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이든 전설상 인물이든 고대 중국의 성군으로 흔히들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을 꼽는다. 아마도 작은 부족연맹체 수준이었겠지만, 요순(堯舜)은 덕과 예로써 세상을 다스려 태평성대를 이뤘다고 한다. 요순시대에 각종 사회제도가 정비됐는데, 특히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 눈에 띈다.
성군 요 임금도 자신의 정치에 오류가 있을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백성들이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는 정치적 불만 표명 및 정책 제안을 할 수 있는 소통 시스템 세 가지를 만들었다. 감간지고(敢諫之鼓) 및 비방지목(誹謗之木), 진선지정(進善之旌)이 그것인데, 어떤 문헌에서는 비방지목을 만든 이가 순 임금이라고 전한다.
감간지고는 궁궐 문 앞에 달아놓은 큰 북을 말한다. 임금의 정치에 불만이 있는 백성은 북을 쳐서 임금에게 자기의 정치적 의사를 전달하는 제도였다. 가히 정치적 직접 소통의 효시라고 하겠다.
비방지목은 대궐 안 다리 입구에 나무 네 개를 엮어 세워놓은 기둥을 뜻한다. 임금의 정치에 불만이 있는 백성은 그 뜻을 기둥에 적을 수 있는 제도다. 당시에 글을 아는 자가 얼마나 있었겠냐만, 백성의 불만을 들으려고 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 하다.
진선지정은 특정 지역에 깃발을 세워놓고 누구든 정책적 발언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감간지고와 비방지목은 정치적 불만을 토로하는 시스템이다. 이에 반해 진선지정은 바람직한 정책을 제안하는 장이었으니, 나름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하겠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서 성인의 반열에 오른 요순의 이 세 가지 소통 시스템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보인다. 이는 민심이 천심이라며 언로를 보장해야 한다는 고대 중국의 이상적인 정치사상의 근간이 됐다. 실제로 국가의 흥망성쇠는 백성과 국가권력의 소통에 좌우됐음을 중국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요순 이후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쇠퇴했던 언론의 자유는 한나라 5대 황제로서 성군의 표상으로 꼽히는 효문제에 의해 다시 만개했다. 효문제는 비방과 요언을 벌하는 법 때문에 언로가 열리지 못해 황제가 자신의 과오를 제대로 듣지 못함을 지적했다. 이 법을 폐지함으로써 어질고 뛰어난 인재들을 발탁하여 전한(前漢)의 기틀을 굳건하게 다졌다.
우리 조선시대 세종도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고 노력했다. 비록 매우 제한적으로 운영됐고 북을 두드린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묻기도 했던 신문고 제도를 위시하여 백성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또한 자신에 대한 비방 및 허위사실 유포에도 관대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언로를 열었다.
전제군주제 아래서도 언로의 보장은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하물며 헌법으로 언론·출판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절대적 가치는 두 말한 나위도 없다. 더구나 국내외 질서가 요동치는 현실에서 사실과 그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대중과 공유하면서 바람직한 방향을 설정하는데 언론의 자유가 요구된다.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에 대한 외국의 평가와 별개로 지금 우리나라에는 언론의 자유가 넘쳐나고 있다. 언론사는 물론이고 개인들도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21세기판 감간지고와 비방지목, 진선지정이 편재하면서 넘쳐흐르는 세상이 대한민국이다.
역사의 성군들이 언로를 열고 소통을 장려한 것은 세상을 위해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가 억압됨으로 인한 폐단을 고치기 위함이었다. 우리 헌법에서 언론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한 이유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것이다. 결코 개인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주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언론의 자유 또한 책임의 잣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늘날은 인터넷을 비롯하여 생각을 다수에게 유포하는 정보통신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삿되고 그릇된 말 한 마디 글 한 줄이 삽시간에 퍼져나가 힘들게 구축한 사회의 신뢰를 순식간에 파괴한다.
마땅히 언론의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특히 공신력을 내세워 불특정 다수에게 대량의 정보를 유통하는 언론사의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허위·왜곡·과장·선정 보도 행위에 대하여는 혹독한 처벌을 해야 한다. 그 폐해가 실로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생산자와 유통자가 재화 및 서비스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언론의 공익성 때문에 보도행위에 대한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해 예외가 적용되겠지만, 언론사 역시 이 대원칙을 따라야 한다. 언론사에게만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인 미디어 환경이 가능해지고 그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현실에서, 개인의 언론과 유사한 행위에 대하여도 일정 수준 사회적 책임을 부과해야 할 때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특정인을 부당한 근거로 비방함은 개인의 기본권 보장의 취지를 뛰어넘은 범죄행위다. 큰 권리에는 반드시 큰 책임이 따라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원칙이다.
북을 치고, 기둥을 글을 쓰며, 깃발 아래서 소신을 밝힘으로써 사회를 진보시키는 언론의 자유는 참으로 소중한 권리다. 하지만 이 권리를 내세워 삿되고 그릇된 담론을 유포하는 행위는 누구든지 이유를 막론하고 처벌함이 마땅하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우리 모두가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성찰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