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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윤복순 약사

기다리던 그들이 전주에 왔다. 2016년에 우리를 초대했던 일본 사이타마현의 론짱 일행 여섯 명이다. 2박3일 일정인데 첫날은 참석하지 못했다.

둘째 날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약속시간보다 한참 앞서 그들의 숙소에 도착했다. 그들이 아침식사를 하러 나가고 없다. 혼자서 주변 구경에 나섰다. 관광객이 도착하지 않은 한옥마을은 한가하고 고요하다.

시간에 맞춰 숙소로 돌아왔다. 너른 마당에 앉아 위풍당당한 고택을 바라보는 맛도 바람도 풍경소리도 “참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이때 대문 밖이 소란했다. 마중을 나갔다.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도미에상”하고 불러 그때서야 서로 보듬고 떨어질 줄 몰랐다.

일본인이 묵은 100년이 넘은 한옥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집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기능성에 그들이 스고이 스고이(すごい, 훌륭하다 대단하다)를 외치며 감탄을 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고창 선운사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한일여성친선협회 한국 회장, 주한 일본대사 부인, 라일락회(한국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의 모임) 회장단, 아시아 담당 국장 등 서울에서 오신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전북국제교류센터에서 하는 전북테마답사의 날이다. 이 행사에 맞춰 일본인도 서울 손님도 초청한 것이다.

한국 회장님은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인데 버스 안에서 사회를 볼 정도로 열정이 대단하시다.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 예쁜 목걸이인데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최종 승자가 되어 나도 받았다. 윗사람은 이렇게 준비하고 베풀어 분위기를 띄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문화해설사 덕분에 선운사 대웅보전에 있는 삼존불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오후엔 한옥마을을 구경했다. 그곳은 모두 사람들이 살고 있어 그 집에서 숙박을 하지 않으면 들어가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문화해설사와 같이 한 집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나무들이 300살이 넘었단다. 향나무, 석류나무, 특히 감나무는 원가지들은 모두 죽고 새 순이 나서 자라고 있는데 그 가지에서 감이 열린다고 한다. 이 나무들이 한옥마을의 역사를 알려준다. 저녁엔 장구를 치며 아리랑을, 북장단에 맞춰 사철가를 그들에게 보여주는 시간도 가졌다. 일본인은 기모노를 입고 우리는 한복을 입었다. 둘이서 셋이서 모두 같이 어울려 사진을 찍고 찍어주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비빔밥 공연도 했다. 50~60명의 밥을 큰 솥에 놓고 그 위에 검은 깨로 한일여성친선협회라고 썼다. 솥의 둘레에는 콩나물, 쇠고기육회, 미나리, 애호박, 표고버섯, 도라지, 고사리 등 20여 가지의 재료가 가지런히 둥그렇게 놓여졌다. 어느 미술작품이 이보다 더 색이 고울까. 물감으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다. 이것이 유명한 전주비빔밥이다. 큰 주걱으로 한국대표들과 일본대표들이 같이 비볐다. 양국의 관계는 요즘 수교 이래 최악이지만 우리는 화기애애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치고 손을 잡고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한줄기 가느다란 맑은 물이 흙탕물을 정화하듯 민간의 작은 모임이 양국의 관계를 좋게 할 수 있는 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불고기 전골을 곁들인 비빔밥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우정을 담았다. 그들이 5월의 날씨 좋은 날 선운사의 녹음을, 한옥마을에서의 숙박을, 전주의 비빔밥을, 우리의 환대를 잊을 수 없을 거라며 고마워했다.

나는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일본어책을 매일 읽었다. 사이타마현의 지치부 신사에 갔을 때 유주은행나무를 처음 보았는데 가지에 여인의 젖가슴을 닮은 것이 죽죽 늘어져 있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일본어가 짧아 신사에 갔다고밖에 못했다. 또 아쉬운 것은 서울에서 온 손님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 온 4명과는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소홀해서 미안하다. 언제 다시 만난다는 기약도 없는데.

론짱에겐 손으로 만든 가방을 선물했다. 쪽지 편지를 붙였다. ‘지난번 초대해줘 고맙고 대접 잘 받고 온 것도 고맙다. 특히 무궁화공원을 만들고 일제징용으로 끌려와 사망한 무연고자들의 무덤인 성천원을 만든 론짱의 아버님을 존경한다. 당신과 알고 지낼 수 있어 영광이고 자랑이다. 전주에 온 것 환영하고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썼다. 일본에 다녀와서 쓴 ‘론짱’이란 나의 졸작 수필을 가방 속에 넣어 주었다.

도미에상에게도 직접 만든 파우치 백을 주었다. ‘잘 왔다. 보고 싶었다. 잠깐 만났지만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아서 오랜 친구 같다. 동갑이고 같은 성씨여서 더 반가웠다. 많이 기다렸는데 어머니 제사여서 첫날부터 동행하지 못해 미안하다. 앞으로도 종종 연락하며 지내자’고 썼다.

그들도 선물을 가지고 왔다. 론짱은 여권과 수첩 등 간단한 것들을 넣을 수 있는 크로스백과 과자를, 도미에상은 일본의 작은 도자기와 젤리를 준다. 나를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이 정말 고맙고 기분 한없이 좋다. 나도 그들을 그리며 가방을 만들 때 이만큼 행복했었는데. 이들과의 만남은 오늘이 두 번째인데 어릴 때 소꿉친구처럼 정다움이 느껴지는 것을 왜일까. 론짱의 집에서 세 밤을 자고 직접 해 준 밥을 같이 먹고 그녀의 차를 타고 다니며 여행해서일까. 그들에게서 받은 것에 비해 내가 한 것이 턱없이 부족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내일 당신들이 가는 것을 못 본다고, 언제 또 같이 여행하자고, 건강하자고, 오랫동안 그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 단 하루의 아쉬움, 이산가족의 만남이 이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