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함해국 대표

유은미

최근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가 많은 이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으며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초임 박차오름판사는 기존 이들과의 다른 행동으로 철없는 젊은 혈기로 치부되며 무사안일주의가 가득한 조직에서 의욕과다인 불편함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주인공이 관행을 역행하며 ‘원래 그런 거야’는 없다는 신념과 약자의 사연에 귀 기울이며 사건을 공정하게 판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난 주 방영된 에피소드는 요즘 사회적 고민을 가지고 있는 직장 내 성희롱 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인턴사원에게 부장이 던지는 성희롱은 장난과 재미로 포장되고 이의를 제기하는 인턴사원은 사회성이 없고 예민한 것으로 치부되어 조직에 적응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는 게 일상인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 동료 역시 쉽게 ‘나쁘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묵인과 가해자에 대한 동조가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지키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친한 여성들의 모임이나 회식자리에 가보면 직장 내 성희롱이 무용담처럼 흘러나오고 가해자에 대한 뒷담화와 공감으로 불편함을 표현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보편적이다.

이러한 사회현상과 맞물려 최근 발의한 우리지역 이춘석 의원의 법률개정안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기존 법률에 표현되는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을 모욕감으로 대체하는 개정안이다.

개정 제안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치’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을 뜻하며, 이는 행위자의 잘못된 행위를 전제하고 있다.

현행법은 통신매체를 이용하여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하거나 카메라 등을 이용하여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촬영 등을 한 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 사전적 의미만을 놓고 본다면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피해자가 아닌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가 느끼는 것이 마땅함에도 그 단어 자체가 내포하는 의미로 인해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성범죄 피해자는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며 피해자의 적절한 사후 대응을 저해하는 방어기제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이에 피해자의 잘못을 상정하는 ‘수치심’이라는 용어를 ‘모욕감’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최근 드라마와 법률개정안을 놓고 보면 기존 우리의 생각과 시선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어떤 사유가 되었던지 간에 모든 기준은 피해자를 두고 판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도 모르게 관행에 젖어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의 정도를 우리가 결정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작다고 생각하는 피해자의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판단 할 수 없다. 또한 드라마에서처럼 가해자 가족 역시 관습으로 인한 피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오류의 축적은 잘못된 경험으로 인해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지 못하고, 복도를 지나갈 때 공포감을 느끼고, 저녁 회식을 기피하는 우리 사회 여성들의 막연한 공포를 만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별 거 아닌’ 농담들과 터치들이 공포감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던 답안지일 것이다.

불편함이 사회를 바꾸고 예민함이 관습을 바꿀 수 도 있다. 누군가 이러한 불편함과 이의를 제기했을 때 외면하지 않고 공감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 지역에서는 공직 또는 민간사회에서 크게 이슈화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아직까지는 없다. 이것은 지금껏 건전한 직장문화가 정착된 것인지 아직도 불편함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조직문화의 문제인지는 우리 스스로가 되짚어 봐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의 판결문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직장인에게 해고는 죽음이라는 말이 있다. 그 가족들이 받는 고통 역시 심각하다. 하지만 성희롱 피해자가 받는 고통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권력을 이용한 지속적인 성희롱은 사람의 자존감을 망가뜨린다. 마음을 망가뜨리고 직장을 지옥으로 만든다.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을 피해자들과 절대 같은 직장 내에 둘 수 없다. 게다가 가해자의 고통과 피해자의 고통은 같은 저울로도 잴 수 없다. 가해자의 고통은 스스로 져야할 책임으로 인해 상쇄된다.’

‘어떠한 저울로 재 봐도 가해자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