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그리스 출신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위인들을 대비하는 형식으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저술했다. 그중 로마의 위대한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키케로와 비견된 그리스 위인이 데모스테네스이다. 그는 말 한마디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뭉치게 하고, 연설을 통해 지금 당장 행동하자는 열정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데모스테네스가 살았던 시절에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에게 끊임없는 위협을 당했다. 데모스테네스가 그리스 연맹 결성에 앞장섰지만,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필리포스 2세가 죽자, 그리스는 지중해 일대와 소아시아를 정복하여 헬레니즘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를 만나게 됐다.

정복전쟁에 나선 알렉산더가 테베를 점령하자, 위기를 느낀 아테네는 알렉산더에게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알렉산더는 평화협정을 맺으려면 아테네의 웅변가 10명을 인질로 보내라고 했다. 그는 마케도니아에 대해 저항하는 그리스 연맹의 저력에 데모스테네스 같은 웅변가들의 항전 여론 주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이렇게 연설했다고 한다. “양의 무리가 자신들을 노리는 늑대에게 자신들을 지켜주는 개를 내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를 알렉산더에게 내주는 것은 양들이 자신들을 지켜주는 개를 늑대의 먹이로 주는 것과 같습니다.” 아테네는 웅변가들을 내주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데모스테네스가 남긴 명언 하나를 보자.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탐내는 것을 우리들은 언제나 믿으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는 확증편향을 갖고 있음을 직시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틀을 짜고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의 본질임을 꿰뚫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론 주도층을 없애서 손쉽게 정치적 목적을 이룬 사례는 너무도 많다. 550년 동안 전쟁을 한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보면, 여론 장악을 위해 적국의 군주를 회유하고, 정치인과 장군들을 모함하여 제거하거나 매수함을 전략의 으뜸으로 삼고 있다. 사고의 프레임을 조작해 이기는 게 상책이란 것이다.

특히 전국시대에는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성토록 설득하는 종횡가(縱橫家)가 맹활약 했는데, 그중 소진과 장의가 쌍벽을 이뤘다. 소진은 연횡책으로 전국 7웅 중 6국을 세로로 연합시켜, 진(秦)에 대항했다. 고향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자 출국해서 6국의 재상이 된 후 돌아오자, 그렇게 홀대하던 사람들로부터 공경을 받으면서 이게 세상의 인심이라고 말한 소진의 일화는 유명하다.

현대 사회에서 여론을 주도하고 프레임을 만드는 실세는 일개 정치인이 아니라 언론이다. 데모스테네스는 “작은 기회로부터 종종 위대한 업적이 시작된다”는 명언을 남겼는데, 직필 정론의 자세로 작은 사실과 맥락을 추적해 그 속에 감춰진 거대한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을 바꾼 언론들이 있었다. 반면에 은폐와 축소, 왜곡, 침묵을 통해 역사를 발전을 방해하는 사이비와 향원 언론들이 판쳤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범진보의 압승으로 끝난 4.15 총선은 2016년의 촛불 혁명과 함께 언론이 우리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촛불 혁명은 몇몇 용기 있는 언론이 작게 드러난 사실을 집요하게 파헤침으로써 대중과 함께 역사의 방향을 바꿨다. 반면에 이번 4.15 총선은 언론 특히 수구언론들이 합종연횡 하여 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자 인선과 경제 성적, 코로나19 사태 대응 등을 폄훼하다가 범보수의 참패를 가져다준 측면이 크다고 보인다.

수구언론들과 검찰이 반 년 넘도록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조국 사태는 재판이 거듭될수록 범죄행위가 명확히 드러나는지 않고 있다. 경제정책 실패로 국가를 말아먹고 있다는 프레임은 권위 있는 국제기관의 평가에 의해 무너졌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턱도 없는 주장을 하면서 정부 대응을 맹렬히 비난했던 것은 외국 정상들과 국제기구, 세계 유수의 언론 평가는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19 감염 및 사망 수치에 의해 박살 났다.

나는 한국 언론사를 기득권층과 결탁한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면서 사회의 시각을 왜곡해온 역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왜곡 보도에 더해 이번 김정은 유고설까지, 시각이 퇴화돼 군맹무상(群盲撫象) 격이 돼버린 수구언론은 급기야 스스로 신뢰도를 추락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뢰를 받지 못하는 수구언론, 수십 년 동안 칡넝쿨처럼 뿌리내린 수구언론을 시장에서 몰아낼 계기가 드디어 마련됐다.

데모스테네스나 소진 같은 사람들은 대의명분 또는 국가적 이익에 기초해 여론을 조장했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 자신을 늑대로부터 양 떼를 지키는 선량한 개라고 말했고, 외부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개를 지켜내야 양들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 수구언론은 늑대인 기득권과 결탁해 양들의 눈과 귀를 가리면서 결사적으로 개혁을 가로막는 기득권의 미친개가 아니던가?

아무튼 4.15 총선에서 수구언론이 본의 아니게 큰일을 해냈지만, 지켜줄 가치 없는 미친개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수구언론의 폐해는 코로나19에 버금간다. 차제에 수구언론 영구 퇴출에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