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자선원장 · 전북노숙인복지시설협회장

김영주

봄의 계절에는 사방에 온통 꽃들이 만발한다. 오며 가며 그 꽃들을 볼 때에는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그래서 필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는 이 봄에 ‘모두가 은혜입니다’라는 주제를 마음속에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주제를 정한다고 하는 것은 그 주제를 깊이 생활 속에서 실천을 하라는 의미이다.

어느 한 때 미국에 살았던 어떤 분께서 미국에 있을 때 경험했던 이야기다. 하루는 회의가 있어 해안도로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부지런히 달렸다. 차로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아마 서울-부산 정도의 거리가 되나본다. 달리다보니 조금 과속을 했다.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고 뒤 따라 오며 정차를 시켰다. 그 분은 차를 대고 면허증을 꺼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 휘날리는 연만해 보이신 경찰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이 경찰 할아버지는 만면에 여유 있는 웃음을 띠우며 면허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자를 벗더니 바다를 가리킨다. 바다를 보니 물개들이 바위에 올라 있고 파도가 부서지며 석양에 물들어 가는 평화로운 모습이 보였다. 그 경찰 할아버지께서 조용히 한마디 하셨다.

“저 모습이 아름답지 않아요?”

그 분은 어느새 경찰에게 ‘걸렸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사실대로 “매우 아름답네요”하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그 경찰 할아버지가 “빨리 갈수록 이 아름다운 모습이 안보여요”하고 말하면서 또다시 웃고 그냥 갔다. 참, 멋있는 경찰이고, 멋진 단속이었다.

아름다움이란 것도 진리가 주신 은혜다. 그 경찰 할아버지는 우리 주변의 은혜를 발견하는 방법을 일러주신 것이다. 은혜는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면 보인다. 조금만 늦게, 그리고 깊게 보면 모든 것이 은혜인 것을 우리는 왜 그렇게 빠르고 조급하게 살아가는지 되돌아본다.

은혜가 발견이 잘 안되면 조금만 늦추고, 조금만 깊게 주변을 돌아보면 은혜가 보인다. 조금 여유 있게 운전을 하면 미국 서부의 아름다운 해안이 보이듯이 말이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하찮은 칫솔 하나도 은혜이다. 그 칫솔로 인해 이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밥 먹는 수저 하나에도, 벽에 걸린 달력에도, 종일 내 발을 담고 다니는 신발에도 은혜 아님이 없다. 조금만 늦추고, 조금만 주의 깊게 주변을 돌아보면 은혜가 보인다.

4월이 되면 대학에서는 중간고사가 한창이다. 어느 대학의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모든 학생들이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탓인지 교수님이 강의실에 들어서자 전부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이 시험지를 나눠 주자마자 학생들은 자신 있게 문제를 풀어 나갔다. 그런데 마지막 문제는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강의실 안팎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이름을 쓰시오.”

마지막 문제에 자신 있게 정답을 적어낸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문제에 화가 난 한 학생이 시험을 마친 후에 마지막 문제가 점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교수님께 물었다. 그러자 교수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이 사랑과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지. 최소한 주변 사람들과 따스한 미소와 감사의 인사 정도는 나눠야 세상이 밝아지지 않겠니?”

관심에 대한 이야기였다. 강의실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결국 함께 살아가는 가족으로 바라다보면 다 내 어머니 같고 누나 같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알든 모르든 결국 어찌 보면 다 내 형제 같다. 괜한 피해의식이나 내 가족과 아는 사람만 생각하는 좁은 울에서 이제 우리는 벗어나야한다. 은혜는 ‘관심’에서 비롯된다. ‘관심’으로부터 발견되고, ‘관심’으로부터 은혜가 시작된다. 또 ‘관심’으로부터 은혜가 실천된다. 관심으로 시작된 은혜는 여유 있는 무욕의 작은 실천에서 꽃이 피기 시작 한다.

또 어느 한 분의 이야기다. 그 분은 그리 많지도 않는 봉급에도 통장을 하나 개설했는데 그 통장의 명칭을 ‘하늘통장’이라 이름 지었다. 그 통장의 내역을 보면 매달 자동이체로 빠져 나가는 항복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A운동 2,000원’, ‘B 3,000원’, ‘C대학교 10,000원’, ‘D보육원 10,000원’, ‘E요양원 10,000원’, ‘F사업회 5,000원’, ‘ G 10,000원’, ‘H봉공회 5,000원’, ‘I복지관 3,000원’ 등 그 외에도 몇 군데를 포함하여 11군데가 있었다.

매달 한 군데 당 10,000원을 넘지 않는 후원이지만 ‘아!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 분은 참 부자로 사시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분은 ‘은혜를 실천하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필자는 저절로 가슴이 뭉클했다.

은혜는 여유로운 무욕에서 비롯된다. 여유가 없으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남들과 공유하지 못하고 꽉 움켜쥐고 산다. 가실 때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면서도 어려운 이웃들에게 돈 1천원도 후원을 하지 않는다. 은혜는 작은 관심과 여유로운 무욕의 실천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