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모르는 사람들과 패키지여행을 갈 때면 이번에는 어떤 사람들과 동행하게 될까 마음이 설렌다. 세 사람만 모여도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데 여러 사람이 같이 하는 여행에선 몇 명의 스승을 만날까 기대가 많다.

이번 여행의 인적 구성은 가족이 일곱 명, 부부 세 팀, 모녀 한 팀 총 열 다섯 명이다.

가족 팀은 그녀가 부모님과 큰 이모, 막내이모, 남동생의 딸 두 명을 데리고 왔다. 큰 이모는 팔십이고 부모님은 칠십대 후반 막내이모는 칠십, 조카들은 초등학교 2학년 4학년이다.

그녀는 어른들 챙기랴 어린 조카들 신경 쓰랴 고생이 많다. 그런데도 전혀 시끄럽지가 않다. 그녀가 돋보이는 이유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여행의 모든 경비를 그녀가 다 부담했다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야 모시고 다니지만 이모들 조카들까지는 그리 쉽지 않다.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나이 많으신 부모님만 모시고 다니기도 염려스러운데 노인 네 분이나 구채구를 모시고 온 것이다. 거기다 아버지는 중풍이 약하게 와 약간 다리를 끄시는 편이다.

구채구는 고산지대라 젊은이들도 걱정하며 출발하는 곳이다. 성도에서 구채구 까지는 버스로 8시간이나 걸려 밤 10시에 호텔에 도착했다. 어르신들도 애기들도 불평이 없다. 나도 지치는데 어르신들은 오죽했을까.

그녀는 어머니가 이모들과 사이가 좋아 아버지 어머니만 모시고 오는 것 보다, 이모들이랑 같이 오면 어머니가 덜 심심하고 더 좋아할 것 같아 이모들 까지 모시고 왔다고 한다. 그녀가 더 돋보인다.

그녀만큼이나 부모님은 물론 이모들도 훌륭하다. 당신들 때문에 일정이 늘어진다고 황룡에선 부모님과 큰 이모는 올라가지 않았다. 황룡은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4000m 가 넘게 올라가 서너 시간 걸어서 내려오는 코스다. 일행들에게 피해주면 못 쓴단다. 막내이모는 조카딸 마음이 고마워 힘들어도 같이하겠다고 했다.

막내이모는 틈만 나면 조카 자랑이다. 이 마음 착한 조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은데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란다. 잘 쓸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만 써도 감동일 거라고, 친구 분들에게 많이 자랑하시라고 했더니 이왕이면 전국방송 타고 싶단다.

모녀 팀의 그녀는 재작년 까지는 아버지까지 모시고 다녔는데 아버지의 건강이 허락지 않아 작년부터 엄마만 모시고 다닌다고 한다. 올해로 칠 년째란다. 매년 다닌다고 한다. 사십대 중반의 그녀가 일찍부터 깨달은 것이 부럽다.

그녀의 딸이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시고 난 뒤에 후회하지 말고 해외여행이랑 다니라고 아이디어를 주었단다. 엄마 없는 동안 동생도 잘 챙기고 아빠와도 잘 지낼 테니 집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면서. 모전여전이다. 아니 딸이 더 기특하다.

어머니는 식성이 까다롭다. 중국의 향신료 냄새 때문에 식사를 못하신다. 그녀는 매 식사 때마다 햇반을 챙기고 쌈장 풋고추 김 깻잎 북어조림 등 어머니의 밥과 반찬을 한 짐씩 메고 다닌다. 어머니는 삼겹살도 못 드실 정도로 비위가 약하다.

어머니는 팔순을 넘겼다는데, 허리까지 굽었는데 걸음도 잘 걷고 또 빨라 언제나 1등을 한다. 황룡에서 내려올 때도 제일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다.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는 게 싫은 것이다.

발맛사지를 받을 때도 어머니는 받지 않았다. 이미 여행경비에 포함되어 있는데도 멀쩡한데 뭣 때문에 하냐고 한다. 그런 돈 있으면 어려운 어린 애들이나 돕고 싶단다. 젊은 우리들은 염치도 좋게 다 받았다.

딸은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고 싶어 덜 복잡할 때 휴가를 쓴다고 한다. 큰 버스에 열다섯 명이 타고 다니니 좌석이 많이 남는다. 가족끼리 부부끼리 앉았다가도 장시간 버스를 탈 때는 혼자서 편하게 앉아 가는데 그녀는 꼭 어머니 옆에 앉아있다.

관광보다도 어머니 옆에 있어주고, 어머니랑 같이 잠을 자고,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주고, 버스 속에서 바깥 주변을 보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바로바로 알려드리고, 어머니 입맛에 맞는 음식을 챙겨드리고 싶어 같이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심청이가 살아 돌아왔을까!

우리를 뺀 두 부부팀은 형제지간이다. 나이 차가 별로 없어 보였다. 형제끼리 우애가 돈독한 것은 그렇다 치고 동서지간도 각별해 보였다. 반찬을 서로 챙겨주고, 고산지대라서 추웠는데 바람막이 옷을 준비하지 않았는지 형님이 옷도 사줬다고 자랑을 한다. 그들은 달밤에 형은 동생의 논에 동생은 형의 논에 볏단을 갖다 놓았다는 형제를 연상케 했다.

형제지간에는 동생이 말이 많고 동서지간에는 형님이 말이 많다. 아침 산책길에 마나는 사람은 형님 부부다. 그들은 술을 좋아하는데 형제지간에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 많이 해본 솜씨다. 어릴 때는 우애가 좋아도 각자의 가정을 이루면 이렇게 사이좋기가 쉽지 않은데 동서들이 돋보이는 이유다.

구채구와 황룡은 세계에서 제일 물의 색깔이 아름답다고 한다. 나는 고원지대의 녹색향연, 야생화들의 잔치, 하늘색 같은 하늘과 구름, 덥지도 춥지도 습하지도 않은 공기의 맛 등이 좋았다.

이 모든 것들보다 아름다운 것은 일행들이 보여준 가족, 가족애다. 젊은 40대들의 부모님에 대한 사랑, 형제끼리 일 년에 두어 번씩 여행 다니는 우애, 동서지간의 무던함, 오랫동안 그들이 마음에 남을 것이다.

감정도 나이를 먹어 척박해진 내 마음 밭에 가족 간의 사랑이란 거름을 듬뿍 받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