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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랑 남자랑

윤복순 윤약국약사

부부동반 여행길은 웃을 일이 많다. 특히 이 모임은 30여년 가까이 되어 묵은 얘기 햇 얘기 이야기 거리도 끝이 없다. 모두들 건강하고 사는 것도 비슷해 어느 얘기를 해도 곡해할 염려도 없다. 언제 만나도 반가운 사람들이다.

여행 둘째 날이었다. 짚라인, 카약킹, 튜빙, 점프와 수영 등 이런저런 놀이를 하고 탐쌍동굴과 탐짱동굴을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3시쯤 되었다.

여자들이 망고 사러 시장 구경을 나가자고 했고 남자들도 따라 나섰다. 더워서인지 그 시간에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이 많다. 여자들이야 어차피 구경을 나섰으니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재미가 있다. 남자들은 카약 탈 때 자세도 불편한데다 계속 노를 저어 허리가 아프다고 두 집 남자는 먼저 들어갔다.

다행히 제법 큰 과일 집이 문을 열었고 잘 익은 망고가 1Kg에 3달러란다. 여자들은 흥정에 들어갔다. 3Kg를 살 테니 7달러에 달라고 하니 주인 남자는 단칼에 고개를 쌀쌀 흔든다. 가이드는 2달러에도 살 수 있다고 했는데. 협상은 결렬되었고 여자들은 다른 과일 집을 찾아 나섰다. 남자들도 따라 왔다.

여자들은 한 술 더 떠 마사지도 받자고 했다. 한참을 걸어 한 집을 찾았다. 한 시간에 8달러다. 옵션으로 하면 30달러이다.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이 보통 7달러였는데 남편과 둘만의 여행에선 들어가 보지 못했다. 확실히 여럿이니 자신감도 생기고 용감해진다.

여덟 명이 할 거라고 손가락 여덟 개를 세우고 디스카운트를 외치니 7달러에 해 주겠단다. 저녁 8시에 오겠다고 언약을 했다. 모퉁이를 돌아서며 막내가 그 집 안마사들의 화장이 너무 진해 마음에 걸린단다. 두 막내도 화장이 거상에 벗었다고 한다.

한 참을 걸으니 마사지집이 또 나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죽 그 집으로 들어갔다. 수수하다. 7달러에 해주겠단다. 호텔에서도 가깝다. 8시에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한 남자가 목소리를 키워 신중하게 해야지 전에 약속한 집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야단이다. 말로만 한 예약이지만 우리 때문에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손해를 끼친다. 사정이 생겨 못 오겠다고 말 하러 가자고 했다.

남자들은 그런 체면구기는 일은 하기 싫은가 보다. 화를 낸 남자가 자기는 가지 않겠단다. 말없이 잘 따라다니던 총무도 안겠단다. “너는 가야지. 여자들만 갔다가 싸게 맞으면 어떻게 하라고.” 화낸 남자가 자기는 악역은 하지 않으면서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여자끼리도 문제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나이가 얼마인데 싸움이라도 할까봐. 남자들만 양심 있나 여자들도 있지. 조용히 얘기해도 되는데 왜 목소리를 높이지. 집에서도 불리하면 화부터 내. 남자들 성토장이 되어갔다.

두 남자가 아무래도 여자들만 보내기에는 안심이 되지 않는지 저만치서 뒤따라오고 있다. 번번이 여자들한테 지면서도 큰소리부터 치고 보는 것은 우리 집이나 남의 집이나 남자들의 특징인 것 같다. 여자들이 말로만 한 약속이니 어겨도 된다고 우긴 것도 아니고, 이중 예약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도 알고, 가서 사과할 마음도 있는데 말이다.

첫 번째 예약했던 집을 찾아갔다. 미안하다고, 착오가 생겼다고, 8시에 못 온다고 고개를 숙였다. 주인아주머니가 웃는 얼굴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안마사 하나가 우리말로 “괜찮아”하면서 환하게 웃어줬다.

내친김에 아까 그 과일 가게를 갔다. 남자 주인은 어디로 가고 여주인이 우리를 맞는다. 장사 잘 못한다고 아내한테 혼나고 밖에 나간 것은 아닐까. 망고 3Kg을 사고 그 나라 돈으로 주겠다고 하니 5만 킵만 주라고 한다. 1달러는 약 8,300킵 이니 7달러도 안 된다. 역시 거래는 여자들끼리 해야 한다. 남자는 이 나라나 저 나라나 팩하는 성질이 있는 것 같다.

망고는 샀으나 칼이 없으니 어떻게 깎아 먹을까. 여자들은 호텔 식당에서 칼을 빌리자고 하고 남자들은 하나 사서 쓰고 과일 집에 주고 가자고 한다. 절약이 몸에 밴 6.25세대 여자들이 헛돈을 쓸 리 없다. 먼저 방에 올라가 망고나 씻어 놓으라고 하니 그래도 또 여자들 뒤를 따라 온다.

식당에 가 망고를 보이며 깎는 시늉을 하며 칼 좀 빌리자고 하니 식사용 나이프를 준다. 방 열쇠를 보여주며 요리용을 달라고 하니 안 된단다. 그것도 감지덕지다. 접시까지 얻었다. 실생활에서 남자는 여자를 따라 올 수 없다. 그런데도 큰소리는 잘 친다.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다. 늦은 출발이라서 1시간여 기다려야 했다. 남자들은 화장한 안마사에게 마사지 받고 싶었는데, 여자들이 다른 곳으로 바꿔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말했냐고 물어 모두 크게 웃었다. 공공장소에서 웃는 웃음으로는 좀 컸다. 바로 한 남자가 자기 여자에게 눈치를 준다.

여자들이 벌떼같이 공격을 했다. 내년부터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다니자고 했다. 욱하는 성질에 두 남자가 바로 제발 그렇게 하자고 한다. 한 남자가 절대 반대란다. 이렇게 예쁜 여자들이 어떻게 보디가드도 없이 다니느냐는 것이다.

건너편에 여고동창 팀으로 보이는 아줌마들 칠팔 명이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저기도 여자들 끼리 왔지만 아무 일 없이 여행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네.

“에이, 저 여자들은 물짜그만.” 웃음보가 터졌다. 누가 봐도 그녀들은 우리 팀보다 젊고 세련되어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핑계 저 핑계로 여자들 따라다니겠다는 얘기네. 이만큼 큰 웃음 주었으면 데리고 다닐 만하지 않으냐고 한다. 남자는 영원한 여자의 종이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충성을 다해야 한단다. 말만 뻔지르르 하게 잘 하는 이 남자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여자와 남자, 다름을 인정한다. 오죽하면 화성남자 금성여자라고 하겠는가. 금성여자와 화성남자가 지구에서 살아야 하니 사소한 일로 늘 싸우면서도, 객지이니 서로 지켜줘야 해 부부가 백년해로하는 것 같다. 나부터도 큰소리 땅땅 치지만 남편이 아니면 남은여생 누가 나랑 놀아주겠는가.

아무쪼록 모두 건강해서 여자랑 남자랑 티격태격 하면서도 알콩달콩한 이 부부동반 여행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