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섬진강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 칠보수력발전소에서다. 그 다음은 옥정호(갈담저수지)다. 운전을 배워 첫 번 째로 가 보았던 곳이다. 얼마나 아름답던지 3주 연속 그 곳을 갔다. 다음은 광양 백운산을 등반하고 매화마을에서 구례까지 섬진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모래가 정말 곱다. 그 모래 한 가운데 나목이 세워져 있었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 같다. 그 다음은 순창 장구목에서 요강바위를 보았다. 신비 그 자체다. 최근에는 딸네 식구들과 하동 박경리 문학관을 다녀왔다.

띄엄띄엄 보아온 섬진강은 하나같이 내 마음을 빼앗았다. 그 강을 종주할 수는 없을까. 마음 한 구석에 섬진강 종주에 때한 꿈이 자라고 있었다. 며칠씩 약국문을 닫을 수 없어 일요일을 이용해 걸어야겠는데 교통이 복잡하다.

발원지인 팔공산은 등산한 걸로 때우고 상류인 임실 쪽에서 출발한다 해도 차를 몇 번 갈아타야 한다. 역으로 광양에서부터 걷는다 해도 익산에서는 직통이 없고 기차도 없어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여름에는 포도농사로 시간 내기가 힘들고 겨울에는 해가 짧아 목적지까지 가는데 한나절이 걸리게 생겼다.

나이를 먹었는지 일을 확 저지르지 못하고 생각만 깊어진다. 걷는 속도도 느려졌다. 처음이나 끝에서 시작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구간부터 걷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래서 택한 곳이 곡성이다. 익산에서 새벽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탔다. 곡성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넘었다. 역에서 관광안내도를 챙겼다.

역 앞의 안내도를 보니 가정역까지 3시간, 압록유원지까지는 4시간 이라 쓰여 있다. 왕복을 해야 되니 가정역까지만 걷기로 했다. 먼저 역 앞의 기차마을을 구경했다. 사람들에게 섬진강 가는 길을 물으니 제각각이다.

알려준 대로 갔더니 조그만 하천이 나온다. 누가 봐도 섬진강은 아니다. 물어볼 사람도 없다. 자전거도로가 나와야 하는데 그냥 하천 둑방길이다. 남의 동네에서는 방향을 잘 못 잡겠다. 안개가 어찌나 진하던지 상향, 하향도 몰라 왔던 길을 몇 번 둘러보고야 감을 잡았다.

다리를 건너 하천길을 걷기로 했다. 걷다보면 섬진강과 만나지 않을까. 세상엔 공짜가 없기에 섬진강 찾는데 실패를 한다 해도 뭔가는 얻을 것이기에 걱정은 안한다. 얼마를 걸었을까. 침실습지가 나온다. 눈이 번쩍 뜨였다. 안내책자에 침실습지가 있다.

섬진강을 찾은 것이다. 하천이 섬진강과 만나면서 습지를 만들며 강폭이 넓어지고 어느 쪽으로 가야 구례방향인지 모르겠다. 습지에 대한 안내와 정자만 있다. 먼저 정자에 앉아 요기를 했다. 몇 개의 떡, 과자, 맛있는 바나나우유와 맥주, 포도, 계란까지 삶아왔다. 얼추 배가 채워져도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감으론 반대편 둑으로 가야할 것 같은데.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났다. 정말 갑자기다. 정자가 마치 내 집인 양 할머니를 초대했다. 익산에서 왔다고, 섬진강을 따라 압록까지 걷고 싶다고, 어느 쪽으로 가야하냐고, 걷는 길에 식당은 있냐고 속사포를 쏟아냈다. 할머니는 당신 큰 딸이 익산에 산다며 호감을 보인다. 과자와 떡을 드리고 헤어졌다.

할머니 덕분에 바른 길을 찾으니 오매불망 그리던 자전거 길도 나왔다. 마침 섬진강을 종주하는 자전거 탄 일행도 만났다. 안개가 때맞춰 걷히며 햇살이 짠하며 나왔다. 봄햇볕은 며느리에게 쪼이고 가을햇볕은 딸에게 쪼인다고 했던가. 팔을 벌려 태양을 맞았다.

얼마를 걸었을까. 마이크 소리다. 레일바이크는 정각11시에 출발하니 화장실도 다녀오고, 인터넷으로 예약한 사람은 티켓으로 바꿔오라는 안내 방송이다. 도로 쪽으로 올라갔다. 침곡역이다. 예전 전라선 열차가 다녔던 철도다. 그 철로를 이용해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게 하고 이곳이 출발지다. 사람이 많다. 관광버스도 많다. 구경하는 재미도 좋다.

다시 걷는다. 옆으로 레일바이크 타는 사람들이 죽 지나간다. 걸으면서 지리산을 감상하는 맛도 좋다. 강물은 태풍 콩레이 영향으로 흙탕물이고 물살도 세다. 하류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강물은 흐르면서 정화가 되고 유속도 느려지며 포근하고 넉넉해진다. 나도 걸으면서 부드러워지고 남을 품을 수 있는 큰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남편이 무릎이 시큰하다며 쉬어가자고 한다. 올 여름 더위에 많이 지쳤나 보다. 지난주까지 포도밭 마무리를 하고 외국인도 보내고 오늘이 첫 소풍길이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자전거길에서 도로 쪽으로 올라왔다. 시내버스 승강장이 있다. 횡재한 기분이다. 버스는 생각도 못하고 다시 걸어서 돌아갈 요량이었다. 어디쯤일까. 가정역까지 2Km가 남지 않았음을 알아냈다.

길이 높으니 시야가 확 트여 기분 좋다. 차들이 많이 다니니 위험하고 시끄럽다. 모든 것은 이렇듯 다 장단점이 있다. 이때 증기기관차 화통소리가 난다. 웬 일! 증기기관차가 객실을 3량이나 달고 옆으로 지나간다. 사람들도 많이 탔다. 걷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저 멀리 보이는 육교에 사람들이 많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섬진강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가정역은 레일바이크와 증기기관차의 도착지다. 기차를 탈까하고 역으로 올라갔다. 20분 뒤에 출발하는 데 좌석은 없고 입석뿐이다. 가격이 9500원이다. 비싸다고 하니 기차마을 입장료가 포함되었단다.

육교 밑에 식당이 있다. 식당 주인이 시내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있다며 몇 시 차를 타라고 알려준다. 밥도 맛있다.

압록까지 걸어가서 그 곳에서 시내버스를 탈까 하다 남편 무릎 때문에 여기서 멈췄다. 다음에는 곡성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가정역에서 내려 걸으면 된다. 구례까지 걸을 수 있다. 구례구역에서는 KTX 고 무궁화고 열차가 많다.

그 다음은 구례구역에서 내려 광양쪽으로 걷다가 시내버스로 구례구역으로 오고, 그 다음에는 구례역구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전에 걸었던 그 지점에서 내려 걸으면 된다. 광양에서는 광주든 순천이든 직행버스나 고속버스가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익산 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섬진강 걸을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어떤 어려운 일도 시작해 보면 길은 있기 마련이다. 실패하지 않고 쉽게 하려고 하다 보니 쉬 팔을 걷어 부치지 못 할 뿐이다. 힘들면 힘든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그 만큼의 가치가 있고 얻는 것이 있다. 시간이든 돈이든 남들 보다 조금 더 투자할 각오로 한다면 뭔들 못할까.

올 해 걷기는 섬진강 종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