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사회경제연구소 대표
권 태 홍

벌써 1주년이다. 상상 못했던 큰 변화들이 있었다. 작년 이맘때 기억이 생생하다. 10월 24일 월요일 국회 연설에서 박근혜는 국면전환용 개헌을 제안했다. 그날 저녁 JTBC에서 최순실의 태블릿PC를 보도했다. 역사적인 촛불혁명의 시작이었다. 돌아보면 운명적인 그 무엇이 대한민국 운명의 물길을 크게 돌려놓았다. 그 주 토요일인 10월 29일 청계천에서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 그 1시간 전 청계천 집회장옆 서울파이낸스 건물 앞 정의당 정당연설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느낌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헌법을 유린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는 사퇴해야 한다고 연설했는데 지나던 시민들의 호응이 뜨거웠었다. 잠시 후 첫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남녀노소 각계각층 자발적인 물결이었고 그 규모도 열기도 예상밖이었다. 세계가 놀란 1700만의 촛불은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강력한 무력을 소유한 타락한 권력을 압도하고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냈다. 돌아보면 식민지와 군사독재 시대에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평화적 혁명이었다. 촛불혁명이라는 표현도 세계사적인 고유명사가 될 것 같다. 1,700만이 참여한 평화로운 광장민주주의 정치로 대의정치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국민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가장 뒤떨어진 대의정치와 천박한 독점재벌들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주권선언이기도 했다. 촛불의 요구는 적폐청산과 공정하고 정의로운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모아졌다.

촛불혁명 1주년을 맞아 다시 촛불이 모이기 시작했다. 청와대로 행진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논란에서부터 광화문 촛불과 별도로 여의도 촛불을 밝히는 등 여러 흐름들이 보이지만 적폐청산과 공정하고 정의로운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열망은 다름이 없어 보인다. 지난 1년 동안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어떤 숙제가 남았는가? 오늘 촛불의 역할은 무엇인가?

기존 권력들이 쌓아놓은 적폐를 다 밝히고 그 수장들을 확실히 처벌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명박의 배임적인 자원외교, 국정원 등 국가기구를 불법적으로 동원한 국정농단 등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세월호 진실과 재발방지를 위한 제대로 된 재조사도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백남기농민에 대한 국가폭력 등 국가기구들의 적폐도 낱낱이 밝혀야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신임 대통령의 겸손한 태도와 진솔한 소통은 높은 지지와 기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국회는 촛불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정당들의 행태와 문화는 근시안적이고 당파적이고 지엽적 이해관계와 비생산적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들끼리의 여러 이합집산 흐름을 보면 정체성도 정책차이도 눈앞의 이해관계 앞에서 아무 의미 없는 치장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선거를 앞둔 공학적 이합집산에 대해 국민여론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이다. 대의정치가 혁신되기 위해서는 정치엘리트들을 중심으로 사유화되다시피 한 권력을 국민의 뜻에 따라 구조적으로 혁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선거구제 선출방식의 의회구성방식을 비례대표제 선출방식으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과 불균형은 심각한 상황이다. 4차산업혁명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 원심력이 더 커질 것이다. 재벌과 대기업의 경제독점을 규제하고, 중소기업과 혁신벤처기업의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 중요하다.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획기적으로 높여 노동과 자본의 힘의 균형을 만들어 가는 것도 민주주의를 생활수준에서 정착시키는 사회적 기초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나가는 일을 기본으로 다른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저임금의 최저선을 생활임금 수준까지 끌어 올리는 일,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구조와 차별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차별이 극심한 노동문제의 또 다른 이면인 과잉 자영업 생태계를 사회서비스 부문으로 흡수할 수 있는 일자리 정책이 중장기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정부가 공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1,000만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30만 공공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가는 결정적인 선례가 될 것이다. 전북에서 전주를 제외하고 익산을 포함해서 여타 시군들이 이를 위한 전환심의위원회조차 구성하고 있지 않은 현실은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구태스런 관성에 빠져있는 공무원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북미간 치킨게임에서 배제되다시피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그동안의 무모한 대결정책이 빚어온 악순환과 불신의 결과이다. 최근 사드배치를 둘러싸고 보여지듯이 강대국속에 균형외교도 절실한 과제이다.

100여년전 후진국이었던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역사적 변화는 훌륭한 정치지도자와 정당의 존재로부터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복잡하고 어려운 오늘의 현실을 제대로 바꾸어 나갈 정치지도자와 정당의 출현을 기대한다. 대부분의 유럽선진국가들과 최근 뉴질랜드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 출발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편이다. 오늘의 촛불은 선거제도 개편에 집중해야 한다.