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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을 통해 사회적경제를 업그레이드 하다

익산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김 현 철

몇 년 전 정읍의 한 마을 이장님이 찾아오신 적이 있다. 당시 정읍과 고창의 공동체지원 메이플스톤 창안대회에서 그 마을이 제안한 아이템이 탈락했다면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하셨다. 나는 아이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내장산 아래에 위치한 마을을 방문하여 컨설팅을 진행하였다. 그 마을은 여느 농촌처럼 고령 노인층이 대부분이어서 농사를 짓지 않는 휴경지를 상당량 가지고 있었다. 이장님은 휴경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농경지에 모시를 심어 모싯잎을 떡을 제조하는 기업에 납품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계셨다. 모싯잎을 주요 수익원으로 삼으시려는 데에는 그 마을에 사는 형제가 국내에서 유명한 ‘솔티애’라는 모싯잎 송편을 제조 유통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마을에서 생산되는 모싯잎 전량을 구매해주시겠다는 약속(협약)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한 수익으로 마을 7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매월 20만원씩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장님께 마을기업지원사업을 추천해 드렸다. 단순한 원료 공급보다는 1~2차 가공 형태가 좀 더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어 마을의 수익에 보탬이 되기 때문에 가공설비 등의 지원이 가능한 사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마침내 마을기업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가공처리가 가능한 시설을 구축하게 되었으며, 생물로 공급하던 것을 세척하고 삶고 건조하여 공급하게 되었다. 몇 개월 후 이장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당초 계획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8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월 10만원의 연금을 지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마을은 정읍의 송죽마을 이야기이며, 이 공동체는 국내 사회혁신의 주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사회혁신은 ‘보건복지, 의료, 교육, 위생, 환경, 안전 분야 등에서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구현하는 활동으로 신제품이나 공정,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혁신은 고도의 첨단기술을 토대로 한 기술혁신이 아닌 기존 기술들의 개량 및 새로운 결합을 통해 적정기술과 비즈니스모델의 혁신을 통합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의 특성을 지닌다. 예를 들면,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미니컴퓨터가 지배하던 과거 컴퓨터 산업에서 PC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된 것이 이러한 파괴적 혁신에 포함된다. 필요한 기능만을 가진 저가 제품을 토대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던 일반을 대상으로 대규모 시장이 창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이러한 사회혁신을 통해 지역문제나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검증해 왔다. SK그룹은 내부 MRO(소모성 자재) 구매를 대행하는 회사인 SK행복나래를 2011년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여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다른 사회적기업들을 지원하였다. 그룹 내에서 사회적기업 제품과 서비스를 우선구매하고 경영, 기술, 마케팅, 유통 등을 지원하였다. 그 결과 2017년까지 협력 사회적기업의 매출이 700억원 이상 증가하는 성과를 낳았다.

광주광역시 서구는 2015년 광역지자체, 현대자동차, 그리고 사회적기업인 공공미술프리즘과 함께 청년마을조성사업을 시작하였다. 단순히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보존에 중점을 두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청년마을조성을 목표로 추진된 사업이었다. 폐가를 리모델링해 커뮤니티 공간인 ‘청춘빌리지’를 만들고 버스정류장과 지도, 표지판 등을 제작해 마을의 디자인과 환경을 개선하였다. 더불어 지역주민과 청년이 운영하는 마을체험 1박2일 ‘이웃캠프’로 단체 방문객들을 모으고, 마을의 주요장소를 주민들의 목소리로 안내하는 모바일 가이드를 운영하는 등 마을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행하였다. 그 결과 마을의 공실률이 36% 감소하였고, 방문객들이 월 평균 6배 증가하였다. 이는 광주광역시 ‘청춘발산마을’ 이야기이다.

사회혁신에 의한 사회적경제는 대기업과 지자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3명의 젊은 대학생들이 ‘경제적 이유로 듣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정부 보조금(34만원)만으로 구입이 가능한 저가 보청기 개발에 나선다. 보청기가 고가인 이유가 맞춤형 주문제작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500명의 귓구멍을 조사한 후 표준디자인의 보청기를 개발하였다. 이것이 ‘딜라이트 보청기’로 ‘B-코프’라는 국제 사회적기업인증을 받았다.

아프리카 우간다를 방문하다 어린 아이들이 자신의 몸통만한 물통을 지고 힘겨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본 한 청년은 아이들이 안전하고 편하게, 그리고 덜 무겁게 물통을 질 수 있도록 직사각형 모양의 백팩 가방인 ‘제리백’을 개발하였다. 또한 패턴 등 디자인을 가미한 가방과 지갑 등을 상품화하여 소비자가 한 개를 구매하면 한 개의 제리백이 우간다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시스템을 모델링 하였다. 현재는 재사용이 가능한 여성 생리대 ‘굿패드’를 제작하여 보급하고 있다.

이 외에도 2002년 브라질 정비공이 발명하고 필리핀의 한 NGO단체가 필리핀 빈민가에 보급하면서 유명한 재활용 패트병 전구인 ‘1리터의 빛A liter of ligth’은 빈민가의 화재피해를 감소시켰고, 환경적으로는 재활용을 통한 자원절약과 탄소배출량 감소에 따른 지구환경에 기여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한 디자이너는 2012년 골풀 줄기를 엮어 만든 9m 높이의 조형물인 ‘와카워터Warka Water’을 통해 아프리카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였다. 일교차에 의해 이슬이 이 조형물에 맺히게 만들어 물을 모으는데, 하루 95리터의 물을 모을 수 있다. 제작비용이 500달러로 1주일만에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혁신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데, 그것이 시장의 욕구에 기반을 둔 것인지, 지역이나 사회적 필요에 기반 한 것인지를 통해 산업혁신과 사회혁신을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유경제의 경우 유휴자원의 활용 등을 통해 과잉생산을 막고 사회적·환경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데,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에 머물고 있는 국내 ‘소카’의 경우는 사회혁신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제로에너지 주택, 소셜 파이낸싱, 버킷챌린지, 로컬푸드 운동, 지역화폐 등은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회혁신의 유형들이다.

기존 사회적경제는 한시적인 인건비와 사업비 지원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매몰되는 등 단기적이고 양적인 성장 추구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국가와 지자체가 선정하고, 공공이 주도함으로써 개별 사회적경제조직 간의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사회혁신은 사회적경제와 일치선상에 있다. 현 정부는 국가운영원리로 사회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난제 해결을 위한 혁신모델들을 전국화 하고, 시민들이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며, 시민주도의 사회혁신 기반 조성 및 사회적 가치에 기반 한 정부혁신을 주요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에 사회적경제 또한 지역과 사회문제해결의 시민주도형 사회혁신을 목표로 시민참여의 다각화 (로컬푸드, 청년의 사회참여 등)를 모색하여야 한다. 한시적인 지원이 아닌 사회적기금을 조성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시장을 조성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등 경제활동조직에만 국한되었던 정책의 대상도 지역화폐와 같은 생산과 재생산 영역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사회혁신을 통해 현 사회적경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면, 시장자본주의에 의한 시장실패의 속도는 현저히 늦출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