을 주민들은 환경부에 역학조사 주민청원을 했다. 3개월간의 예비조사를 거쳐서 환경부에서 역학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더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다. 남원 내기마을의 사례 등에서 보듯이 환경오염과 주민피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더라도 그간의 주민피해에 대해서는 소송을 통해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법원의 판단은 훨씬 보수적이어서 인과관계를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는 현실이다. 정황상으로는 매우 뚜렷해 보이는 문제가 과학적으로나 법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우선은 환경부의 역학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큰 숙제가 되었다.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 공식 사과했다.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세상에 알려진 뒤 처음이다. 1200명이 넘게 사망했지만 그동안 정부는 소극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사과와 더불어 피해 구제 재원을 확대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고 피해가 발생한 후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또 피해자들 구제에 미흡했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해서 가슴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런 마음으로 환경부가 중심이 돼서 피해자 여러분들 의견을 다시 듣고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대처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책임져야 할 기업이 있는 사고이지만 정부도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는 지원을 충실히 해나가겠다" 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장점마을 주민들을 만났었다면 같은 행동과 약속을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재앙적인 집단 암 발병의 원인에 대해 적극적인 조사와 원인규명을 할 책임이 정부에 있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매우 어렵다에 그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인과관계를 반드시 증명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최근 이정미 국회의원실에서 환경부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역학조사를 실시함에 있어 노출평가와 건강영향조사를 이원화해서 조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그렇게 해왔다. 환경조사 따로 건강조사 따로 하고 나중에 두 결과의 인과관계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적극적으로 규명하는데 있어서 매우 치명적인 허점이 되어 왔다. 환경오염과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의 인과관계를 밝히는데 있어서 통합적이고 적극적인 조사와 해석이 필수적이다. 주민대책위원회는 노출평가와 건강영향조사를 통합해서 조사할 단일 조사팀을 만들어 달라고 환경부에 공식 요청했다. 또 주민건강영향조사 실시와 관련한 조사 내용 설계단계에서 주민의견을 현장에 와서 듣고 반영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조사과정과 결과의 신뢰성을 위해서 정부의 일방적인 시행이 아니라 정부와 주민이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도 요청했다.
주민대책위의 환경부에 대한 요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의무에 충실하기보다는 기관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임해온 것이 다반사였다. 환경오염과 주민건강의 관련성 문제는 기존의 화학물질에 대한 법적 관리의 테두리에 매이지 않고, 주민들의 입장에서 매우 폭넓게 가설을 세우고 적극적인 조사를 벌여야 규명이 가능하다. 조사의 설계단계에서 어떤 가설을 세울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또 환경조사와 건강조사가 하나의 팀에서 통합적으로 다뤄지고 인과관계가 조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사과정에 대한 관리는 환경부만이 아니라 주민들 또는 주민 추천 전문가가 함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위의 세 가지 요구를 환경부가 적극 수용해야 할 것이다. 이는 앞으로 환경피해에 대한 환경부의 역학조사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 더불어 낭산 폐석산에 매립된 불법 지정폐기물도 피해가 더 확산되기 이전에 환경부가 적극 나서서 빠른 시간 내에 모두 파내야 한다. 환경부의 관리책임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환경부와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가 다를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