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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권시대를 준비하자

협동사회경제연구소 대표

권 태 홍

잠시 후 이 글의 투고 마감시간 세 시간 이후에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투표가 시행된다. 긴장된다. 역사적인 시간이다. 헌정사상 주권자인 국민들의 주권행사에 의해 압력을 받은 국회 대리인들의 현직 대통령 첫 탄핵투표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정치권 내의 공학적 접근의 결과였으니 이번 탄핵 표결은 헌정사상 최초로 주권자인 국민행동이 불러온 결과이다.

역사적 의미가 너무 크다. 헌법이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이래 9회의 개정을 해오면서 조금씩 문구 수정은 있었지만 현행 헌법 제69조의 대통령 취임선서 ‘헌법준수/국가보위/조국의 평화적 통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민족문화의 창달 노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또 제정헌법에서부터 국회의 탄핵소추권도 존재했었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없을 때는 별도의 탄핵 재판소를 설치하게 되어 있던 점이 다르긴 했지만. 역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국민 학살, 군사쿠데타, 부정선거와 부정축재 등 법적 구속처벌은 별론으로 하고 응당 탄핵감이었지만 관제적인 국회가 그 역할을 하기는 어려웠다.

국민에 의해서 쫓겨나고, 부하에 의해 암살되고, 뒤에 구속처벌되기는 했었지만. 대한민국이 헌법을 제정하고 출범한 이래 최대 규모의 주권자 촛불시위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고, 엘리트들의 정치 놀이터였던 대의정치가 국민 주권자들에 의해서 강제당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문구에서만 존재했던 국민주권을 국민들이 스스로 찾아가고 또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시기 국민주권행동의 결과들을 돌아보자. 4월 혁명의 열망은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의해 반동적으로 무산되었고, 6월 항쟁의 성과는 엘리트 제도정치권의 보수적 타협에 의해 대통령직선제만을 얻는 데 그쳤다. 이번 11월 혁명은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탄핵과 대통령 퇴진 이후의 변화를 현재의 보수적인 엘리트 제도정치권에 맡기면 또 실패한다.

물론 이런 변화는 탄핵과 대통령 퇴진 이후의 일일 수도 있다. 탄핵 소추의 결과에 따른 변화의 내용도 천양지차일 것이다. 하지만 탄핵 가결과 부결에 따른 차이는 태풍같은 촛불행동의 주권적 의미에 비교한다면 그리 크지 않다. 탄핵이 부결된다면 20대 국회도 함께 해산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참으로 짧은 시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왔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위대함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산업화의 기적, 민주화의 기적을 모두 이루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았던 탓에 미완의 기적이었다. 산업화의 그늘도 컸고, 민주화의 한계도 명백했다. 후발 산업화를 이룬 국가로서 세계화의 경쟁압력은 이중고, 삼중고였다.

특히 이제 혁명적 탈피를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는 수출드라이브형 산업구조, 양극화를 방치하는 경제, 무한경쟁만을 부추기는 경제는 국내외적으로 경쟁력을 잃었다. 경제민주화의 근본적 추진 없이는 내외적 도전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 전 국민들의 촛불은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의 퇴진과 처벌을 넘어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라는 절규이고 명령이다. 새로운 정치혁명과 산업혁명, 경제민주화의 혁명을 시작하라는 합창이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근본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이미 그 변화의 단초와 방향을 촛불이 제시했다.

대의민주주의가 주권자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체질과 운영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주권자들의 뜻을 거스르고 기득권에 안주해왔던 정치꾼들, 정치사업가들을 분별해서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벌써 진한 화장을 시작했다. 3세력 운운하면서 이름도 바꾸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세력인 것처럼 나설 것이다.

이번 탄핵과정에 보여주고 있는 태도들을 잊으면 안 된다. 기득권 카르텔의 행태들을 낱낱이 살펴서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구조, 운영시스템, 대의정치의 주체들이 온전히 주권자들을 대리할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힘을 모아 바꿔내야 한다.

특히 정당의 변화가 중요하다. 떳다방식 정당정치를 퇴출해야 한다. 정당정치의 변화 없는 권력구조의 변화는 기득권의 재편과 강화에 다름 아닐 것이다. 혁신된 정치권이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이번 기회에 끊어야 한다. 대기업들이 중장기 혁신을 통해 오로지 기술 경쟁력을 가지고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 사회에서 받은 만큼 사회적 기여를 하게 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빠른 시간 내에 일소하고, 양극화를 완화 해소하며, 중소기업과 농민을 비롯한 소생산자들과 자영업자들이 시장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런 영역에서 독점대기업과 재벌들을 확고히 규제해야 한다.

특히 남북 경제를 아우르는 내수의 획기적 확장이 필요하다. 남북대결정책과 일방적 친미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남북화해와 교류를 확대하고, 미중 G2 국가 사이의 균형외교가 생존의 길이다. 국가부채와 민간부채를 잘 관리하고, 재정 투명성과 건강성을 확고히 하여, 세제 개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보편복지국가로 갈 수 있는 기틀을 만들 수 있다.

이 모든 변화의 동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와야 한다. 내년 조기대선이 종료되고 집권 1년차까지 이런 문제의식이 끈질기게 관철될 수 있도록 일상생활을 일부 희생하고 끈질기게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새로운 공동체 대한민국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되어야 최소 30년 앞으로 평화로운 일상,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민주권시대를 국민의 힘으로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