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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윤복순 윤약국약사

순천역 대합실이다. 아쉬움을 남긴 채 섬진강 걷기를 마치고 상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꼭두새벽 택시를 타고 익산역에 갔다. 여수행 첫 열차를 타고 구례구역에서 내렸다. 구례터미널까지 군내버스를 탔다. 터미널에서 화개 가는 직행을 탔다. 그 때까지는 시간이 20~30분 기다리는 정도였다. 화개에서 하동 가는 시내버스의 출발까지는 아직 멀었다. 막간을 이용해 다슬기국 아침식사를 했다.

광양시 다압면사무소 앞에서 내리니 한나절이 지나갔다. 여기서부터 배알도 까지 걸어야 섬진강 걷기 종지부를 찍는다. 식당에서 얻은 정보로는 하루에 걷기에는 무리일 거라고 했다.

나는 무작정 일을 저지르는 편이다. 이리재고 저리재고 실수 없이 하는 일은 재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쉬 일을 시작할 수도 없다. 이번 섬진강 걷기도 시발점인 장구목에서 출발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좌충우돌방식엔 짜릿함과 인간미가 있다. 낭패도 따른다.

시골 시내버스는 빠르면 한 시간, 늦으면 두 세 시간에 한 대 꼴이니 가는데 한 나절 오는데 한나절이다. 가뜩이나 해짧은 겨울철엔. 가끔은 길을 잃고 헤매보기도 하고 막차를 놓쳐 고생도 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큰일 났다고 노숙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절벽일 때 행운을 만나는 극적인 감동을 느껴보고도 싶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구례구역에서 화장실에 다녀오니 남편이 순천에서 타는 걸로 집에 돌아올 차표를 예매해 놓았다. 이럴 때 남편과 나는 마음이 맞지 않는다.

완주를 하고 은어구이도 먹을 참이었다. 섬진강을 걸으면서 재첩국과 참게매운탕은 먹었다. 섬진강도 걷고 특산물도 먹어보고,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잡고 하려고 했는데 표를 끊어 놓아 김이 샜다.

매화마을을 거쳐 섬진교를 지나니 강둑길과 국도가 나란히 가는 게 아니다. 강변이 확 휘어져 국도와 간격을 넓힌다. 걷다가 시내버스를 만나면 타야 되는데 강둑과 국도가 만나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감을 잠을 수가 없다.

강둑길로 들어섰다. 남편은 국도로 가잖다. 지금까지 시내버스는 한 대도 만나지 못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예 국도는 보이지도 않는다. 섬진강 걷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집에 돌아갈 일이 문제라며 남편이 보채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단지가 나왔다. 동네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을 건너면 국도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섬진강이 키우는 생활채소단지다. 단지의 크기로 섬진강의 품을 가늠할 뿐이다.

간신히 길을 찾았고 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시내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라는 것도 알았다. 하우스를 빠져나가는데 거짓말 좀 보태 한 시간은 걸린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강둑길로 걷는 게 나을 뻔했다.

광양시내까지 들어가지 말고 섬진강휴게소에서 순천 가는 차를 타라고 알려준다. 그곳까지 걸을 수는 없냐고 하니, 다압면사무소에서 여기까지 온 만큼 더 가야한다고 한다.

휴게소에 섬진강자전거길 안내도가 있다. 배알도 까지 근 10Km는 될 것 같다. 물고기는 놓친 게 커 보인다고 했던가. 섬진강이 하구라서 강폭을 넓혀 더 아름답다. 이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것을 봐야 하는데... 순천역에서 기차 시간 때문에 아쉽지만 걷기를 마쳤다.

섬진강휴게소에서 시내버스를 타는 줄 알았는데 고속도로 휴게소다. 이곳도 처음이고 환승도 처음이라서 촌놈이 되었다. 그러나 입이 서울이라고 하지 않던가. 고속버스를 탔기에 순천역에 열차 시간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작년 10월부터 섬진강걷기를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어느 구간인들 마음 졸이지 않은 곳이 없다. 시내버스가 다니기는 할까, 어렵게 국도를 만나도 정류장에서 1시간 이상 기다리는 것은 다반사였다. 한 번에 갈 수 없어 차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하니 서로 차 시간이 맞지 않아 정류장에서 시간을 다 보내다시피 했다.

즐거움도 많았다. 곡성에서는 솔버섯도 땄다. 우연히 공원에 들어갔는데 소나무 밑에 많이 있었다. 구례에서는 5일장 구경도 하고 맛집의 국밥도 먹고 산도라지도 살 수 있었다. 남도대교를 지나는 날에는 “2019년 1월 6일 섬진강을 걷는디~, 햇빛도 좋고 공기도 좋고 기분도 좋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그날의 기분을 주저리주저리 붙여대며 어깨춤까지 추며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다.

또 보약을 먹자며 ‘하나 둘 셋 흠~ ’ 하며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기도 했다. 정크푸드만 먹다 신선한 채소를 먹는 맛이랄까. 햇볕이 온몸을 감싸줘 몸도 마음도 행복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실제로 섬진강을 걷고 온 날은 잠도 잘 자고 마음도 걸은 만큼 너그러워졌다. 자신감은 그 몇 배, 어느 보약이 이보다 더 효과가 있을까.

시내버스를 탈 때마다 기사분이 친절했다. 연결되는 차 시간을 알아봐주고 식사할 만한 곳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심지어는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불안한 마음에 손을 들었는데 차를 세워줬다.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몇 시에 차가오니 그 차를 타라고 알려줬다. 섬진강을 걷는 날이면 오늘은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기대감이 충만했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안 가본 곳을, 주제를 정해놓고 연속적으로 걸을 수 있으면 더 좋다. 금강을 종주했고 전북 4대 성지순례길을 완주했다. 그리고 이번 섬진강을 걸었다. 휴전선에 걷는 길이 만들어지면 꼭 걸을 것이다.

무작정 저지르다 보니 작전을 잘 못 세워 시간적으로 충분했는데 완주하지 못했다. 이곳의 은어는 7~8월이 제철이다. 그리고 광양이 아니라 하동 화개가 유명하다. 은어구이도 못 먹었고 배알도 까지도 못 갔다. 순천역에 앉아 있는데 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섬진강을 처음 대한 것은 대학 1학년 때 칠보 수력발전소다. 운전을 배워 운암 저수지를 갔고, 백운산을 등반하고 광양에서 구례까지 섬진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또 상류지역의 요강바위를 보러갔다. 최근에는 하동의 박경리문학관을 다녀왔다.

하나하나의 구슬을 쭉 꿰어보려 했는데 배알도까지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이 있어야 애타는 그리움으로 남을 수 있다는 위로 아닌 위로로 완주 못한 아쉬움을 달래본다.

순천역 대합실에 놓여있는 피아노에선 ‘인생은 미완성’이란 노래가 흘러나오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