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재길은 미천한 신분이었으므로 임금 앞에서 떨며 땀만 흘리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좌우에 있던 여러 의원과 신하가 모두 속으로 비웃었다.

정조가 가까이 다가와 진찰하게 하였다. “두려워 말고 네 솜씨를 다하라.” 그러자 피재길이 말했다. “신에게 한 가지 처방이 있는데, 이 증상에 써 볼만 합니다.” 웅담을 여러 약재와 함께 고아서 고약을 만들어 붙였다. 며칠이면 낫겠느냐? 하루면 통증이 멎고, 사흘이면 다 나을 것입니다. 정말 사흘 뒤에 다 나았다. 이로 인하여 피재길은 종6품 나주 감목관에 임명되었다.

그의 아버지 피홍즙은 종기를 고치는 의원이었는데 재길이 어린 나이에 생을 마쳐 의술을 이어받지 못하고 어머니 박씨가 남편 옆에서 보고 들었던 여러 처방을 배웠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종기를 고치지 못하고 정조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그는 함경도 무산으로 유배되었다.

21세기에도 애용되는 이명래 고약은 전통적인 고약과는 좀 다르다. 전수과정을 보자. 파리 외방전교회의 드비즈 신부가 1895년에 아산 공세리에 부임해 공세창을 헐고 성당을 지었다. 중국을 통해 입국했던 드비즈 신부는 라틴어로 된 약용식물학 책의 지식과 한의학 지식을 응용해 고약 만드는 비법을 창안해냈고 공세리 성당 신도였던 요한 이명래에게 전수했다.

이 고약은 처음에 드비즈 신부의 한국 이름을 따서 ‘성일론 고약’이라고 불렸다. 이후 이명래가 이 고약에 민간요법을 더해 1906년 아산에서 이명래 고약집을 개업했다. 성한 살은 다치지 않고 굳어진 고름만 골라 뿌리를 뽑는 발근고가 이명래 고약의 핵심인데 소나무 뿌리를 태워 만드는 기름에다 약재를 녹여 만들었다. 발근고가 종기를 터뜨리면 고약이 고름을 빨아낸다. 우리나라 신약 제1호라고 할 수 있는 이명래 고약의 비법은 100년이 넘도록 의원 이명래의 사위에서 사위로 전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