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숲교회 담임목사

강 남 웅

90년대 초반 반짝 활동하다가 사라진 가수 양준일이 최근 ‘시간 여행자’란 수식어를 받으며 엄청난 인기와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지나치게 앞서간 탓이었을까, 그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그 시대에 허락받지 못했다. 단지 음악이 하고 싶었지만 한국 사회에 그가 설 곳은 없었고 결국 몇 곡의 히트곡과 궁금증만을 남긴 채 사라진 진정한 슈가맨…, 그의 조용조용한 회고담 속에는 그 시절 한국사회의 자화상이 모두 담겨있다.

생애 첫 팬 미팅을 위해 입국한 그에게, 팬들은 1991년에 데뷔했지만 2019년에 다시 데뷔한다는 의미로 ‘91·19’라는 숫자가 들어간 지하철 옥외 광고판까지 내걸며 응원했다. 그는 “살면서 투명인간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가 많았다.‘내가 왜 존재하나?’궁금했는데, 대한민국이 나를 받아 주는 따뜻함으로 더 이상 과거가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에게 30년 후의 대한민국은 따뜻한 나라였다.

양준일은 영어 노랫말을 많이 쓰고 춤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공연할 때 무대로 돌이 날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때문에 한국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털어놓기도 했다. 외국사람 분위기를 풍기는 그에게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것이 싫다”고 쏘아붙인 뒤 비자 갱신을 거부했다는 거다. 그가 사회적 차별로 인한 피해자, '혐오'의 희생양으로 풀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례없는 그의 인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30년 전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패션 센스와 ‘가나다라마바사’, ‘리베카’, 등 파격적인 음악이 제 시대를 만났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팬들은 그것들이 매력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양준일의 한결같은 겸손함과 순수함이 팬들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인터넷 기사에는 톱 아이돌 그룹 기사처럼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악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선플이 대부분이다.

‘패거리 문화’에 스트레스를 받는 중장년들이 양준일을 응원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을 당하다가 여전히 백(back)이 없음에도 재조명되는 그에게 희망과 위로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50대에 들어선 그를 응원하는 진짜 이유에 대해 팬들은 “착한 사람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반드시 재평가 받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선한 영향력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지켜보는 일도 가요계의 흥미로운 사례가 될 것 같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손가락질하거나, 아예 견고한 벽을 쌓아버리는 사회, 가혹했던 그 시절 탓에 몸짓과 손짓 하나까지 예사롭지 않았던 가수는 삼십 년이란 시간 동안 묻혀 지내야 했다. 고단한 시절을 온몸으로 겪어낸 뒤에 지금 또한 월세와 일거리를 걱정하며 한국행을 망설였다는 오래된 가수에게, 다행스럽게도 오늘의 우리는 ‘미안하다’며 따뜻한 사과를 한 것이다.

그러나 2019년 말의 대한민국은 모두에게도 따뜻한 나라일까? 여전히 고통스러운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이가 한 둘이 아니리라. 지금 또 다른 양준일이 등장한다면 과연 우리는 선뜻 환영의 불을 켜줄 수 있을까? 인권이 존중되는 자유롭고 글로벌한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나와 다른 이를 험하게 밀쳐내는 마음은 여전한듯하고 생각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는 듯하다. 인터넷과 SNS는 물론, 거리에서도 서로를 향한 삿대질과 욕설의 전쟁이 진행 중 아닌가?

양준일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비행기 안내 방송이 나왔을 때 아내와 함께 기뻐서 박수를 쳤다”고 했다. 또한 “한국에 와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말이 미국인의 입이 아니라 이 땅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이 되기를 바래본다. 양준일 신드롬이 대한민국의 행복을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