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자선원장 · 전북노숙인복지시설협회장

성산 김 영 주(도영)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천하의 초능력자라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힘들다. 무슨 일이든지 혼자 해결하고 홀로 마음먹은 대로 살아 갈 수만 있다면 무슨 걱정이겠는가? 자연도 마찬가지이다. 무언가 도움 없이는 한순간도 움직일 수가 없다. 밤하늘의 별도, 깊은 산중의 한그루 나무도, 아름답게 피어있는 정원의 꽃도, 모든 사람의 추앙을 받고 있는 성현들도, 구슬땀 흘리며 땅을 일구는 농부도 누구의 은혜 없이는 한 순간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혼자 잘나서 세상에 나온 것처럼 자행자지하며 으스대고 남을 무시하고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는 아집(我執)의 세상을 살아가는 무리들이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사회를 망치고 있다.

필자는 「은혜」라는 말을 좋아한다. 은혜는 나보다도 너를 생각하게 하는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은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구분해 보면 4가지로 압축된다. 천지(天地)의 은혜, 부모(父母)의 은혜, 동포(同胞)의 은혜, 법률(法律)의 은혜이다.

첫째는 천지의 은혜이다. 천지가 없다면 인간은 누구도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다. 하늘의 대기 가운데 공기가 있어서 우리가 호흡을 하고 살아갈 수가 있으며, 땅의 바탕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집을 짓고 곡식을 경작하며 살아가게 된다. 해와 달의 밝음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분별하여 볼 수 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며 이슬이 내려 만물이 자라게 되고 그 산물로서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이처럼 천지의 은혜는 한량이 없다. 이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가 쉽다. 또한 천지는 무위이화(無爲而化) 자동적으로 이 세상에 밝고, 정성스럽고, 공정하고, 순리자연(順理自然)하고, 광대무량(廣大無量)하고, 영원불멸(永遠不滅)하고, 길흉(吉凶)이 없고, 응용(應用)에 무념(無念)하게 운행하고 있다. 밝음은 명확하게 아는 것을 의미한다. 콩 심으면 콩을, 팥을 심으면 팥을, 좋은 일을 하면 즐거움을, 공을 들이면 들인 만큼 결과를 얻게 하는 것이다. 이는 희노애락(喜怒哀樂)에 치우치는 인간의 정(情)은 다르다. 정성스럽다는 것은 처음과 끝이 한결같음을 말한다. 지구가 한순간도 머뭇거리거나 쉬지 않고 자전과 공전을 진행하고, 밤과 낮을 교차시키며 사계절을 순환시킨다. 공정한다는 것은 멀고 가깝고 친하고 친하지 않고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움도 관계없이 공정하고 평등하게 작용한다. 순리자연하다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으로 작용함을 말한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태양을 중심으로 혹성들이 일정한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하고, 일체 만물에게는 생노병사(生老病死)로 움직이게 한다. 광대무량하다 것은 천지 자체가 그 범위와 크기가 끝이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국한이 없이 크고 넓어서 무엇이나 다 덮어주고 실어주며 감싸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다. 영원불멸하다 함은 부분적으로는 생(生) 멸(滅) 있으나 순환의 입장에서는 생멸이 없다는 것이다. 길흉이 없다는 것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길흉화복의 가치가 있으나 천지는 음양(陰陽)의 도(道)를 따라 자동적으로 공정무사(公正無私)하게 순환할 뿐 길흉에 관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응용에 무념한다는 것은 천지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게 은혜를 주어 살게 하는 것뿐이지 그 생명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부모의 은혜이다. 인간이란 부모의 몸을 빌리지 않으면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없으며, 또 태어난 뒤에도 성장할 때까지 부모의 사랑과 보호가 없다면 무자력한 어린 몸으로 생존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무슨 일이나 다 할 수 있는 몸을 낳아주고, 온갖 사랑과 수고를 다해 자력을 얻도록 까지 양육하고 보호해 주며, 사람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도록 지도하여 주신 은혜야 말로 절대적인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고 깊다고 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공통된 생각이다.

셋째는 동포의 은혜이다. 동포는 같은 포태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생명체를 의미한다. 인간사회는 끊임없는 갈등·대립·투쟁의 연속처럼 보일 경우가 많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는 물론, 단체, 사회, 국가, 민족, 종교, 사상 등 어디를 살펴보아도 상호 간에 대립과 투쟁이 끊이지 않는 치열한 각축장을 이룬다. 그리하여 약육강식·적자생존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투쟁의 장으로 보이는 것이다. 인간뿐만이 아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벌레나 새 한 마리까지도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싸움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모든 동포는 하나의 그물망처럼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서로의 생명을 존속케 해주는 은혜의 관계로 얽혀 있다. 특히 나의 입장에서 볼 때 모든 이웃은 물론 짐승과 풀과 나무까지도 나의 생존유지에 없어서는 살지 못할 은혜로 맺어져 있다. 만일 그들의 도움이 없이, 그들의 의지가 없이, 그들의 공급이 없이 살 수 있겠는가? 동포 간의 경쟁·갈등·대립·투쟁의 관계는 일시적이고 부분적일 뿐이다. 영원한 입장에서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생존의 은혜 관계이다.

넷째, 법률의 은혜이다. 법률에 의해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가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평화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은혜를 말한다. 여기서 법률이라는 것은 국가에서 제정한 법률만이 아니라 인간에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모든 올바른 규범·예의·윤리·우주의 운행질서·인간의 양심까지를 포함한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유지되어 왔던 것은 무엇보다도 인류가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람이 사는 바른 길이 무엇이며,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고 지켜왔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를 따라 성현들이 출현하여 종교와 도덕을 통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을 모색해 왔으며, 인간들은 지혜를 모아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풍속과 제도와 법규를 만들어 왔다. 만약 이러한 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우주에 별들의 질서가 없다면 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부딪혀 파괴되고 말 것이며, 인간의 생활에 법률이 없었다면 야생동물처럼 본능대로 살아갔을 것이고 예절이 무너져 불화와 파탄만을 가져와 사회는 암흑사회로 변했을 것이다.

요즘 나라의 꼴이 엉망진창이다. 서로 간에 대립과 투쟁이 난무하다. 각자의 구성원들이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은혜의 이치를 깨달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서로 상생상화(相生相和)하는 평화의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