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사회경제연구소 대표
권 태 홍

며칠 전 독일 총선이 끝났다. 집권 기민당은 1950년 이래 최저인 32.8%(246석)을 기록했다. 사민당(SPD)은 20.4%(153석)를 얻었다. 지난 총선에서 5% 미만 획득으로 원내 입성에 실패했던 독일 극우정당 AfD가 12.6%(94석)을 얻어 단숨에 제 3당이 되었다. 자유민주당이 10.7%(80석)로 4당, 좌파당이 9.1%(69석)로 5당, 녹색당이 9.0%(62석)로 6당이 되었다. 지난해 4월 대한민국에서는 20대 총선이 치러졌다. 새누리당 33.5%(지역구 105석, 비례 17석, 합계 122석), 더불어민주당 25.54%(지역구 110석, 비례 13석, 합계 123석), 국민의당 26.74%(지역구 25석, 비례 13석, 합계 38석), 정의당 7.23%(지역구 2석, 비례 4석, 합계 6석)를 얻었다. 독일과 대한민국 총선의 결과를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있다. 독일은 총 690석(초과의석과 보정의석으로 실제 총수는 많아짐)이고 지역구 의원의 수와 비례의원의 수가 같다.

독일은 전체 의석수를 기준으로 정당 지지율만큼 비례해서 의석수를 보장한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도이다. 예를 들면 독일 녹색당이 지역구에서 한 석을 얻지 못하더라도 9.0%만큼의 비례의석으로 62석을 보장해주는 방식이다. 만약 독일 녹색당이 지역구 30석을 얻었다면 32석을 비례의원으로 해서 62석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정당 지지율을 의석수에 얼마나 반영시키는 가의 문제는 정당정치의 비중을 가늠하게 해주는 척도이다.

독일은 정당 지지율만큼 의석을 보장함으로써 정치는 정당정치라는 것을 제도로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수가 253명, 비례의원의 수가 47명으로 총 300명이다. 대한민국의 정당 지지율에 따른 의석 보장은 전체 300석이 기준이 아니라, 비례의원 총수 47석을 기준으로 산정될 뿐이다. 독일의 선거제도가 정당정치를 100% 인정하는 제도라면, 한국의 선거제도는 정당정치를 16.7%밖에 인정하지 않는 제도이다. 총선때마다 정당이 떴다방처럼 명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의 총선결과를 대한민국 선거제도로 환산한다면 12.6%의 정당 지지율로 94석을 얻은 AfD는 비례 6석에 지역구의원 당선자수를 더하는 수준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12.6%의 득표를 한 AfD의 지역구 후보들은 소선거구제 하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유명인 몇 사람쯤 지역에서 당선되었다고 가정한다면 AfD는 10석을 얻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대한민국 20대 총선의 결과를 독일식 선거제도로 환산하면 새누리당 101석, 더불어민주당 77석, 국민의당 80석, 정의당 22석쯤 되었을 것이다. 정당 지지율에 비해서 새누리당은 21석, 더불어민주당은 46석을 더 가져간 셈이고, 국민의당은 42석, 정의당은 16석을 덜 가져간 셈이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도 때문이다.

단순다수 소선거구제도로 말미암아 내가 찍은 국회의원이 당선되지 않는 사표가 1000만표 가까이 발생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소선거구제도가 지역주의와 결합되면 지역별로 정당 독점정치가 발생하고 이는 부패와 무능으로 귀결된다. 지난 30년 동안 거대 양당 지역주의 독점정치의 현주소이다. 20대 총선은 소선거구제와 지역주의에 기반한 영호남 양당독점정치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준엄한 회초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기존의 거대 양당이 67석, 즉 300석의 22%가 넘는 의석을 정당 지지율보다 더 가져간 셈이 된 것이다. 대규모의 사표가 발생해서 국민의 표심을 사장시키고, 정당득표율만큼 의석수가 보장되지 않는 현재의 제도는 다양한 국민들의 처지와 요구를 대변하지 못하는 비민주적 제도이다. 문제는 선거제도 개편이 입법의 영역이고 따라서 현역 국회의원들이 결정하게 된다는 점이다. 촛불혁명으로 인한 정권교체 이후 불안한 다당제가 유지되고 있다.

원내 5당 체제에서 여당은 여소야대의 의석분포로 말미암아 야당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고,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들은 선거제도 개편이 절실한 상황이다. 객관적인 정치상황은 선거제도 개편을 이루기에 어느 때보다 유리한 상황이다. 자유한국당은 정당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현재의 소선거구제도가 지역주의와 보수층을 자극해서 의석을 얻기가 유리하다고 보고 선거제도 개편을 반대하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인한 정치혁신은 선거제도 개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정당정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 또 다양한 국민들의 처지와 요구를 정당들이 제대로 반영해서 갈등요인을 제도권내에서 소화해내기 위해서라도 선거제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뀌어야 한다.

독일식 제도와 같이 지역구수와 비례의석수가 1:1로 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300석을 기준으로 할 때 현행 243석의 지역구수를 150석으로 줄이는 일이 되어 현역 의원들의 저항이 극심할 것이다. 때문에 현행 지역구수를 대략 유지하고 지역구수와 비례의석수를 2:1로 맞추는 지역구 240석과 비례 120석 총 360석으로 맞추되 총액 인건비는 현재의 300석 기준으로 하자는 시민단체들(42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정치개혁공동행동)의 안이 매우 현실적이며 유력하다. 여기에 각 지역별 요구를 감안한다면 비례의석을 지역별로 할당하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는 제도가 될 것이다. 더불어 지방광역의회 선거도 비례의석을 늘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가 도입되어야 하고, 기초의회의 경우 2~4인 선거구를 3~5인 선거구로 개편하여, 기초의회 중대선거구 도입 초기의 취지와 합의에 충실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은 정당정치와 정치혁신의 출발이다. 촛불혁명의 주권시대, 국민의 힘으로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