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김 현 철

볼로냐는 이탈리아 중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에밀리아 로마냐주의 주도이다. 우리에겐 사회적경제의 메카로 유명하며, 성남시와 우호도시협약을 체결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도시의 볼로냐 대학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학 (1088년 설립)으로 신곡을 쓴 단테,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루니쿠스, 무선통신을 발명한 마르코니 등이 이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세계 최초로 해부학을 강의한 대학으로도 유명하다.

볼로냐의 인구는 약 37만7,000여 명의 중소도시로 유럽 내 잘사는 5대 도시 중의 하나이며,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가 넘는다. 실업률은 3%로 가장 낮으며, 여성 고용률도 이탈리아 평균보다 10% 이상 높다. 이러한 삶의 질은 협동조합으로부터 출발한 사회적경제에 그 원인이 있다. 400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있고, 주요기업 50개 중 15개가 협동조합이며, 시민의 2/3가 한곳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소비자협동조합인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는 100만명 이상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으며, 매출액은 20억 유로에 달한다. 대형 매장 16개, 중소형 매장 138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취급 제품의 70% 이상이 지역 내에서 생산된다. 주택건설협동조합 무리Murri는 주택수요자들이 만든 협동조합으로 2만3,0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으며, 친환경 주택을 건설하면서도 분양가는 일반 시세보다 20%까지 저렴하다. 다수의 협동조합이 연계 추진하는 카라박 프로젝트는 시정부와 민간 협동조합들이 파트너십을 통한 보육정책으로, 시정부는 부지와 운영비를 부담하고 건설협동조합이 보육시설을 조성하며, 보육협동조합이 보육시설을 운영한다. 급식의 경우에는 급식협동조합이 담당한다. 위에서 언급한 볼로냐 대학 또한 협동조합 방식처럼 학문을 갈구한 사람들이 모여 학자들을 초빙하였던 것에서 시작된 만큼 가히 볼로냐는 협동조합, 사회적경제의 도시라 할 수 있다.

유럽에서 본격적인 사회적경제는 자유시장경제의 폐해에서 출발한다. 19C 산업혁명은 유럽사회 내에서 자본가들이 득세하는 계기가 되었다. 산업혁명은 노동, 즉 사람을 생산의 한 요소로 간주함으로써 사회를 피폐화 시켰다.

열악한 환경 내에서 평균 16~18시간 노동에 시달렸으며, 아동들의 평균 노동시간도 12시간이 넘었다. 1840년대 공장지대 노동자 자녀의 60%가 전염병 때문에 5세 이전에 사망하였으며, 근로자의 평균 수명이 20세 미만, 심지어 어린이 노동자의 평균이 17세일 정도로 경제는 인간의 삶과 사회를 철저히 망가뜨렸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협동조합 운동 등 근대의 사회적경제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스페인, 벨기에 등 유럽 내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회적경제가 활발히 작동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경제의 성과는 고용측면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경제의 목표가 일자리는 아니지만, 장기적이 관점에서 창출하는 가치 중의 하나가 일자리이기 때문에 유럽의 사례를 통한 성과 검토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EU의 실증적 자료를 살펴보면, EU 내 27개국 (당시 영국 포함)에서 사회적경제가 차지하는 고용비중 (2009-2010년 기준)은 6.53%이며, 동유럽 등을 제외한 주요 15개국 평균은 7.41%이다. 스웨덴 (11.6%), 벨기에 (10.3%), 네덜란드 (10.23%)는 10%를 넘으며, 이탈리아가 9.74%, 프랑스가 9.02%로 그 뒤를 잇는다. 유럽 내 경제 부국인 독일도 6.35%에 이른다. 필자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전체 고용에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경제는 경제위기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사회적경제가 활발히 작동되는 경제구조에서 경제위기로 인한 경기침체는 빠르게 복원된다. 이는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비영리적이고 구성원의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로 인하여 쉽게 매각될 수 없으며, 구성원들의 역량과 권한empowerment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 근로자의 구조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잉여금의 배분에 대한 제한으로 인하여 재정적 준비금을 유지할 수 있으며, 나아가 위기상황에서의 일정한 합의구조로 인하여 근무시간, 위계적 급여구조, 직업의 안정성에서 유연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즉, 외부적으로 축적된 신뢰를 바탕으로 기금과 자발적 근로가 시장불황에 대해 완충장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2002-2003년을 기준으로 세계경제위기가 유럽을 강타한 후의 2009-2010년 고용 증가율이 26.7% 증가한 사실이 이를 확인해주고 있다. 글로벌 산업집단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경우 오히려 세계경제위기 때 고용을 늘렸으며, 이탈리아의 대표적 사회적기업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협동조합들의 고용은 2008년 이후 11% 이상 증가함으로써 경제회복의 동력을 제공하였다.

우리나라는 외부의 충격으로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국내 총생산량GDP의 약 13.8%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기업매출의 하락은 국가경제를 위기로 내몰게 할 수도 있다. 상기에서 언급했듯이 사회적경제는 경제위기에서의 복원력을 증대시킨다. 사회적경제조직의 구성원들은 의사결정과정을 공유하며, 이로 인하여 경제위기 동안 고용수준을 낮추기 보다는 임금조정의 메카니즘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국내 사회적경제 고용은 9만1,000여 명으로 총 고용인원 약 2,684만여 명의 1.4%를 점유하고 있으며, 우리도의 경우 15,652명 (전북연구원 자료 참고)으로 전체 고용의 1.85%를 차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적경제의 고용비중 목표를 6%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약속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매우 긍정적인 신호이다. 사회적경제는 일자리뿐만 아니라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등의 사회적 자본을 창출한다. 즉, 취약계층 등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연대와 신뢰를 이끌어 낸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에 우리의 사회를 맡기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소수를 위한 ‘경제적 성장’이 아닌 ‘삶의 지속성’을 추구함으로써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어 가는데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