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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최민경

당신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은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의 나라 지배를 받고 살던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나라는 두 동강이 되어버렸고 당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젊은 청춘을 전쟁터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전쟁은 겨우 끝났지만 현실의 무게는 당신의 어깨에 늘 바위덩어리처럼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당신은 머나먼 이역만리 타국의 탄광에서 시커먼 먼지를 들이마시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조국에는 산업의 역군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위기극복에 아주 탁월한 조상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분에 그리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나라를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잘 키워 낸 자식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되었고 당신은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가족들이 당신을 멀리합니다. 나는 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가족들은 당신과 대화조차 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많이 우울하고 때로는 가족들을 원망하기도 합니다.그러나 가족들은 오히려 남편과 아버지 노릇을 하느라 오십 평생을 살아 온 당신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지친 나머지 술과 담배로 일상을 무미건조하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가난하지만 그래도 아들만큼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나 결국 대학을 나왔습니다. 졸업 후에는 다행히 경제발전이 한창이었던 시절이어서 어떤 직장이든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남들 다하는 결혼이란 걸 했고 당신처럼 귀한 아들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고 나니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엄마하고는 그런대로 소통을 하면서 사는 것 같은데 아빠인 당신하고는 아예 대화를 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언젠가부터 당신을 향해 ‘꼰대’ 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아내는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더 당신에게 불만이 늘어납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불만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가족을 위해 언제나 변함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철통같이 믿고 있으니까요.

호랑이와 소가 결혼을 했습니다.
호랑이는 소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먹이 사냥을 나가면 언제나 숲속의 동물들을 잡아다 줍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소는 호랑이가 잡아온 그 맛있는 먹이들을 먹지 않습니다. 호랑이는 자신이 애써 잡아온 먹이를 소가 먹지 않자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소에게 굳이 묻지 않았고 그 다음에는 더 맛있는 숲속의 짐승들을 잡아다 주었습니다. 소는 이번에도 먹지 않았습니다. 소는 자신의 입맛을 몰라주는 호랑이가 답답했지만 힘들게 먹이를 잡아온 호랑이에게 이런저런 타박을 하기가 미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소가 먹이 사냥을 하느라 지친 호랑이에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고 싶었습니다. 호랑이는 하루 종일 숲에서 먹이를 사냥하다가 녹초가 다 되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밥상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밥상을 본 호랑이는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소가 차린 밥상에는 온갖 들판의 풀들만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호랑이와 소의 이야기가 이 땅의 아버지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을 위해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가족들의 원망과 한숨뿐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아버지라는 존재의 권위와 위상을 누리며 살던 그 옛날의 아버지들은 차라리 편했는지도 모른다. 그 때는 부인이 있어도 애첩을 두고 사는 일이 아무런 흉이 되지도 않았고 아무도 그의 권위 앞에 감히 반기를 들 수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 변해버린 상황 속에서 부부가 소통마저 하지 않고 살다보니 호랑이 같은 남편과 소 같은 아내가 되어 결국은 가정불화로 이어지고 아이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상처를 받게 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제 가족들과 소통을 하는 것 외에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우리의 아버지들은 참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했다. 어쩌다 분단된 조국에 태어나서 다른 나라 청년들은 가지 않아도 되는 군대에 반드시 가야했고 군대를 마치고 나니 또다시 몇 년에 걸쳐 이런저런 나라를 지키는 의무를 다하고 나면 어느새 그의 젊음도 멀어져 간다. 우리는 이제 아버지가 이룩한 일들에 대하여 충분히 존중을 해주고 그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때가 되었다. 아버지 자신도 이제 가족들 곁으로 다가가야 하고 가족들 또한 아버지와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의 삶의 태도를 그대로 닮은 아들이 또다시 그의 전철을 밟으며 호랑이와 소의 이야기를 대를 이어 반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