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상식은 일반적인 사람이 다 가지고 있거나 있어야할 지식이나 판단력이다. 나는 일반적인 사람도 못 되는가 보다. 익산수필 모임에 갈 때다. 회원 두 명이 옆 아파트에 살기에 내가 참여를 할 때는 같이 택시를 타고 간다. 그날도 중간지점인 우체국 앞에서 만나 택시를 탈 때다.

모임이 6시 30분이라서 퇴근시간대와 겹쳐 도로는 복잡하다. 많은 차들 속에 택시 한 대가 있다. 겨울엔 캄캄해서 어느 것이 빈 택시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저 앞에 있는 그 택시를 타자고 한다. 시간에 맞춰 불렀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근데 어떻게 저 택시가 빈 택시인줄 아냐고 하니 차 지붕에 있는 택시라는 표시에 불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것을 몰라 “자기는 아는 것도 많다. 어떻게 그런 것 까지 다 알아?” 신기해하는 내게 L은 이런 것은 상식이라고 한다. 택시 앞에 ‘빈차’라고 불이 들어온 것만 타는 줄 알았다. 이렇듯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도 나는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몇 개월 전이다. 남편이 냉장고 안에 있는 계란에 꽃이 피었다고 한다. 계란에 꽃이 핀다는 말은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우선 신비감이 앞섰다.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것도 아닌데 우리 집에 무슨 상서로운 일이 일어날 조짐일까 순간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아무리 쳐다보다 꽃은 보이지 않았다. 곰팡이가 피었을 거라 지레짐작 했는데 아무런 색깔도 없다. 어디에 무슨 꽃이 피었냐고 물으니 계란을 꺼내 일일이 손으로 짚으며 알려준다. 아주 가는 실 같은 것이 계란 껍질위로 나와 무늬를 만들어 놓았다.

계란을 사다 넣어놓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서른 개가 그대로 있는 참이다. 하나하나 꺼내 확인을 해보니 대여섯 개만 빼고 그런 표시가 다 있다.

때는 살충제 계란 얘기가 있을 때여서 불안감이 들었다. 대형마트에서 아무렴 살충제 계란을 팔았을까. 살충제 계란이 꽃을 피운다면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내일 당장 마트에 가지고 가서 알려주자고 했다.

꽃이 피지 않은 것을 정상 계란이라고 생각한 나는 어쩌면 이렇게 섞어 팔 수 있을까. 당신이 운 좋게 알아냈으니 망정이지 덜렁대고 먹었으면 살충제 다 먹었을 거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역시 우리는 운이 좋다며 대단한 행운을 얻은 것처럼 남편과 하이파이브까지 날렸다.

저녁시간에 계란 삼십 개를 다 들고 마트에 갔다. 고객센터에 가서 계란에 꽃이 피어 가지고 왔다고 하니 직원도 깜짝 놀란다. 계란을 보여 주며 “여기도 이렇게 나와 있죠, 또 이것도 그렇죠.”하며 하나하나 짚어주니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 직원도 이런 일은 처음인 듯 한동안 말이 없더니 어디로 전화를 한다. 구매 담당자인지 계란 전문가인지가 왔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무엇이 문제이냐고 묻는다. 우리의 설명을 들은 그녀가 계란 하나를 손으로 눌러 깨 보더니 계란이 얼었다는 것이다.

냉장고 안에서 얼 수도 있어요? 냉동실에 넣은 것도 아닌데. 계란은 이상이 없고 우리 집 냉장고가 문제라는 것이다. 냉장고를 새로 바꾼 지 3년도 안 되었다고, 한 번도 냉장고 안의 음식물이 얼은 적이 없다고 했다.

젊은 그녀가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 듯 답답해했다. 누가 봐도 얼어서 그러는데 그럴 일이 없다고 우기니 어찌할 방법이 없는지 계란을 손으로 눌러 모두 깨버린다. “이것도 얼었고 이것도 얼었고” 혼자 중얼중얼 거리면서.

또 상식 이하의 일을 한 것 같아 부끄러워, 단지 얼어서만 그런다면 먹어도 이상 없는 것 같아 도로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살충제 계란이라서 꽃이 핀 게 아닌 가 불안한 마음에 가져 왔다고 하니 환불해 주겠단다. 먹을 수 있는 것이 모두 폐기처분 된다.

무엇 때문에 냉장고 안에서 얼었을까, 냉장고 회사에 A/S를 신청해야 하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냉장고 안에 끊여 넣어둔 물이 살짝 얼었었다. 그 때는 예사로 알았다. 그렇다면 냉장고가 문제다. 괜히 계란 탓을 했기에 마트 직원에게도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

물이 다시는 얼지 않았다. 냉장고 A/S를 언제 부를까 날 잡다가 한 이틀이 지났다. 새로 사다 넣은 계란에 꽃이 피지도 않았다. 냉장고 직원을 부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마트 직원에게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갔다.

냉장고 안에서 계란이 얼 수도 있냐고 살림 고수에게 물어봤다. “냉장고 안이 얼마나 비었으면 계란이 다 얼어요.”라며 먹을 것은 좀 먹고 살라고 한다. 냉장고 용량에 비해 안에 있는 것이 적으면 언단다. 이것도 처음 듣는 얘기로 그날에야 알았다.

왜 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을까. 나이는 어디로 먹었을까.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는 것인가. 아무 생각도 없이 사는 것 같다. 나의 이런 꼴을 보아야 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은 얼마나 폭폭할까.

택시 지붕의 등에 불이 들어오면 빈 차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나 혼자 불편하고, 내 시간 없애면 그만이다. 그러나 상식을 몰라 남에게 피해주고 멀쩡한 것을 버리고 잘못도 없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내 멋대로 의심하는 것은 폭력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무지는 죄다.

죄를 짓고 싶지 않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를 해야 상식 있는 사람이 될까. 상식학원이라도 다녀야 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