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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정의와 불의만 있다

익산시민 유 성 무

온갖 부정과 비리를 일삼아온 국정농단세력들의 추악한 행위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최순실로 대변되는 비선세력과 부패한 공직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망동이 아니다. 국정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참모진뿐만 아니라 정부, 국회, 사법당국, 재계, 언론 등 국가 시스템 전체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음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 국민들이 겪고 있는 분노와 좌절은 지지도가 5%까지 떨어진 대통령의 하야 또는 탄핵 정도로 해소될 수 없다. 잔악한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한 이래 오늘날까지 누적된 병폐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국가적 대수술만이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드러난 국정농단사태야말로 우리나라가 온전한 민주국가로서 재도약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다.

지금은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이념적 프레임도, 케케묵은 종북 프레임도, 지역 프레임도 전혀 설득력이 없는 참으로 보기 힘든 상황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당장 필요한 잣대는 오로지 정의(正義) 하나일 수밖에 없다. 작금의 사태가 결국 오랜 불의의 누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농단사태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정치가 국가안보와 민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를 절감하고 있다.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언제 범국민적으로 정의에 대한 담론을 펼칠 수 있겠는가?

나는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국가 시스템이 정상화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정한 언론환경 속에서 철저하게 검증된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이를 시작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국민들의 각성 속에서 다시 총선을 치름으로써 최소한 염치를 아는 자들이 국회에 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동력으로 그 누구도 국정농단을 할 수 없도록 개헌을 하고, 국가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숙정(肅正)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이런 국민혁명 없이 대한민국이 어찌 다시 살아나겠는가?

물론 이와 같은 국가 개조에 부패한 기득권층들이 온갖 이유를 들면서 저항할 것이다. 하지만 부패한 기득권층들과 함께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함은 이미 이승만과 군사독재 정권, 그리고 부패한 정권들을 통해 목도하지 않았는가? 이번이야말로 정의의 이름으로 뿌리 깊은 부패세력을 철저히 단죄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폭력적인 단죄를 주장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왜곡된 근현대사를 바로잡아서 불의에 저항하는 민족의 정기를 다시 살리자는 것이다. 정권에 아첨하면서 호가호위하는 부패 공직자들을 일소하여 법과 양심을 따르는 역동적인 공직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공평하게 법의 적용을 받자는 것이다. 기득권층이 갖는 권리의 정당성을 조명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이를 시정하자는 것이다. 불의에 동조하거나 침묵하는 사이비 언론을 가려보자는 것이다. 즉 민주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정의가 가치기준인 국가를 만들어야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국가적 위협요소들을 해결할 수 있다. 그래야 어느 나라에도 휘둘리지 않는 안보태세를 갖출 수 있으며, 우월한 체제를 바탕으로 평화통일을 추진할 수 있다. 기업들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서민경제도 안정될 수 있다. 원칙을 바로 세움으로써 각종 사회문제를 탄력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전 세계가 인정하고 매료될 수 있는 문화 창달도 가능하다. 이것이 ‘Creative Korea’가 아닌가?

이미 도덕적으로 파산한 현 정권은 국정운영능력을 상실했다. 현 정권의 존재 자체가 국가적 위협이라는 것이 국민의 보편적 인식임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분노한 국민들의 힘으로 대통령을 하야시키거나 국회가 탄핵을 하던지, 대통령이 끝까지 자리를 보전하는 최악의 경우가 있더라도 정권교체가 꼭 이뤄져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야권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지난 4.13 총선의 야권 승리는 현 정권과 집권여당의 무능에 대한 반사이익에 불과했다. 총선 승리 후 야권에 등장한 인물들이 보여준 면모에서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실천능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부패 기득권층들과 이들을 비호하는 정치권 및 언론의 뿌리는 매우 견고하다. 지금은 잠시 꼬리를 내리고 있지만 약간의 틈만 생겨도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그들은 세상이 바뀌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인데, 지금의 어수선하고 무기력한 야권이 이들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있다. 야당이 진정 정권교체를 통한 민주주의 실현 의지를 갖고 있다면, 부정부패세력과 이들에 동조하는 세력들을 척결하겠다는 약속을 천명하라. 길거리로 나오는 국민들의 뒤에 서서 고담준론이나 일삼는 비겁함을 버려라. 중도를 잡겠다는 어쭙잖은 진영논리와 역풍을 걱정하는 소심한 정치공학에서 벗어나 노회찬과 심상정처럼 전면에 나서 정의의 칼을 뽑겠다는 결기를 보여라. 지금은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정의와 불의로 나눌 때임을 직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