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에게는 큰 죄가 있고 임금에게는 큰 실책이 있다. 그것은 신하와 군주의 이점(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군주의 이점은 유능한 자에게 벼슬을 주는 데 있고, 신하의 이점은 무능하면서도 일을 맡는 데 있다.

군주의 이점은 공로가 있는 자에게 벼슬과 봉록을 주는 데 있고, 신하의 이점은 공이 없으면서도 부귀해지는 데 있다.

군주의 이점은 걸출한 인사로 하여금 능력을 발휘케 하는 데 있고, 신하의 이점은 붕당을 만들어 사리(私利)를 도모하는 데 있다.

이리되면 나라의 영토는 깎이고, 사삿집은 부유하게 되고, 임금은 지위가 낮아지고, 대신은 중하게 된다. 임금은 세력을 잃고 신하는 나라를 얻게 된다.

임금은 스스로 명칭을 고쳐 번신(제후)이 되고 정승이던 자는 벼슬을 마음대로 줄 수 있는 신분이 된다. 이것은 남의 신하된 자가 군주를 속이고 사리를 도모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당세當世의 중신으로서 군주가 사세事勢를 변경할 경우 지금까지의 군주의 총애를 굳힐 수 있는 자는 열에 두셋도 없을 것이다. 그 까닭은 신하의 죄가 크기 때문이다. 신하로서 큰 죄가 있다는 것은 군주를 기만한 행실을 말한다. 그 죄는 사형에 처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모 있는 인사는 멀리 내다보고 죽을 것을 두려워하므로 결코 중신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며, 어진 인사는 수양이 있고 청렴하여 간신과 더불어 군주를 기만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므로 결코 중신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은 어리석고 탐오한 사람을 끼고 그들과 함께 위로는 군주를 속이고, 아래로는 사리를 거두어들인다. 붕당을 만들어 침탈을 하며 편당끼리 서로 두둔하고 어울린다. 한결같이 입을 맞추어 임금을 미혹하고 법을 파괴함으로써 국민을 혼란하게 만든다.

또한 국가를 위태롭게 만들고 영토를 깎이게 하며, 임금을 노고롭고 욕되게 만든다. 이것이 곧 큰 죄인 것이다. 그런데도 군주는 이를 금하지 않으니 이것이 곧 큰 실책인 것이다. 임금은 위에서 큰 실책을 저지르고 신하는 아래에서 큰 죄를 범하게 만들어 놓고서 나라가 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해도 될 수가 없는 일이다.

이 글은 한비자의 고분 편에 나오는데 한비는 각각 이익을 달리하는 임금과 신하의 관계에서 이러한 위험의 싹이 아직 커지기 전에 임금이 이를 금지시키지 못하는 것을 들어 임금의 커다란 실책이라고 규정한다. 나아가 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임금이 위에서 큰 실책을 저지르고 신하가 아래에서 큰 죄를 범한다면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