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예총 익산시회장

김영규

꾸무럭한 날씨가 요즈음 우리나라 정가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매스컴에 일기예보도 잘 맞지 않아서 매사에 예측은 선무당 사람 잡듯이 불안하기만 하고, 오고 가는 수많은 대화들이 정리하기가 난해하기만 하다.

계산해보니 삼백오십여일을 가까이에서 자주 들여다보던 달력이 달랑 한 장뿐이다. 병신년(2016)도 이제 십여일 후면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이니 진정 세월의 빠름과 무상함을 느끼게 해 준다.

지난 연말에 어렵게 구한 달력에는 가족에 생일이나 제삿날, 모임과 장소, 시간, 만나야 할 사람들의 이름과 친척의 대소사 등 잊어서는 안 될 사연들을 일깨워 주던 깨알 같던 내용과 함께 누렇게 변하여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다.

해마다 반복하여 겪는 일이지만 머지않아 또다시 한 해를 결별하고 또 한 살의 나이와 구질구질한 경력들을 정리, 서둘러 금을 긋고 결국 마감을 하고 마는 것이다.

나이가 어리고 젊은 날은 한 해가 무척이나 길고 멀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적당히 짧아지더니 이제는 너무나도 쏜살같이 한 해가 가버리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크고 작은 헤어짐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 우리지만 누군가 아니면 세월이 떠나고, 떠나보내는 이별이란 분명 아쉽고 마음 아픈 일이다.

태양은 공평하게 따뜻한 빛을 보내고 있지만 세상 모두에게 빛이 닿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장애물이 있어서 또한 스스로 편협하게 덧문을 내려서 햇살의 혜택을 거부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인간생활에는 순조로운 흐름과 마음의 진행을 가로막는 크고 작은 방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 마음의 방해자를 제어하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할 때 결과가 어느정도이든 그 노력의 기쁨을 내것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해가 바뀌면 한 살 더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며 거부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때마다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나 수용태세는 인생화를 채색하는 희·비·애·락의 온갖 색채도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다만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하듯 아쉬움에 연연해하기 보다는 당연한 생을 진지하게 응시하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한 연말인 것이다.

지난 일년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냐하는 자문 앞에 그 대답은 반성의 두께만 더해갈 뿐이다. 흘러간 지난 생활의 반성은 인간은 아름답게 해주며,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힘이고 자아에 눈뜨는 계기이다. 자아를 눈뜨게 함으로써 자신을 아끼고, 이웃을 사랑하며, 나라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아닌가 생각된다. 광복 70여년이 지나는 동안 6·25, 분단, 4·19, 5·16, 광주민주화운동 등 숱한 사건과 사연의 연속이었으나 아직도 불안한 현실은 사라져버린 꽃다운 청춘을 그냥 어둠 속으로 묻혀버리게 했다. 세월 속에 파묻힌 산천은 옛 그대로 보일지 모르나 사람은 옛사람이 아닐 만큼 늙어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을 언제나 쉼 없이 흐르게 마련이다. 한스럽고 안타까웠던 일들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누그러진다. 불안과 초조, 피로 얼룩진 시련이 너무나 엄청나서 말문이 막힐 뿐 세월은 무정하게 가기 마련이다.

지난 세월을 탓해서 무엇하겠는가? 세월은 듣지도, 보이지도 않은 채 그냥 그대로 흘러갈 뿐 매정하다. 세월은 가고 인정만 남는다고 했던가? 그래서 해질녘에 건질 것은 인간의 따뜻함과 정겨움 뿐이란 말인가. 세월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 기대하지만 세월같이 냉엄한 시간의 흐름을 고착할 뿐이다.

누더기 같이 얼룩진 한 해가 거의 가버린 지금 이 추운 겨울에 우리는 서로가 부르고 찾으며 도와가면서 얼어붙은 이 땅의 이웃들은 추위를 잠시 잊고 지낸다. 이제 가는 것과 남아있는 것과의 구분을 위해 높고 낮은 곳에서 희망의 종이 울릴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의 미련을 떨치기 위하여 종은 거듭거듭 울어댈 것이니- 어젯날 시작을 알리던 그 청아한 소리의 종소리는 겨울 들판의 우리를 부르고 망각이나 착각같은 어둠에서 우리들을 일깨우고, 다시 기다리며 사는 법을 깨우쳐 주기도 할 것이다.

이제 병신년의 묵은 마음과 먼지를 걷어내고, 미움을 사랑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서 정유년을 맞이하자. 메모할 여백도 많고 보기도 좋은 달력을 여러개 얻어야 할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