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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

하인애

올 해는 여름이 유난히도 길었다. 봄은 소리 없이 와서 언제 떠난 지도 모르게 가더니 여름은 본전을 다 뽑을 생각이었는지 시월 중순이 되도록 여름옷을 입고 살아야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우리 집 마당에는 철모르는 영산홍이 며칠 째 피어있는데 봄에 피는 개나리와 벚꽃조차도 언젠가부터 시절을 모르고 지각을 하다보니 영산홍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그 후로 늦게나마 가을이 오나보다 했는데 나는 오늘 초겨울 패딩을 입었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일주일도 아닌 얼추 사흘 만에 바뀌어버린 이 계절의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와는 지구 반대편 남태평양에 작은 섬나라 투발루가 있다. 머지않아 이 나라는 물속에 잠긴다. 그런데 나라가 물에 잠겨도 국민들은 갈 곳이 없다. 이른바 ‘기후난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질 날이 그들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북극곰의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먼 거리를 헤엄쳐 먹이를 잡아서 먹고 사는 북극곰은 중간에 한 번씩 쉬어 주어야 한다. 그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빙산이다. 그러나 빙산마저 점점 녹아 사라지면서 헤엄치다 지친 북극곰은 그대로 추운 북극의 바다 속에서 짧은 생을 마친다.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는 아마존 숲이 사라져간다. 개인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 지구의 환경쯤은 아주 쉽게 파괴를 해도 자본주의의 철옹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단지, 지구와 공생해야 하는 인간의 양심이 파괴되고 있지만 양심이 없는 집단의 사람들에겐 지구의 살려달라는 외마디 외침조차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지구가 몇 억년에 걸쳐 축적해 놓은 에너지를 불과 이백 년 만에 고갈시키고 있다. 아마도 머지않은 시절에 우리가 지금 머릿속에 품고 있는 꿈과 소망과 또는 고민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 이런 모든 생각들이 전부 사치로 전락되고 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불행한 일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더 이상은 아름다운 풍경이 남아있는 지구를 되돌려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 어린 시절에 정겨웠던 고향의 풍경 속에 남아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아마도 봄에 나왔던 풀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삘기’라는 이름의 풀이 있었다. 길다랗고 얇은 초록빛 잎사귀 속에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뽀얀 속살을 가진 풀이었다. 학교에 오고 가는 길섶에 새초롬하게 숨어있으면 손으로 쏙 뽑아서 입안에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씹어서 먹곤 했었다.

봄이 오면 토끼풀을 뜯어다 꽃반지, 목걸이를 만들었던 아이. 비개인 여름날에 토란 잎사귀 위에 남아 있던 빗방울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잎사귀 가장자리를 고사리 손으로 일일이 접어서 오목하게 만들어 주었던 아이. 추석이 돌아오기 며칠 전부터 새 옷을 선물 받을 기대감에 밤잠을 설치던 아이. 이른 겨울 감나무에 매달린, 한 쪽 볼에 뽀얀 눈이 살포시 얹혀있던 홍시를 보고 감탄하던 아이. 사람이 성장기를 거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는 어린 시절에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던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얻는 감정의 기억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삶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심지는 바로 이 따스한 기억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기억을 물려줄 수 있을까?

지구의 환경이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의식의 변화라고 나는 감히 주장하고 싶다. 만약 인류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의식의 변화가 없이 앞을 향해 달려간다면 지구의 미래는 없다. 지구라는 존재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그 어떤 가치보다 지구를 가장 우선순위에 놓고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지금 가장 필요한 시기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모든 종류의 삶의 조건들은 우리가 지구라는 삶의 터전이 있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그동안 인류가 누려왔던 지구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서 빌린 것이라는 관점의 변화가 없이는 인류의 미래는 지극히 암울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지구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