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헤어짐엔 연인이 아니어도 아쉬움이 있다. 가나다라 클럽과 우리는 전주역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보듬고 꼭 오라고, 꼭 가겠다고 다짐을 하며 떨어질 줄 몰랐다. 비록 2박 3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진심이었기에 정이 많이 들었다.

가나다라 클럽은 전북 전주시와 자매결연한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의 국제문화교류 모임이다. 그들은 한국을 사랑하고 우리 문화를 좋아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이름도 가나다라 클럽이라고 지었다. 그들은 한국어를 할 줄 알았고 열 번 넘게 우리나라에 온 사람도 있다.

가나다라 클럽과 한일여성친선협회 전북지부는 국제문화교류라는 큰 뜻으로 작년에 처음 만났다. 그들이 먼저 하쿠만코쿠 축제 때 우리팀을 초대했다. 올해 답례로 일곱 명을 전주에 초청한 것이다.

나는 작년에 가지 않았기에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초면이 아닌, 알고 지내는 친구가 오는 것처럼 기다려졌다. 그들에게 전북의 맛과 멋, 그리고 우리의 정성을 짜임새 있게 보여주기 위해 연초부터 준비를 많이 했다. 빈틈없이 잘 마무리해 유비무환이란 말을 실감했다.

첫날 예정보다 1시간여 늦게 시작되었다. 비가 겨울비답지 않게 하루 종일 내리고 빗줄기가 굵었다. 자연 앞에 인간의 힘은 미약함을 알기에 누구도 불만이 없었고 오히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들의 얼굴엔 미안함과 염치없음이 역력했고 우리는 얼마나 애가 닳았느냐고 오히려 그들을 걱정해 줬다.

그들이 피로와 배고픔에도 일본의 전통춤인 ‘오와리카제노분’을 공연했다. 우리의 추석과 같은 오봉 날에 조상님과 일 년 농사지은 것을 같이 나누는 감사의 춤이라고 한다. 기모노를 입고 농사지을 때 쓰는 모자를 써 전통문화교류의 뜻을 십분 발휘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들이 우리말로 ‘만남’을 배워와 손을 맞잡고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같이 불렀다. 우리는 ‘내 나이가 어때서’를 일본어로 준비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는 유감스런 관계지만 개인 대 개인은 친근함을 느꼈다. 양국이 지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마음과 마음으로 가까운 이웃이 되는데, 우리 모임이 밀알이 될 수 있길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싶다.

다음 날 여독이 풀리지 않은 채 꼭두새벽에 만났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그들에게 ‘오늘은 강천산을 구경한다. 강천산의 단풍은 전국에서도 알아준다. 같이 산책하며 깊어가는 가을을, 한국의 자연을 마음껏 즐기자.’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본어가 짧아 오하요 고자이마스, 아침 인사를 한 뒤 와타시와 니혼고가 헤타데스.(나는 일본어를 잘 못합니다.) 라고 떠듬떠듬 말했다.

신타쿠상의 노련한 한국어 솜씨에 속 있는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약사라고, 당신들을 환영하고 만남을 즐기고 같이 행복하고 싶어 약국 문을 3일 동안 닫았다.’고 했다. 여태까지 한국어로 대화를 했는데 ‘아리가도 고자이마스’ 하며 고개를 숙인다. 본심을 말할 때는 자국어가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법이다.

장류체험관에서 인절미를 만들 때, 떡메를 치는데 일본인과 2인 1조가 되었다. 주거니 받거니 박자를 맞추기 위해 서로 마음을 합치는 화합과 배려의 장이 되었다. 또 고추장도 함께 담갔다.

마지막 날은 한복과 한옥체험이다. 모두들 예쁜 한복을 입었는데 나만 남녀공용 개량한복을 입어 미운 오리새끼가 되었다. 족저근막염 때문에 운동화만 신어야 하기에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다.

한옥마을은 여러 번 가 보았지만 양반집 안방에 들어가 종부의 설명을 듣기는 처음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안방의 높은 문턱이다. 머름이라고 한다. 안방 마님이 밖을 내다볼 때 그곳에 팔을 얹을 수 있고, 밖에서 하인들이 안을 쉽게 볼 수 없으며, 마님이 누워있을 때 바람이 직접 머리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함이란다. 여자에 대한 섬세함이 느껴졌다.

학인당의 안채는 인재선생이 판소리를 좋아해 소리꾼들에게 대청을 제공했다고 한다. 구조가 판소리공연을 할 수 있도록 칠량(七樑)집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세 개의 방문을 들어 올리거나 철거하는 방식으로 넓은 실내공간을 만들 수 있는 최초의 오페라극장이었단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전주대사습놀이’가 이어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도 모두 한복을 입었다. 그들도 이런 체험은 처음이라서 서로서로 사진 찍고 찍어주느라 목소리가 커지고 분위가 한껏 고조되었다. 열두 번째 한국에 온 사람도 한복체험과 한옥마을에서 숙박은 처음이란다. 그들이 한국의 큰 절을 배우는 체험도 했다.

우리는 인재선생의 뜻에 맞게 조선지가 있는 마당에서 손에 손을 맞잡고 빙 둘러 원을 그리며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날씨도 좋았다. 우리 가락의 해학과 흥에 모두들 신이 났고 즐거웠다. 일본인과 우리가 하나가 된 듯했다.

전통문양 단청그리기 때다. 나는 수짱과 한 조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받침 있는 발음을 잘 못하는데 내 이름자에 모두 받침이 있으니 끝 자만 따 나를 순짱이라 불렀다. 수짱과 순짱 우리는 이름이 비슷하다고 동지라도 만난 듯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녀와 나는 이미 그려진 문양에 서로서로 의견을 맞춰가며 색을 입혔다. 색의 조화가 정말 잘된 멋진 찻잔받침이 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기념으로 가지고 갔다.

한옥마을 투어 때 그녀가 내게 팔짱을 끼며 다가왔다. 친 동생 같다. 언제부터 이리 친했다고 불편함이 없다. 내년에 일본에 꼭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메일주소를 교환했다.

집에 돌아와 가나자와시를 찾아보았다. 전주와 같이 유네스코 창의도시다. 전주는 음식이고 가나자와는 공예다. 21세기 미술관이 있고 임천회유식 정원 겐로쿠엔이 있다. 오랫동안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아 수백 년 된 목조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능악 수업을 받고 1회 이상 관람을 해야 한단다. 그들이 예술을 사랑하고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면에서 전주와 같은 예향임을 알았다. 더 친근감이 간다. 역시 자매도시 맞다. 그들을 만나기 전에 미리 공부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들과 2박3일, 내 추억창고에 보관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쉽게 해보지 못할 체험을 이번에 할 수 있었다. 4박5일 초대도 받았다. 만난다는 기대로 아쉬움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