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산시민 유성무
2021년 신축년이 시작됐다. 신축년은 상서로운 흰 소의 해라고 한다. 소는 우직, 성실, 풍요, 희생을 상징하는 12지신으로서, 우리민족이 오랫동안 친근하고 귀하게 여겨온 동물이다. 이런 소의 기상으로 2021년에는 우리 모두가 온갖 근심걱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소는 고대부터 여러 지역의 신화와 종교에서 각종 상징으로서 자주 등장한다. 불교의 초기경전인 <숫타니 파타>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대목이 반복돼 나온다. 무소는 인도 코뿔소를 가리키는데, 묵묵하게 바른 길을 가라는 의미라고 한다. 아마도 진리를 향한 실천의지를 코뿔소의 우직함으로 비유한 것 같다. 소는 중국의 도교와 불교에서 사람의 본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로도 그려졌다. 도교의 그림들을 보면 소가 신선, 동자 등과 함께 자주 등장한다. 아마도 유유자적하는 소의 이미지가 탈속한 삶을 표현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교에서는 무위(無爲)로 가는 단계를 8장의 소 그림으로 그렸으니, 이를 팔우도라고 한다. 선불교가 꽃핀 남북조 시대에는 팔우도를 기초로 하여 공(空)으로 가는 깨달음의 10단계를 그린 십우도(十牛圖) 또는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졌다고 한다. 이 중 보명(普明)선사의 목우도(牧牛圖)와 곽암(廓庵)선사의 십우도가 널리 알려졌다. 보명선사의 목우도는 점진적인 깨달음을, 곽암선사의 십우도는 즉각적인 깨달음을 그린 것이라고 하니, 인터넷을 통해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음 직하다. 십우도에서는 소를 사람의 본성으로 그렸는데, 처음에는 사나워서 좀처럼 다스려지지 않는 검은 소가 나온다. 그러다가 목동과 실강이를 하면서 점점 하얀 소로 변하면서 다스려지는 단계로 들어간다. 나중에는 소와 목동의 구별이 없는 무애(無碍)의 단계로 끝나는 게 십우도의 구성이다. 곽암선사 십우도의 어떤 그림에서는 소가 처음부터 하얗게도 등장하는데, 사람의 본성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재미있다. 주간소통신문에 2014년부터 기고를 했으니, 연말연시에 즈음한 글을 벌써 6번이나 썼다. 모처럼 지난 글들을 찾아봤는데 실소가 나온다. 매번 쓸 때마다 지난해는 항상 다사다난했고, 새해에는 바람직한 변화를 통해 부강한 국가를 만들어서 우리 모두 잘살아보자고 했다. 그렇기 위해 공동체정신을 갖고, 선거를 잘하고, 개혁하자는 게 내용의 요지였다. 그동안 세상도 많이 변했다. 진보진영이 다수당이 됐고, 박근혜가 탄핵됐으며, 문재인이 집권했다. 남북관계도 부침이 있었지만 개선의 여지가 보였고, 정치적으로 일정부분 진일보했으며, 경제적으로도 양극화가 심화됐지만 전체적으로는 성장한 게 틀림없다. 특히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문재인 정부의 방역 성과를 중심으로, 우리나라가 봉쇄조치 없이 놀라운 경제적 성과를 낸 점은 높이 살만 하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답답해한다. 글로벌 공조 없이는 막을 수 없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한 삶의 제약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엄청난 유동성 증가로 부동산 등 자산가격 폭등에 따른 박탈감, 첨단기술을 축으로 부상한 플랫폼 경제로 인한 서민경제 위축, 기득권층의 탈법·편법을 통한 사회적 권력 강화 행태 등 때문만도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미래사회에 대한 불안감 때문으로 보인다. 사회적 불안감은 불안요소를 해소하기 위한 가시적 움직임이 없을 때 일어난다. 개인적 노력을 하더라도 불안함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급격히 증가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은 좁아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회시스템을 바람직하게 변화될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국민적 암울함이 증폭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민주당이 압도적 1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개혁으로 적폐를 일소하고 역동적인 나라를 만들라는 국민적 여망의 결과였다. 물론 켜켜이 쌓인 기득권층과 이들과 손잡은 적폐세력의 저항 속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낸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작금의 무기력하게 보이는 상황은 국민적 불안상태를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는 십우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국민들로부터 선출된 권력은 목동이고, 사회구조상 생길 수밖에 없는 기득권층은 사나운 검은 소다. 검게 때에 절어 날뛰는 소가 국가를 위해 일하도록 길들이면서 묵은 때를 씻어내는 과정이 개혁이다. 개혁을 실행하는 게 민주정치다. 부단한 개혁만이 복잡다단한 세상을 조화롭고 발전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길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게 바란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단호하게 개혁을 밀어붙여라. 까마귀 떼처럼 떠드는 수구언론과 조변석개하는 지지율에 휘둘리지 말고, 소를 묶은 고삐를 단단히 쥐고 과감하게 행동하라. 국민들이 정부와 여당에게 바라는 것은 지난 총선에서 약속했던 개혁의 실천이다. 개혁에 미온적이기에 지지율이 떨어짐을 직시하라. 무기력한 정권과 정당에게 박수 보낼 국민은 없다. 국민의 짐이 되려고 하지 말라. 새해는 달력에서 오는 게 아니다. 심기일전하여 진실로 나날이 새로워지려고 몸부림칠 때 시작된다. 2021년 신축년, 흰 소를 끌고 대한민국이 세계에 우뚝 서는 날을 향해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는 해가 되길 바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