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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길에

윤복순 윤약국약사

딸이 3년여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2학기부터 복직을 한다. 개학 전 여행하는 길이다. 큰놈이 5학년이니 중학교만 들어가도 잘 따라다니지 않으려 할 터이니 막내가 크길 기다릴 여유가 없다. 막내는 쌍둥이고 네 살이다. 말이 많이 늘었고 조그만 것에도 고맙습니다를 연발해 웃음을 선사한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랑 여행 다니는 것 재미있냐고 물으니 다들 큰소리로 예 한다. 셋째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자기도 비행기 타고 외국여행 한 번 하고 싶단다. 용돈 모아서 백만 원이 되면 모자라는 것은 할머니가 내고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못가요. 집 사야지요, 차 사야지요, 핸드폰 사야지요. 어떻게 여행을 다녀요?” 휴대폰과 차는 이해가 되지만 집은 좀 뜬금없다. 일주일에 용돈 2000원 받는데 언제 모아요 한다.

오빠 언니보다 저금한 돈도 훨씬 적단다. 나이가 어리니까 그렇다고 하니 언니는 작년에 입학할 때 외삼촌과 작은아빠가 책가방 사라고 돈을 줬는데, 할머니가 책가방을 얻어 줘서 사지 않고 다 저금을 했단다. 그런데 저는 가방을 얻지 못해 사는 바람에 통장에 돈이 조금밖에 없다고 걱정스런 얼굴로 고개를 숙인다.

집은 사지 말고 엄마 집에서 살면 안 되겠냐고 하니 엄마가 스무 살만 되면 모두 독립해서 집을 나가라고 했단다. 집이 있어야 살지 않겠냐는 것이다. 스무 살이면 대학생이고 기숙사가 있는 대학에 가고 공부 잘해서 기숙사에 들어가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돈을 모을 때는 목표를 세우고 그 돈이 모아지면 그것을 꼭 하라고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면 사는 재미가 없을 뿐 아니라 제 때에 하지 않고 나이 먹어서 하면 의미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말도 해줬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집 사는데 돈이 모자라면 할머니가 빌려준다고 하니 이자도 받을 거냐고 묻는다. 원금만 갚으라고 하니 얼굴이 환해진다. 귀여워서 한참을 안아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경제관념을 알려주는 것은 옳다. 딸이 자립심도 확실하게 심어주는 것 같다.

천리포수목원을 구경하고 간월암에 갔다. 그곳은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애들에게 무학대사에 관한 얘기 하나를 해 줬다.

스님이 탁발을 나갔는데 농부가 소 두 마리로 밭을 갈고 있다. 어느 소가 더 일을 잘 하냐고 물으니 농부는 아무 대답이 없다. 일을 다 끝내고 나서야 스님 귀에 대고 조용히 왼쪽 소가 더 잘한다고 한다. 왜 이제야 조그만 소리로 말 하냐고 하니, 오른쪽 소가 알아듣고 기분 나빠 할까봐서 라고 하더란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소에게도 서로 비교해서 기분 나쁜 소리를 하지 않는데, 사람들끼리는 어떻게 해야겠어? 애들이 좋은 말만 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하겠단다. 말을 예쁘게 해야 예쁘게 크고 예쁘게 자란 사람이 행복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줬다.

간월암 가는 길에 부석사란 푯말을 보았다. 부석사는 내 여행수첩에 적혀 있는 곳이다. 영주 부석사가 아니라 서산 도비산부석사다. 서로 무슨 연관이 있을까도 궁금했지만 그곳 스님의 법문 내용을 적어 놓았다.

수행자가 수행을 하고 있는데 매에게 쫓기던 비둘기가 수행자의 품으로 들어왔다. 매가 따라와 하루 종일 먹은 것이 없어서 비둘기를 잡아먹지 않으면 배가 고파서 죽는다고 한다. 수행자는 비둘기 대신 자기 살을 주겠다고 했다.

비둘기 양만큼 주면 될 것 같아 허벅지살을 조금 떼어 저울에 달아보니 비둘기가 무거워 저울이 비둘기 쪽으로 확 기운다. 다시 다리 하나를 더 놓아도 비둘기 쪽으로 기운다. 마침내는 수행자가 올라서니 비둘기와 수평을 이루더란다.

사람의 목숨이나 비둘기의 목숨이나 생명의 무게는 똑같다는 의미로 얘기 했는데 애들이 알아듣는지 모르겠다. 이곳 스님이 천수만의 새들에 관심이 많은 분이어서 이런 법문을 하셨음을 이곳에 와서 보고 알았다.

이번 여행 중 제일 좋았던 곳은 어디냐고 물으니, 첫째는 공룡이 먹었다는 소나무(울레미소나무)를 본 것이란다. 천리포수목원에는 다양한 수종이 있는데 어찌 그것 하나를 외웠는가 보다. 사진까지 보여줘서 나도 확실하게 알았다.

둘째는 수목원에서 흔들의자그네를 탄 것이 재미있었단다. 간월암을 가기 위해 바다를 걸어간 것도, 사람들이 돌로 탑을 쌓아놓은 위에 저도 아슬아슬하게 돌 하나 올린 것도 좋았다고 한다. 간월암은 밀물 때는 섬이 되고 썰물 때는 바다가 갈라져 걸어갈 수 있다.

셋째는 부석사 만공스님의 토굴이 재미있었고, 범종을 세 번 치고 소원을 빈 것도 좋았단다. 마애불에 소원을 빌고 옆에 있는 돌을 들어서 들어지면 소원이 이루진다고 한다. 그 돌이 그리 크지 않아 어른들에게는 문제없지만 여덟 살짜리가 들기엔 조금 무리였다. 그런데 그 돌이 들어져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단다.

둘째도 돌탑을 쌓으며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소원은 기도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부처님이 보시고 이루어주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손자들과의 여행, 어른들이 준비한 것 보다는 그 애들의 돌출 언행이 한결 재미있다. 어른들이 돈 욕심을 부린다면 좀 얄밉게 보일 수도 있을 텐데 어린것이 돈 걱정 하는 것은 주모 있고 야무져 든든하기 까지 하다.

건강하고 지혜롭게 잘 살아서 손자들의 얘기에 귀기울여주고, 먼저 살아본 인생의 선배로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을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