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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복순 윤약국약사

야마모토(山本)상이 메일을 보내왔다. 내가 보낸 것에 대한 답신이다. 그녀는 바쁜 중에도 답장을 바로 보낸다. 내가 일본어가 짧아 어법과 철자가 맞지 않아 읽기가 불편할 텐데.

그녀는 한일여성친선협회 전북지부가 사이타마 현에 갔을 때 만난 사람이다. 초청자가 아니어서 늦게야 합류했기에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지막 날 같이 온천욕을 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나왔는데 그녀도 나와 있었다.

나와 동갑이고 한국인이라는 것도 알았다. 제일교포와 결혼해서 일본에서 살고 있다. 겨우 몇 개 아는 단어로 일본인과 소통을 하려니 답답했는데, 우리말로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으니 행복했다. 그 때 그녀의 메일주소를 받았다.

돌아와서 고마웠다는, 초청해 3박4일 동안 민박을 시켜주고 여행을 같이 한 하사가와 노부애상에게도 안부 전해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컴퓨터 자판에서 일본어를 어떻게 쓰는 줄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되지 않아 한글로 보냈다. 두세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첫사랑만큼은 아니지만 날마다 설렘을 가지고 확인을 했다. 무엇이든 처음은 불안과 기대감이 있기 마련이다. 외국인과의 메일은 처음이고 유일하다. 지쳐갈 무렵 한글로 메일을 보내왔다. 반가움에 바로 메일을 보내려다 한글로 썼기에 답신이 늦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어로 보내야할 것 같은데 실력이 되지 않으니 차일피일 미뤄졌다.

자판에서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어디서 어떻게 찾는 줄도 모르는 컴맹이다. 내 컴퓨터 실력은 겨우 처방전을 입력해 심사평가원에 보내고, 알고 싶은 것을 찾아보고, 이메일을 보내는 정도다.

컴퓨터 실력도 형편없지만 일본어 실력은 독학으로 일 년 남짓했으니 그 실력이 오죽하랴. 두어 달이 지난 후 약 사러 온 학생의 도움으로 자판에서 일본어 입력하는 법을 간신히 배웠다. 열 줄 남짓의 글을 보내려면 두 시간 이상 공을 들여야 한다.

철자가 틀릴까 단어를 찾고, 문장을 만들면서 조사는 뭐를 부쳐야 하고 동사의 어미는 어떻게 써야하나 머리를 쥐어짜고, 단어를 몰라 책을 다 뒤져 단어를 알아내고,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으면 한자로 쓰고, 그것도 안 되면 그냥 한글로 쓰기도 한다. 동사의 과거형이나 완료형 등을 몰라 문장이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또 동사마다 부정형이 달라 부정에 부정을 해서 긍정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일본어는 자판에서 쭉 쓰는 게 아니고 한 자 한 자 써야하니 많은 시간이 걸리고 끈기가 필요하다. 내가 한글로 메일을 보내면 야마모토상도 한글로 쓰려면 나와 똑같이 시간이 걸리겠다는 것을 일본어로 써 보고서야 알았다.

그래서 엉터리일망정 일본어로 쓰기로 했다. 떠듬떠듬 메일을 보내는 것은 그녀와 소식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독학으로 일본어를 하다 보니 구속력이 없어 자꾸만 나태해지려 한다. 이 끈이라도 놓지 않아야 한 번이라도 책을 더 쳐다보고 말이라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다.

처음엔 책에 나와 있는 그대로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십니까? 나도 변함없이 잘 지냅니다.’ 이렇게 썼다. 그렇다고 딸랑 세 줄 옮겨 적었는데 이것만 보낼 수는 없어 책을 이리저리 뒤져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내일도 좋겠죠? 봄이에요.’ 이런 영혼 없는 글을 써서 보냈다.

다음 날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어보니 “일본어 시작 하셨네요. 대단합니다. 멋져요. 응원 할께요.” 등등 칭찬일색의 글을 일본어로 보내왔다.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용기 내었다는 점에 나에게 박수를 쳤다. 그녀의 글을 읽기 위해 단어를 찾고 그녀가 보내준 글이기에 오래 기억하고 싶어 문장을 외우려고 노력한다.

지난 1월에는 일본 북해도에 갔었는데 전화번호를 몰라 연락도 못하고 왔다고 메일을 보냈다. 휴대폰번호를 적고, 자기의 일상을 쓰고는 내가 보낸 메일의 잘못된 문장을 고쳐주고, 적절한 단어로 바꿔 고급 문장으로 알려줬다. 이렇게 그녀는 나의 일본어 선생이 되었다. 선생님한테 잘 보이고 싶은데 실력은 영 늘지가 않는다.

우리 아파트에 요코라는 일본인이 살고 있다. 그녀에게 부탁해 메일을 써 달라고 할까도 몇 번 생각했다. 내 글이 초등학교 1학년 3월 한 달 배운 실력이라서 야마모토상이 읽을 맛이 날 것 같지 않아서다. 문장력이 짧으면 짧은 대로 내가 쓰는 것이 나을지, 요코에게 부탁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가족여행을 부산으로 다녀왔다고, 가족은 남편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7명 등을 적었는데 며느리와 사위는 일본어로 뭔지 몰라 한글로 적었다. 며느리는 요메(よめ), 사위는 무코(むこ)라고 적어 보내왔다. 이렇게 배운다.

그녀의 고향이 부산이라며 가고 싶은 마음이 울컥 일었다고, 일 때문에 못 가고, 5월엔 연휴가 있어 1박2일 정도 여행 다녀오는 걸로 대신해야겠다고, 외국에서 겪는 고향의 그리움을 적어 보내왔다.

내가 일본어로 메일을 보내니 그녀는 일단 컴퓨터상에서 쓰기가 쉬우니까 바로 답신을 보내준다. 내 수준에 맞게 또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들로 글을 쓰는 것 같다. 메일을 받으면 겁부터 나는 게 아니라 아는 단어가 군데군데 있어 대충 맞춰 읽어나간다. 그리고 다시 종이에 적어 가면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 정독을 한다.

일본어를 못하지만 메일을 보내기위해 문장을 만드는 것은 재미있다. 그녀의 글을 읽어내는 것은 더 재미있다. 메일을 주고받는 일본인 친구가 있다고 자랑도 한다. 이만하면 메일하기 성공이지 않을까 싶다. 삶에 또 하나의 재미를 만들어 준 야마모토상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