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김 현 철 

서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토고 사이에 폭 120킬로미터의 폭으로 내륙으로 길게 뻗어 들어간 베냉이라는 국가가 있다. 한반도 면적의 약 1/2 크기인 이곳은 대량의 인신공양과 식인 의례, 그리고 피지배계급에 대한 지독한 착취 등 잔인하고 피비린내 나는 여러 문화적 특징들로 유명했던 다호메이 왕국이 있었던 곳이다. 이 왕국은 서양과의 노예무역을 통해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구축하였다. 다호메이 왕국은 독특한 경제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화폐이다. 카우리(돈개오지, 고리개오지 등의 조개류)라는 조개껍데기를 화폐로 썼는데, 끈으로 엮는다는 것을 빼면 아무런 손질도 가해지지 않았고, 몰디브 제도의 산호초에서 거두어들인 자연 그대로였다. 카우리는 자연 그대로의 자연물이기에 위조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크기가 컸기 때문에 축적이 불가능하였다. 큰 부피로 인해 축적할 경우 외부에 드러나게 되어 있어 몰래 부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화폐는 인간사회를 조직하기 위한 일종의 액세서리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후에 프랑스 관리가 들어오고 여러 금속 통화가 도입되면서, 그리고 교환수단으로서의 화폐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자 더 이상 통화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고대화폐는 사회구조를 더 공고히 하는 독특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숫자로 세는 관행을 도입하면서 의무와 권리를 양적으로 정확히 밝힐 수 있게 됨으로써 사회제도들이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띄게 된 것이다. 따라서 고대의 경제제도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경제적 역할과는 별개로 여러 사회적 기능과 연결되었던 것이다. 14세기 니제르 제국에서는 ‘꼬인 구리줄’이 화폐로 쓰였는데, ‘가늘게 꼬인 구리줄’과 ‘굵게 꼬인 구리줄’ 두 가지 화폐가 통용되었다. 이 화폐는 임금에 대한 지불도구로 쓰였다. ‘가늘게 꼬인 구리줄’은 오직 땔감용 나무와 거친 수수만을 살 수 있었으며, ‘굵게 꼬인 구리줄’은 지배계층들이 쓰는 재화를 살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소비의 한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유한계급의 높은 생활수준이 자동적으로 보호되는 기능을 제공하였다. 반면, 16세기 바스라에서는 ‘가난한 이들의 엘 (ell)’이라는 자 (尺) 형태의 화폐가 쓰였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후생을 증진시키려는 화폐로 비싼 옷감을 판매할 때 사용하는 보통의 자보다 1/5이 더 길었다. 이렇듯 고대화폐는 다양한 방식으로 신분과 연계되어 있었으며, 그럼으로써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회조직에 강력한 연결의 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화폐는 경제사회를 대변하는 교환수단이 전부가 아닌 사회와 연결된 의미론적인 시스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재능이나 노동교환 등을 화폐化한 타임뱅크나 노원 (노원구의 지역화폐) 등의 다양한 화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화폐가 반드시 교환의 수단일 필요는 없다. 화폐는 지불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고, 가치를 나타내는 표준으로서 사용될 수도 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보리가 임금이나 지대 (地代)를 지불하는 수단으로 쓰였던 반면, 가치표준으로 사용된 것은 은 (銀)이었다. 교환의 수단으로 은을 사용한 증거는 없으며, 차라니 기름, 포도주, 양모들 중 하나라 고정된 등가비율로 차별 없이 교환수단으로 쓰였다. 고대사회에서 가격은 관습, 법령 등으로 고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고정된 등가비율로 교환되었던 것이다.

지역화폐의 본질은 ‘교환’이 결코 인간사회를 조직하는 것을 뛰어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화폐가 공동체를 회복하고 지역순환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축함에 그 목적을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화폐가 사람들의 접촉을 증가시키고 비시장화된 것 (재능기부, 보육 등의 가정경제 등)을 거래시킴으로써 관계를 형성하고, 거래에 빠르게 사용되면서 지역순환경제를 활성화시키며, 시장주체인 기업들의 윤리적 경영과 더불어 윤리적 소비를 확산하는 것이 이에 포함된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 붕괴는 호혜적 선물경제 (gift economy)가 비호혜적인 금전적 교환관계로 대체되면서 발생되었다. 북미 북서부 아메리카 인디언과 아마존 유역 페루의 토착부족에서 국가화폐의 도입으로 인한 공동체 붕괴가 그 좋은 사례이다. 희소하고 경쟁을 유발하는 국가화폐를 보완하는 지역화폐의 사용은 공동체를 복원하거나 형성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지역화폐는 선물경제, 자원봉사, 박애와 같은 비공식적인 경제의 공식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비공식적인 경제의 정신을 공식영역에 확장시켜 공동체주의의 경제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제는 공식적으로 GDP 등 화폐경제를 가지고 측정되고 평가되는데, 가사활동이나 자원봉사, 품앗이 등 비공식적인 경제활동을 지역화폐로 공식화시킴으로써 살림살이, 삶의 질, 사회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주부의 가사노동, 할머니의 손주 돌보기, 며느리의 시부모 공양 등의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중요한 가치 활동들은 국가화폐로 평가되어 보상될 수 없다. 이러한 비공식적 경제활동들이 국가화폐로 교환되는 순간 호혜성은 사라지며, 사용가치에 담아야 하는 정서적인 것 (감사 등)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지역화폐는 이런 사회적 관계의 가치를 담는데 유용하게 활용 가능하도록 디자인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