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예총 익산시회장

김영규

싸늘한 11월에 들어서면서 40년 전의 그 악몽이 되살아난다. 이리역 폭발사고가 그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피해자이면서 근접에 위치한 고교 교사로 피해학생들과의 사투는 40년이 지난 오늘에도 생생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29세였던 그날이 69세가 되어 ‘이리역 폭발사고 40주기 추모행사’ 추진위원장으로 변신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 이야기는 다다음주로 미루고 오늘은 코앞에 닥친 수능(11월16일) 이야기를 해본다. 그 당시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라 부르지 않고 대학입학 예비고사라 불렀다. 대학입학 본고사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비고사를 속어로는 그 첫음절인 로마글자를 따서 ‘Y’고사라고도 불렀으며, 예비고사 성적이 대학입학에 끼치는 영향이 일부대학을 제외하고는 없거나 매우 작아 미미했다고 본다. 그래도 예비고사를 치르고 나면 한 고비는 넘겼다 싶어서 마음 한구석이 후련해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불안이 뒤섞여 대학입학 여부가 확실하게 가려질 때까지는 그 불안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곤 했다.

서양처럼 학년도가 가을에 시작, 대학입학 여부가 늦은 봄이나 여름에 결정된다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늦은 봄이나 여름의 싱그러움이 늦가을과 겨울의 을씨년스러움보다는 우리 입시생의 불안한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오늘날 우리 한국인의 개인사에서 대학입시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따져보면 어느 사회에서나 교육은 계층이동의 경로로, 또한 그 반대는 계층 고착의 경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나라처럼 결정적인 사회는 드물 것이다. 한국은 10대 말에 특정한 방식으로 측정된 지적 성취에 따라 한 사람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 며칠 후에 우리가 치를 수능의 점수인 것이다. 그 수능점수가 중요한 기준이 돼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되거나 못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40년 전 처음 치른 예비고사가 지금 수능과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다.

수능점수에는 우리가 그간 쏟은 노력뿐만 아니라 수능 당일 몸 상태, 마음가짐, 우연적 요소도 많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우연적 요소보다 우리의 수능점수에 더 많이 반영된 것은 우리들이 속한 사회계급일 것이다.

환경이 양호하고 부유한 집 출신이라면 노력에 견주어 수능점수가 높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지 못한 집 출신이라면 노력에 견주어 수능점수가 낮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만 해도 너무나 큰 불공평이니 소위 명문대학들은 부유한 집 출신 학생들을 뽑을 가능성이 커지고, 이름이 덜 알려진 대학들은 부유하지 못한 집 출신학생들을 뽑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여진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명문대학들은 거기에서 탐욕이 멈추어지지 않고, 수시모집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혹 수능에서 실패할 수 있을 부유한 집 출신 학생들 또는 수학능력이 더 있다고 자신들이 판단한 학생들을 뽑는다. 그들은 과학고나 외국어고 같은 특목고 학생들이 수능에서 조금 실패할 경우를 상정해 그 학생들을 낚아갈 방법을 마련하여 놓은 것이다. 이것은 정시에서조차도 마찬가지이고, 일부 사립대학은 수능점수 및 논술성적이나 내신등급이 높은 일반고 학생들 대신에 그것들이 낮은 특목고 학생들을 뽑아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특목고 학생들은 대체로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이라 전제했을 때 우리나라의 계급은 고스란히 상속되는 것이다.

‘학벌’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처럼 꼭 들어맞는 사회는 매우 드물 것이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명문 공룡대학에 들어가 ‘벌’에 속하게 될 것이지만 대다수는 거기에서 제외되어 ‘벌’에 소외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수능!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지금까지 쌓아온 실력을 실전에서 100% 발휘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컨디션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