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사회복지협의회장

국제NGO삼동인터내셔널이사장

정신요양시설삼정원장

김영주

선악이 아우르는 현실의 일이려니 하면서도 너무도 실망스러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정치판은 싸움으로 지새우고, 사회 또한 못살겠다는 아우성뿐이다. 그나마 한줄기 위안이 되는 것은 가끔씩 들리는 미담 소식이다.

21년간 불우이웃 돕기 선행을 이어온 ‘전주 얼굴 없는 천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된다고 한다. 전주영상위원회는 얼굴 없는 천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천사는 바이러스’가 1월 6일 개봉한다고 밝혔다. 전주영상위원회가 제작을, 주식회사 씨엠닉스가 배급을 맡았다. 연출은 ‘길 위에서’ ‘오하이오 삿포르’ 등을 찍은 김성준 감독이 했고 박성일과 이영아, 문숙, 전무송 등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한다.

전주 얼굴 없는 천사는 2000년부터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주민센터에 수천만~1억원의 성금을 몰래 놓고 갔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처럼 이름과 나이, 직업 등 신분을 밝히지 않아 주민들은 그를 얼굴 없는 천사로 부른다.

지난해까지 누적 기부금만 7억3800만원에 이른다. 2019년엔 그가 두고 간 6000만여 원을 절도범이 훔쳐 달아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얼굴 없는 천사는 변함없이 나타나 “지난해 저로 인한 소동이 일어나 죄송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들었던 한 해였습니다. 이겨내실 거라 믿습니다.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편지와 함께 7012만원을 놓고 갔다.

배우 이영아는 촬영을 끝내고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 기부하기도 했다. 천사는 바이러스는 앞서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됐다

필자는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솟구치는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남에게는 보시를 말하면서 스스로는 얼마만큼 베풀었는가 하는 자괴의 마음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재가신자들의 재산 사용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육방예경』에는 동서남북 사방과 상하를 합한 여섯 방위에 고마움의 뜻을 표한다는 설법이 나온다. 국가나 부모, 스승이나 부처님 은혜는 일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노비와 중생의 은혜라는 말씀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이 사회의 그늘진 곳을 외면하고 있다. 가난하고 굶주린 이 중생들이 없다면 현란한 도회의 불빛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또 재가신자들이 재산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 ‘정직과 근면’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그 관리에 관해서도 언급한바 있다. 우선 수입의 1/3은 반드시 저축하라고 말씀하신다. 1/3은 불사, 1/3은 생활비에 충당하라는 조언이다. 마치 기독교의 십일조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변화가 강조되고 있다. 진리의 인과보응(因果報應)이치로 말한다면 별로 새삼스러운 것도 없는 명제이다. 그러나 이 변화에 대하여 가장 둔감한 이들이 이른바 기성세대며 기득권자들이다. 그러나 변화는 이 시대의 흐름이자 철리(哲理)이다. 따라서 변화의 속도가 문제인 것인지 변화 자체에는 타당성 논란이 있을 수 없다.

살아 있는 것들의 특징은 변화이다. 모든 생물은 생존하기 위해 변화해야 한다.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합하게끔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경제, 사회, 정치 등 모든 환경이 바뀌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옛날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변화의 속성은 불확실성이다. 우리는 불안보다는 안정을 원한다. 회색 안개와 같은 불확실성은 우리를 불안하고 거북하게 만든다. 그 안개 속에 새로운 기회가 있을 것이라 하지만 그 누가 알겠는가. 오히려 그 안개 속에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천 길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변화가 두렵고 가능한 한 피하고 싶어 한다.

변화는 나를 반추하는 데서 시작된다. 나의 환경과 나의 사고방식, 그리고 이것들이 모여 형성된 나라는 존재를 외부에서 들여다봄으로써 시작된다. 그리하여 삶의 방향과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이웃과의 연관성을 재정립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내적이고 개인적인 변화와 함께 외적이고 사회적인 변화도 필요하다. 우리는 사람이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사람은 스스로의 손으로 사회와 제도를 만들었다. 일반 생물을 지배하는 자연적 환경에 인위적 환경이 더해진 것이다. 자연적 환경에는 순응할 수밖에 없지만 인위적 환경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다. 우리가 투표로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시장과 시의원을 뽑는 것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인위적 환경, 곧 법과 제도 등을 우리에게 적합하게 변화시켜 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태만하였으며 그들에게 위임한 우리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거짓말 같은 부유함의 시대이자 위험할 정도로 힘겨운 빈곤의 시대이다. 영국시인 키플링이 쓴 시에 ‘동은 동, 서는 서’라는 내용이 있다. 둘은 결코 만날 수 없다는, 서구 우월주의를 나타낸 대표적인 싯귀이다. 키플링의 이 시가 오늘의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단순한 경제적 양극화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양극화는 사회 구성원 가치관의 양극화를 야기하여 동질감을 파괴하게 되며 동질감이 상실된 사회는 와해될 가능성이 크다.

　꼭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나 사회와 같은 외부적 변화가 필요하다. 아울러 나 스스로의 내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 모든 변화가 합류하여 커다란 물줄기가 되어 우리 사회라는 삼각주를 적시어 줄 때 우리 사회의 이질적인 경계선이 사라지며 우리 모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동질감과 각 개인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