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예총 익산시회장

김영규

진실과 거짓, 진짜와 가짜, 생화와 조화 등 구분하기 힘든 세상이 요즘이 아닌가 한다. 필자가 전공한 예술분야에 있어서도 원본과 복제품, 진품과 위작품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예술 용어에서 ‘아우라’와 ‘키치’는 상반된 개념으로 우리는 이해한다. 아우라가 유일한 원본에서만 느껴지는 독특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의미한다면, 키치는 원본을 모방한 가짜 복제품이나 통속미술작품을 뜻한다.

독일의 철학가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말하기를 현대사회의 예술작품에 일어난 결정적인 변화를 “아우라의 붕괴”로 정의했다. 하지만 그는 아우라의 파괴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기술복제시대에 예술이 대중 가까이 다가오면서 인간해방을 위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했다. 하지만 기술복제 발달이 벤야민의 기대만큼이나 긍정적인 실험으로 이어진 것만은 아닌듯하다.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수십억대의 호가를 기록하는 작품이 등장할 때마다 끈임 없이 반복하며 발생하는 위작 논란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4,000만 달러에 거래된 반 고흐의 7번째 해바라기는 전기연구를 통하여 해바라기 시리즈는 6점뿐 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오늘까지 위작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2005년, 한 고서화 수집인이 이중섭, 박수근 등 유명화가의 미공개 작품 2,8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상 최대의 위작 논란이 일어났다. 전문가들의 안목, 과학감정으로 1·2심에서 위작 판정이 내려졌다지만 아직도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위작 시비는 작가가 생존하여 있다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는 작가 본인이 가짜라고 계속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제3자인 한국화랑협회가 앞장서서 진품이라고 판정했다. 1999년 위조범 권춘식이 ‘미인도’는 내가 위조한 것이라고 진술, 반전의 기회가 있었으나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수사를 마쳤다. 이와 같이 위작 시비 후에 천경자는 절필 선언을 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2015년 8월 6일 향년 91세에 사망, 미인도의 위작 시비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전남 고흥에서 1924년에 태어난 천화백은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재학 중 혼담이 오고 가자 피신의 방법으로 일본 유학을 떠나면서 화가의 길로 접어든다.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일본화 고등과에서 모델을 관찰, 섬세하게 데생하는 법을 배운 그는 1942년 제22회 선전에서 ‘조부’라는 인물화로 입선한다. 그 후 귀국길에 만난 일본 유학생과 전격 결혼하고 이혜선 씨 등 1남 2녀를 낳지만 곧 이혼, 6·25 이후에는 유부남이던 신문기자와 사랑에 빠져 재혼, 1남 1녀를 더 얻는다.

실제 삶에서 얻은 여인의 한과 환상, 꿈과 고독 등 화려한 원색을 이용, 동양화의 먹색을 배제한 자신의 화풍을 개척, 여성화가로는 보기 드문 충격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의 작품에는 고독과 애틋한 사랑,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초현실주의적 분위기, 환상, 이국에 대한 동경, 자신을 지탱하려는 나르시시즘이 복합적으로 묻어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천화백은 파격적인 의상과 짙은 화장, 하이힐, 선글라스 등 스타화가로 김환기, 박고석, 김흥수 등 화단 동료들은 물론, 박경리, 한말숙, 전숙희 등 여성 문인과 조용필, 이덕화, 윤여정 등 연예인들과도 교류했다. 홍익대 교수(1954-1974)로 재직 중 필자(1969-1972 재학생)의 은사로서 1972년 베트남전 기록화가로 참여, 다른 10여명의 작가와 함께 공보원에서 대작전을 열었으며 우리 재학생 모두는 단체관람도 했었다.

그는 남태평양의 여러 나라, 아프리카 등을 여행한 뒤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글 솜씨도 뛰어나 ‘여인 소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등 10여권의 주옥같은 수필집도 출간했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여류화가 최고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천화백의 작품 중 최고가는 2009년 K옥션을 통하여 거래된 초원Ⅱ(F60호, 1978)는 12억원을 기록하였으며 최근 국내 경매시장에서 거래된 작품의 호당 가격은 8,250만원으로 박수근(1억7,800만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게 기록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진실은 분명하게 밝혀지리라 믿으며 그 믿음이 우리의 삶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