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에 큰 눈이 내리면서 인근에 위치한

우리 단지에 거센 눈보라가 몰려온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폭풍을 동반하고

눈보라는 전의를 상실한 야수처럼

걷잡을 수 없는 표정으로 평화로운 단지를

할퀴고 지나간다

우우, 길이 묻히고 들이 잠기고

장승처럼 들어선 아파트 건물마저 뒤흔들며

내리붓는 눈보라는 진정을 제어하지 못한

성난 주군처럼 점령군의 위용을 자랑한다

도로를 질주하던 차들은 줄지어 서서

눈길에 갇혀 백색 깃발을 나부끼고 있다

키 큰 소나무들은 처붓는 포탄에 무방비다

아무도 이 눈보라를 이길 사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