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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백

윤복순 윤약국약사

동생이 스페인 여행길에 OOO 핸드백을 사왔다. 뭐 하러 샀냐고 야단치다 잘 쓸게 하며 받았다. 회갑을 맞아 여고 동창 몇이서 간 여행이다. 용돈이라도 좀 줄까 하다 그냥 말았다. 돈을 주면 분명히 뭔가를 사 올 것 같아 주지 않았는데 그래도 사 와서 내 손만 부끄럽게 되었다.

작년 가을 포도농사를 마치고 동생 내외를 데리고 베트남 다낭에 다녀왔다. 회갑 선물이라며 모든 경비를 내가 다 썼더니 고마움의 표신가 보다. 그냥 받으면 어쩐다고 청간을 떨기는.

십오육 년 전이다. 동네 아주머니가 지금 유행하는 조그만 핸드백을 들고 왔다. 예쁘다고 하니 미국 딸네 집에 갔다 길거리에서 산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백이 흔치 않았다. 장지갑, 휴대폰, 통장, 립스틱 정도 간단하게 넣어 다닐 만한 것으로 동네에서 밥 먹으러 나갈 때나 은행갈 때 들고 다니면 안성맞춤일 크기였다.

다음 해 아주머니가 미국 갔다 오면서 그런류의 핸드백을 사다 줬다. 이런 선물을 받을 만큼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망설이는 내게 오히려 “길거리에서 산 싼 것이라서?” 해 나를 당황하게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어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내가 들고 다니기에는 과분하게 예뻤다. 사랑땜도 안하고 바로 가끔씩 컴퓨터에 대해 물어보고 말로 안 되면 직접 와서 해주는 젊은 친구에게 그 백을 주었다. 그녀도 “받아도 돼요?” 하며 눈을 똥그랗게 떴다. 나도 선물 받았는데 나보다는 자기가 훨씬 잘 어울릴 것 같아 주는 거라고 했다.

며칠 전 그녀가 조그맣고 예쁘장한 백을 들고 왔다. 좋다고 하니 “약사님이 주신 거예요.”한다. 나는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이렇게 예쁜 것을 내가 왜 줬을까 하니 그렇게 욕심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해 함께 웃었다.

그녀에게 백을 주고 난 뒤 나는 몇 개 더 선물 받았다. 공주 언니가 농속을 정리했다며 아끼느라 모셔두기만 했던 메이커 것 하나와 출근 할 때 들고 다니기 좋은 크기의 가방, 두 개를 주었다. 내가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내 나이에 딱 맞는다고 부러워한다. 약국에 잘 놀러 오시는 할머니는 그런 가방 당신도 하나 얻어 달라고 한다.

작년에는 작은 언니가 또 세 개나 주었다. 한 달 내내 보충수업 하고 받은 돈으로 산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출근할 일도 없고 갖춰 입고 나갈 모임도 없으니 나보고 쓰란다. 두 개는 며느리가 손수 뜨게 바늘로 만든 것인데 여간 고급스럽지 않다. 나는 촌스럽고 세련되지 않아 어울리지 않는다. 누구에게 어울릴까 주인을 찾고 있다.

삼 년 전 일본 사이타마현에 갔을 때 정말 대접을 잘 받고 왔다. 그녀들이 이번 5월에 전주에 온다. 한일여성 친선협회 전북지부에서 초대했다. 여섯 명이 오는데 다 만들 수는 없고 직접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켜주고 숙식을 제공해준 론짱과 김치를 같이 담갔던 도미에상에게 하나씩 주려고 포장을 해 놓았다.

일본 사람들은 수작업으로 만든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때도 털실로 모자를 만들어 갔는데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특히 론짱의 시어머니께서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계속 쓰고 계셨었다.

7~8년 전 동네 아주머니가 털실, 가는 뜨개실, 가방 만드는 실 등을 세 보따리나 주었다. 털실은 틈틈이 모자를 만들어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작년 겨울에도 다섯 개나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가는 실로는 스카프를 만든다. 신세진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지금까지 아마 이십 여장 만든 것 같다.

가방은 만들지 몰라 손끝 야무져 잘 만드는 사람에게 실을 다 줬다. 며칠 전 실 보따리를 정리하는데 굵은 실이 두 타래 나온다. 소용 닿는 사람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분홍과 흰색이 섞인 예쁜 보카시 실이다. 이 봄에 아주 잘 어울리는 색상이다.

K선생이 혼자 밥 먹으면 대충 먹는다고 당신 집으로 밥 먹으러 오라고 한다. 그렇잖아도 나도 혼자 밥 먹기 싫어 망설이고 있었는데. 선생님 집에서 내 실과 같은 걸로 만든 가방을 보았다. 당신이 만든 것이란다. 끈도 안감도 직접 했단다.

그녀의 도움으로 가방 만들기에 돌입했다. 모두들 색이 예쁘다고 야단이다. 실이 두꺼워 짜기가 쉽지 않다. 안경을 벗고 떠듬떠듬 하다 보니 약국에 오는 손님들이 한 마디씩 한다. 손을 가만두지 않는다는 둥, 그러다가 어깨 빠진다는 둥, 눈 좀 아끼라는 둥, 모두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걱정들이다. 이웃들의 참견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색이 너무 고와 이 가방은 마유미에게 줘야겠다. 11월 초 일본 가나자와에 간다. 가나다라 클럽의 제일 막내인 그녀는 작년 전주에서 정이 많이 든 친구다. 잘 어울릴 것 같다. 누군가에 몫 지워 만들면 더 재미있다. 그녀가 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더 예쁘다.

가방을 만들며 행복한데 동생이 생각지도 못한 핸드백을 사 왔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거든,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핸드백 선물 받고 싶어서 가방 만들고 준 것은 아닌데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

요즘 열심히 일하고 꼼꼼하게 절약해 모은 돈을 나에게 투자하는 소확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걸 실현하는 길은 평소 갖고 싶었던 걸 쇼핑해 나에게 선물하는 것과 여행이나 레저를 통해 새로움을 경험해 보는 것이란다.

나는 요즘 쇼핑도 여행이나 레저도 아닌 핸드백을 만들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만들려고 벌써 몇 번을 뜯었는지 모른다. 이런 내 마음을 한 땀 한 땀 다 담을 생각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 보다 행복하다고 했던가. 선물도 그런 것 같다. 나에게 선물하는 것보다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선물한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생각도 못한 또 다른 사람이 나에게 선물을 하는. 그때의 행복은 소확행이 아니라 대확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