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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과 진실

(사)한국예총 익산지회장

김 영 규

풍경화(미술) 제작에 있어서 가장 기본은 원근법이 아닌가 싶다. 멀리 있는 큰 산과 가까이 있는 언덕 중 어느 것이 크게 보일까? 결론은 가까이 있는 언덕이 훨씬 더 크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언덕 가까이로 좀 더 다가가면 산은 언덕에 가려 아예 보이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착각 속에 단편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는 중국 송대의 문인 ‘소동파’의 시(詩), ‘제서림벽’(題西林壁)이 있다. 그가 여산(廬山)을 보고 나서 읊은 시이니

「가로로 보면 고개요 세로로 보면 봉우리라, 멀리서 가까이에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 각기 다르구나. 여산의 참 모습을 알 수 없는 것은 단지 내가 이 산 가운데 있기 때문이리라」

산속에 있기 때문에 산 전체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역설적인 내용이다. 즉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한발 물러나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니 큰 줄기, 큰 흐름을 보아야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성공한 정치가나 경영자들의 특징도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줄 안다는 점에 있지 않나 싶다.

인간들은 자신 가까이나 눈앞의 관심사만 보기 마련이다. 자신의 이익이 걸려있으면 그것만이 확대되어 크게 보이고, 결국은 그것에 눈이 멀어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된다. 사람이 판단을 그릇 치는 대부분은 작은 것에 눈이 멀어 전체를 보지 못할 때인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진실이며,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고 장담하는 경우, 그것은 착각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지식과 사실, 사건들에는 감춰진 진실이 따로 존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와 같은 진실과 착각들은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예술과 문화로 발전하기도 한다. 좋기도 나쁘기도 하며, 단순하기도 복잡하기도 한 수많은 착각들! 가정과 사회, 개인과 단체, 취미와 오락, 음식, 관습 등은 물론이요 정치·경제·예술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 전반에 잠복해 있는 다양한 형태의 착각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착각인지조차도 모르고 살아간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초 컬러 TV 방송을 시작한다. 북한보다도 늦은 1970년대 초에 시작된 흑백 TV에 10여 년 익숙해질 무렵, 컬러 방송은 색채에 대한 일대 혁명이었으니- 천연색의 자연 풍경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곳곳의 풍습과 생활상, 특히나 각국의 수많은 미인들의 모습을 안방에서 볼 수 있었다. 예쁜 탤런트와 멋진 영화배우의 얼굴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각종 광고의 한편에서는 미인의 표준 모습으로 확대 포장 선전되어 우리 기억에 깊이 새겨졌다. 서구적인 몸매, 커다란 눈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면서 여성들은 다이어트와 성형에 집착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나라 우리 시대의 미인은 비현실적인 마네킹의 모습으로 바꿔놓고 있다. 그러나 고작 우리 시대만의 미인일 뿐 시대와 가치 기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났으니 조선시대의 미인은 쌍꺼풀 없이 가는 눈, 입이 작고 둥근 턱 선에 피부와 이는 희고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검고, 볼과 입술은 붉었다. 중세 서양의 미인도 마찬가지여서 비만에 가까운 풍만한 체형의 여성을 최고의 미인으로 여겼다. 항상 미의 기준은 시대와 장소, 유행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오래전에 아름답다고 여기던 기준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사뭇 다르다. 착각인 것이다. 영원한 절대 미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착각에 따라 계속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는 구경꾼들의 판단이 가장 정확하다. 바둑이나 장기를 직접 두는 사람은 유단자이고 구경꾼은 아마추어일지라도 구경꾼들의 판단이 옳은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이니- 바둑을 두는 당사자들은 숲속에 들어가 있기에 숲 전체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나무만 본다. 반대로 구경꾼들은 한발 물러나 있기에 숲 전체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있다. 인류가 문명을 세운 날부터 시작되었으리라 생각되는 고귀한 전통이 사실은 어느 역사가의 착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만이 유일한 독창성을 지녔다고 뽐내는 예술품이 그 시대에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밥그릇과 같은 것이니 착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든 것은 결국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일 뿐이니- 인간은 착각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착각은 잘못된 주장이니 만큼 가급적 줄여야 한다. ‘착각’ 시대착오는 역사가의 치명적 죄악이며, 정치인의 가슴 아픈 졸작이다. 따라서 우리는 착각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소탐대실(小貪大失)을 벗어나 진실을 알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