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원대학교 교수

유 은 미

익산 함라마을에는 유명한 삼부자 집이 있다. 이배원, 조해영, 김안균 가옥이 그것이다. 이 세 가옥이 주목받는 데에는 부의 규모도 있지만 세 가옥이 닮은 듯 다른 건축적 특성에 있어서도 특별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세 가옥의 건축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유사성 및 독창성

세 부농 가옥은 의장 및 공간구성, 평면 형태 등에서의 유사성과 독창성이 나타난다. 이배원, 조해영, 김안균 가옥은 상류주거를 모방하면서 화려한 치장을 통하여 부의 과시 욕구를 충족하였다. 세 가옥 모두 화려한 꽃 담을 부설하였으며, 亞 자형 난간, 겹처마, 공포, 문 등을 통해 고도의 미적 감각과 세련미를 나타내었다. 유리, 벽돌 등의 근대적 재료를 이용하여 의장에 표현하였고, 비슷한 수법을 사용한 유사성이 나타나며, 각 주거만의 개성을 뚜렷하게 표현한 독창성이 보인다. 세 가옥의 사랑채의 평면형은 ┖┑형을 이루고 있는데 후대로 갈수록 양쪽 날개가 확대되며, 침방 및 수장 공간,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누마루는 이배원 가옥에서 김안균 가옥으로 갈수록 칸수가 증가하는데 이는 서로를 의식하는 가운데 건축적인 경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배원, 김안균 가옥은 유교적 관습에 따라 안채와 사랑채를 담장으로 분리해 놓았으나 후면에 복도를 연결하여 직접 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먼저 지어진 이배원 가옥의 연결 복도를 김안균 가옥이 모방하여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연결 복도는 창덕궁 연경당의 연결 마루와 유사한 특징이 나타난다. 연경당은 안채와 사랑채가 내담으로 구획되어 있으나 안채와 사랑채의 공간이 건물 한 동에 구성되어 있으며, 연결 마루를 통해 직접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 조해영 가옥 역시 안채와 사랑채가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으나 안채와 마주 보는 사랑채의 한쪽 날개 부는 여성들이 거처하는 실질적인 안채 영역이다. 복도를 경계로 남성의 공간과 분리되어 있는데 이 공간 또한 독립적인 공간으로 틀을 갖추어 가운데 2칸의 대청을 두었다. 당시 여성이 거주하는 침방 채는 부엌, 방, 대청으로 되어있어 안채의 역할을 하는 데 최소한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또한 몸채는 큰 사랑채, 누마루 부분은 월방 채라고 부르며 한 동의 건물 안에 3개의 영역이 나누어져 있어 공간의 실용적인 공간구성이 보인다.

이배원 가옥에서 김안균 가옥으로 갈수록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면서 건축양식의 유사성이 나타나는 동시에 각 주거의 독창성이 보인다. 특히 김안균 가옥에서는 연결 마루, 사랑채의 공간구성 등 이배원, 조해영 두 가옥에서 보이는 장점들을 적절히 수용하여 건축적 특성이 종합적으로 표현되었다.

2. 근대화의 수용

개항과 함께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함라의 부농 주거는 근대적 요소를 적극 수용하였다. 사랑채에 유리 미서기 문을 달아 마루를 내부로 끌어들여 복도화하였으며, 벽돌을 내담, 고막이, 굴뚝 등에 이용하면서 의장적 요소로 사용하였다. 실 구성은 김안균 가옥의 사랑채의 경우 침실과 거실, 응접실을 구분하여 평면 구성을 하였으며, 조해영 가옥에서는 양옥 사랑과 사랑채에 포치를 부설하여 서양식 건축 요소를 도입하였다. 또한 조해영 가옥 농장 사랑 건물은 완전한 일식 건물이며, 양옥 사랑은 판벽과 다다미방을 구성하여 일식 건축의 요소를 도입하였다. 또한 각 주거의 기둥 두께와 주칸의 치수가 일정하게 나타나며, 이는 계획에 있어 합리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 가옥 모두 전통양식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나, 특히 사랑채에는 근대화를 수용하여 안채보다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안채 기능의 확대

농장의 직접 경영과 농업 규모가 확장되면서 안채의 기능 확대가 요구되었다. 그로 인해 안채의 규모가 증대되었으며, 안채 내의 수장 공간이 발달하였다. 김안균 가옥에서는 대청을 제외한 부분에 다락을 두었으며, 조해영 가옥에서는 안채 외에도 사랑채에 안채 영역을 확장한 침방채에 또 하나의 부엌을 두어, 부엌의 상부에 다락과 대청 밑에 지하실을 두어 최대한의 수장 공간을 마련하였다. 또한 부엌이 확대되면서 부엌과 관련된 부속실들이 안채 내에 마련하거나 안마당에 별동으로 건축하였다. 김안균 가옥에서는 밥청이 부엌 전면에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배원 가옥에서는 밥청을 별동으로 안마당에 건축하였다. 또한 실광, 반찬광 등의 여러 광채들을 안마당에 적절하게 분산 배치하여 부엌과의 연결이 용이하게 하였다. 근대로 갈수록 안채의 모습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안마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가사 작업 공간이 점차 후면으로 이동 배치되었다. 이배원 가옥의 안채는 ㄱ자형으로 부엌이 전면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안마당을 중심으로 가사의 활동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해영 가옥은 一 자형, 김안균 가옥은 ┙의 형태로 부엌 연계 시설이 안채 뒤에 배치되어 점차 안채의 후면이 발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4. 농ㆍ경제시설의 확충

호남지역의 상류주거에서는 안마당, 사랑마당, 별당마당 등 마당이 세분화되었다. 그러나 농업을 직접 경영하는 부농 주거에서는 작업 공간을 위한 통합된 공간이 필요하였다. 이배원, 김안균 가옥에서는 작업 공간을 사랑마당과 안마당으로 통합하여 농작업의 준비, 가사노동, 수확물을 타작하는데 사용하였으며, 조해영 가옥에서는 타작과 세미(稅米)의 집결을 위해 농장 사랑 앞에 농장 마당이라는 큰 마당을 따로 두었다. 또한 방앗간을 따로 갖추었으며, 농장 사랑이라는 농장 사무실과 양옥 사랑에는 큰 홀을 두어 사음들의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세 가옥 모두 농사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많은 부속채를 건축하였다. 부속실을 별 동화하여 하나의 독립된 건물로 건축하였으며, 농장을 경영함에 따라 요구된 사무실을 가옥 내에 설치함으로써 직접 경영에 따른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해영 가옥의 새방 채는 도로변에 접한 한 부분을 목재 널을 떼어내면 바로 상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가변성을 두고 계획되었다.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실의 실용적인 사용과 생활내용에 따라 융통성 있는 실의 사용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